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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29. 2022

<늑대사냥> 리뷰

피에 굶주리고 피에 목말라


<늑대사냥>

★★★


 2019년 <변신> 이후로 3년만에 돌아온 김홍선 감독의 신작, <늑대사냥>입니다. 지난 영화들과 달리 이번엔 연출은 물론 기획, 제작 등 창작의 자유를 가장 마음껏 펼친 작품이기도 하죠. 서인국, 장동윤, 박호산, 정소민, 고창석, 장영남, 성동일, 임주환, 이성욱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출연진이 적혀 있는 포스터 아래쪽엔 두 주연과 더불어 α라는 이름이 적힌 신비주의(?) 마케팅을 시도했구요.



 동남아시아로 도피한 인터폴 수배자들을 이송할 목적으로 출항하게 된 움직이는 교도소, 프론티어 타이탄. 극악무도한 범죄자들과 베테랑 형사들이 필리핀 마닐라 항구에 모이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 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이들은 각자의 목적과 경계심을 품고 탑승하죠. 별일 없이 태평양 한가운데를 지나던 중, 기다렸다는 듯 움직이기 시작한 사람들 앞에 본격적인 지옥이 펼쳐집니다.


 예고편은 물론 정식 개봉 전부터 들려온 소식들은 마치 청불이라고 다 같은 청불이 아님을 선언하는 듯했습니다. 온 몸을 문신으로 휘감은 서인국의 강렬한 인상부터 시작해 121분의 러닝타임 동안 소품 피를 2.5톤이나 사용했다고 하는데, 뭐가 어떻게 흘러가든 피 하나만큼은 질리게 볼 수 있을 것만 같았죠. 장르 영화제 구석에서야 종종 봤다 할지라도 이 정도 규모의 상업 영화에서는 분명 신선한 시도였습니다.



 최악의 범죄자들을 실어나르는 배 위에서 벌어지는 살육전입니다. 영화상의 설정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비인간적이고 가장 첨단의 감옥을 지어서 넣어 놓아도 허구헌 날 탈옥하는데, 그냥 보통 배에 수갑만 채워놓고 출발하는 영화라면 당연히 피를 볼 수밖에 없겠죠. 기승전결이 단순할수록 캐릭터의 개성과 힘이 중요한 마당인지라 범죄자 쪽의 다채로움으로 승부하는 경우가 많겠구요.


 <늑대사냥>은 그 곳에서 출발하긴 하나 다른 곳으로 나아갑니다. 처음부터 단순한 범죄자 이송 작전 이외에 무언가 다른 것이 있음을 조금씩 암시하죠. 의사 성욱은 범죄자들과 무관한 공간으로 향하고, 성동일의 대웅이 이끄는 외부 보안 팀은 규모가 필요 이상으로 커 보입니다. 정문성의 규태를 비롯해 형사들의 일을 돕겠다고 합류한 자원봉사자들은 대놓고 수상한 기색을 흘리구요.



 물론 그 전까지도 장르적 색채는 전혀 숨기지 않습니다. 애초에 첫 장면부터 전개상으로는 딱히 필요없긴 하나, 바닥 가득 흐르는 피로 앞으로 벌어질 광경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이죠. 한 번 시작된 살육은 멈추지 않고 화면을 붉은 빛으로 물들입니다. 손, 칼, 총 등 주어진 환경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들고 피바람을 일으키죠. 살짝 과장된 출혈을 제외하면 웃음기 따위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맨주먹으로 덤벼들어도 곤죽을 내 버리는 야만성을 모두에게 쥐여 준 덕에, 언제 어디서 어느 것이 튀어나와 누구를 터뜨릴지 알 수 없는 전개상의 과감함을 확보합니다. 여느 비슷한 영화에서라면 절대로 죽지 않을 주인공, 직업, 성별, 나이의 제약은 물론 어떤 기준점도 없이 주연이건 조연이건 평등하게 대하죠. 극한의 생존 대결이라는 무대에서 다음 장면을 예측할 수 없음은 꽤나 큰 동력이 됩니다.



 영화가 진짜로 준비해 왔던 소재와 인물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2막이 시작됩니다. 마케팅 단계에서도 공들여 숨겨왔던 전개가 펼쳐지는데, 이를 통해 그러지 않아도 격렬했던 영화의 수위와 유혈은 한 단계 더 나아가죠. 그러지 않아도 대중성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던 장르적 방향을 더 틀어 목표 관객층을 축소합니다. 이제 남을 사람만 남았음을 확인하기라도 한 듯 정말 질주하기 시작하죠.


 장점과 단점이 너무나 뚜렷합니다. 장점을 즐기려면 단점을 무시해야 하는데, 단점을 보기 시작하면 장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때문에 영화의 존재 의의에 그대로 만족할 관객층은 너무나 좁은 반면, 거기까지 다다를 동안 자발적으로 하차할 사람들은 지나치게 많습니다. 이런 대담한 입지의 영화가 130억 원을 들여 손익분기점 220만 명 짜리 프로젝트로 나왔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따질 설정 구멍들은 이 혈투가 펼쳐지는 무대부터 인물에 이르기까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최악의 범죄자들을 태웠다면서 CCTV 하나 없는 허술함은 그저 형사의 입을 빌어 '여긴 CCTV도 없으니 처신 잘해라'라며 얼렁뚱땅 넘어갈 일이 아니죠. 등장인물들이 무시무시할수록 철저해야 하는 보안처럼 서로 정면으로 충돌하는 개연성은 한 쪽을 깔끔하게 포기합니다.


 보여주고 싶은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거기까지 다다르는 과정엔 아주 크게 공을 들이지는 않습니다. 이는 죽고 죽이는 참상이 시작된 뒤에도 마찬가지죠. 오로지 피를, 더 많은 피를 보기 위해 2절 3절까지 나아가는 장면이 꽤 많습니다. 방금까지 그야말로 살인귀처럼 방아쇠를 당기던 사람이 정작 중요한 순간엔 버벅대다가 또 하나의 피 분수가 되어버리는 식이죠.


 이미 충분히 보여주었거나 대화에서 짐작할 수 있음에도 굳이 또 살육을 위해 집어넣은 회상 등 여러모로 잔가지가 많은 영화입니다. 애초에 피를 보여주려고 만든 기승전결이라 대부분의 인물들은 이보다 소비적으로 사용할 수 없죠. 폭력의 양상 또한 아주 독창적이라기보다는 둔탁한 주먹 혹은 칼질의 반복이라 금방 피로해지는 편입니다.



 인물이나 상황 설정 등을 좀더 파고든다면 나름의 시리즈 세계관을 갖출 잠재력은 있는 영화입니다. 뭐가 됐든 뚝심 하나로 신파나 코미디, 강제된 배우별 비중 등 다른 상업적 한눈팔이 없이 자신의 갈 길만 보았다는 점에서는 의외의 흡인력을 갖고 있구요. 실제로 <늑대사냥>은 프리퀄과 속편을 비롯해 총 3부작으로 기획되었다고 하는데, 그를 가능케 할 극장가에서의 행보가 중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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