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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29. 2022

<아르고> 리뷰

선 넘는 긴장


<아르고>

(Argo)

★★★☆


 올해로 개봉 10주년을 맞이한 벤 애플렉 감독작 <아르고>입니다. 개봉 당시 극장에서 관람한 뒤 한 번도 다시 꺼내보지 않았다가 별다른 동기 없이(?) 감상하게 되었네요. 극장판은 120분이었지만, 129분짜리 확장판으로 보았습니다. 전체적인 얼개 외에는 거의 기억나는 장면이 없었기에 정확히 어떤 장면이 추가되었는지는 눈치채지 못했네요.



 1979년, 테헤란에 있는 미 대사관이 성난 시위대에게 점령당하자 6명의 직원들은 캐나다 대사 관저로 은밀히 피신합니다. 이들을 빼내기 위한 다양한 작전들이 논의되던 중, CIA의 구출 전문 요원 토니 멘데스가 투입되죠. 한 영화에서 힌트를 얻은 그는 <아르고>라는 제목의 가짜 SF 영화를 촬영한다는 명목으로 인질들을 구출하겠다는 작전을 구상하고, 미국 역사에 남을 탈출 작전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벤 애플렉의 3번째 감독작었고, 주연과 동시에 감독을 맡은 작품으로는 <타운> 이후 2번째였습니다.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2013년 열린 제 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고, 개중 3개인 작품상과 각색상, 편집상은 수상까지 성공했죠. 다만 당 해 다른 주요 시상식에서 벤 애플렉이 감독상을 휩쓸었음에도 아카데미에서는 감독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는 논란 아닌 논란도 있었습니다.



 미국인이 돌아다니기만 해도 스파이로 몰아 죽인 뒤 전시해도 놀랍지 않았던 당시의 이란에서 6명의 인질을 가짜 영화 촬영을 빌미로 빼내 온 작전입니다. 실화라는 데에서 엄청난 가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각본이죠.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도 나오듯 이 작전을 구상하고 수행한 토니 멘데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CIA 요원 50인에도 이름을 올렸고, 지금도 여전한 명성을 자랑하는 인물입니다.


 줄거리가 줄거리다 보니 작년에 개봉되어 오는 9월 재개봉까지 예정된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 리뷰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작품이었습니다. 한 번의 실수가 곧바로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타지에서 유일하지만 위험천만한 탈출을 감행한다는 공통점이 있었죠. 다만 <아르고>는 영화적 재미를 위해 실제로는 없었던 긴장 상황을 잔뜩 덧붙인 반면, <모가디슈>에선 오히려 축소된 에피소드도 있었다고 합니다.



 첩보물이라고 하면 <미션 임파서블>이나 <007>처럼 휘황찬란한 스파이 블록버스터부터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나 <모스트 원티드 맨>처럼 정적인 심리 스릴러 등 의외로 분파가 다양한데, 그 사이 균형점을 발견했습니다. 상업적인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연출자의 분명한 시선을 느낄 수 있죠. 보통은 한 쪽을 고르면 다른 한 쪽은 딱히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가지 않는 길을 용감히 간 셈입니다.


 아카데미 각색상을 안겨준 이 각본이 바로 <아르고>의 골자입니다. 세상에 널려 있는 실화들 중 영화적 재미라는 살을 덧붙였을 때 최고의 시너지를 낼 만한 타겟을 아주 적절하게 골랐습니다. 단순히 흥미롭기만 한 것을 넘어, 자국민이라면 가슴 속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애국심 내지는 자긍심을 끌어올릴 만한 소재죠. 지나치면 독이 되고 모자라면 티나지 않는 그 곳에서 꽤나 신중하게 움직입니다.



 사건의 기본 얼개가 직선적이라 금방 받아들이고 따라가기가 쉽습니다. 겉으로는 미국와 이란의 정치적 긴장 상황을 이해해야 할 것 같지만, 사실상 위험천만한 계획으로 인질들을 빼내 오는 스릴러에 가까운 덕이죠.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각자의 상황에서 해결책과 장애물 중 하나의 역할을 맡아 극의 긴장감에 기여합니다. 잠깐 나오고 사라지는 단역도 예외는 아니죠.


 실제 이야기와 지어낸 이야기의 장단점을 분석해 장점만을 취했습니다. 기승전결 중 비교적 설득력이 떨어지거나 호흡이 느려지는 구간은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재현한 것이라며 둘러댈 수 있고, 반대로 촌각을 다투거나 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이 틀어질 수 있는 긴장 상황은 실제건 아니건 일단 눈길을 잡아끌기 때문에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모로 영리한 접근입니다.


 사건과 전개의 아귀가 너무나 잘 맞아떨어져 오히려 흥미가 떨어질 때가 있을 지경입니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풀리면 재미가 없으니 이런저런 사유로 일이 꼬이는데, 무언가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고 그를 또 무언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타개하는 공식이 딱딱 달라붙죠. 보여주는 그림 자체의 신선도는 높지만, 뼈대가 단순해 김이 샐 때가 왕왕 있습니다.



 사건을 기리는 영화인지라 인물은 뒤로 물러나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감독 벤 애플렉에 비하면 주연 벤 애플렉의 존재감은 다소 작은 편이죠. 모든 구성 요소가 부품처럼 기능적인 것이 완연한 장점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 발만 더 나아가면 훨씬 대단한 무언가처럼 보일 수 있는 순간마다 욕심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그 간단하고도 어려운 일을 해낸 영화는 이처럼 10년 뒤에도 여전한 흡인력을 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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