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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29. 2022

<아바타> 리뷰

보다 푸르고 보다 인간답길


<아바타>

(Avatar)

★★★☆


 곧 <물의 길>로 돌아올 2009년 영화 <아바타>는 여러모로 할리우드의 역사에서 아주 큰 입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시리즈가 아닌 단일 영화로 세계적인 톱스타 배우도 없이 전 세계 흥행 수익 1위 자리를 10년 동안 지켰죠. 이후 <어벤져스: 엔드게임>에게 왕좌를 내주기는 했지만, 지금도 여러 납득할 만한 이유를 근거로 <아바타>가 진정한 1위라고 주장하는 영화 팬들도 많습니다.



 가까운 미래, 지구는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나먼 행성 판도라에서 대체 자원을 채굴하기 시작합니다. 여러 환경적 요인 탓에 인간들은 판도라의 토착민 나비족의 외형에 인간의 의식을 주입, 원격 조종이 가능한 '아바타'를 탄생시키죠. 아바타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형의 죽음으로 대체 인력이 된 전직 해병 제이크는 졸지에 수많은 목숨이 걸린 대자연이자 전장의 한가운데로 향합니다.


 개봉 당시의 <아바타>만큼 난데없는 신드롬인 영화는 그 전에도, 그 후로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지금에야 온갖 시리즈와 유니버스가 범람하며 영화 팬들이 아닌 일반 대중에게도 상식 수준이 된 영화들이 많지만, <아바타>는 모두가 처음 보는 것들만을 한아름 들고 나왔음에도 일말의 진입 장벽도 갖고 있지 않았죠. 나비, 토루크 막토, 제이크 설리 등 고유명사와 인명, 지명 등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느슨해진 영화 씬에 긴장감을 선사한(...) 3D 열풍의 시작도 <아바타>였습니다. 예전이었다면 상상도 하지 못할 광경을 상상도 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매일같이 만들어내는 곳이 할리우드라고는 하지만, 모두가 무성에서 유성으로 넘어오고 흑백에서 컬러로 넘어왔던 순간의 충격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죠. 물론 시작과 동시에 정점을 찍는 바람에 그 효용은 지금도 꽤나 회의적인 시선이 많습니다.


 대단함을 이야기하자면 하루 종일도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너무나 다채롭고 상상력으로 가득해 제작기 영상만 다큐멘터리처럼 보고 있어도 웬만한 영화 이상의 흡인력을 자랑하죠. <아바타>라는 주제를 꺼내면 누구든 어딘가에서 들어서 알고 있는 자그마한 트리비아 하나씩은 공유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여운까지도 남겼구요. 나온다 나온다 했던 속편은 드디어 개봉을 목전에 두고 있지요.



 이제 와서 찾아 보니 <아바타> 리뷰를 올린 적이 없습니다. 글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을 이유 모를 자신감으로 열심히 올려 대던 2009년이었으면 리뷰를 썼을 법도 한데, 가끔 밀려오는 수치심에 예전에 썼던 글들을 남몰래 지울 때가 있어 언젠가 지웠나 싶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라면 인스타그램 스토리마냥 한 3년 주기로 모든 글들이 알아서 싹 지워져야 맞을 것 같습니다.


 특이하게도 지금까지 극장에서 보다가 잠들었던 유일한 영화가 바로 <아바타>였습니다. 초반부쯤 주인공 제이크가 판도라 정글에 고립되어 횃불을 들고 싸우는 장면에서 눈이 감겨서는 오마티카야의 선택을 받았다며 정글 해파리(?)들에게 에워싸였던 장면까지였죠. 2D로 관람한 뒤 3D로 두 번째 보는 중이었기는 하지만, 보다 자는 것이 훨씬 나은 영화들도 눈 뜨고 다 보았음에도 꽤 의외죠.



 냉정히 말하자면 <아바타>는 각본이 신선한 영화는 결코 아닙니다. 자본과 기술로 무장한 문명이 자연과 순리를 따르는 문명을 짓밟으려다 소위 말하는 정의구현을 당하는 전개인데, 사실상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의 역사 그 자체죠. 그것을 바탕으로 인류의 패배를 그려냈다는 점에서는 자신들의 역사를 반성한다고 볼 수도, 가식을 부리면서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캐릭터 쪽은 한 술 더 떴습니다. 주인공인 제이크 설리와 네이티리 정도를 제외하면 박사 그레이스와 사령관 쿼리치, CEO 셀프리지 등은 그레이스, 쿼리치, 셀프리지라는 사람이 아니라 박사, 사령관, CEO라는 직업 그 자체를 인간으로 치환한 수준이죠. 예고편에 한두 마디씩 들어가는 뻔한 대사만을 내뱉으며 선악 구도를 포함한 그 어떤 예상에서도 한치도 빗나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제이크 설리는 여러모로 주인공 대접을 톡톡히 받습니다.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배신자이자 나비족의 구원자라는 독특한 입지의 인물인데, 해군과 장애인, 형을 잃은 동생 등 여러 인물상을 쌓아올려 그를 바라보는 우리 인간(?)들을 설득시키죠. 어쨌든 입장이 입장인지라 특별전형으로 들어온 신입사원의 일탈로 회사가 망했다는 사장의 드립 푸념글이 돌아다닌 적도 있었구요.


 그마저도 무언가 막힌다 싶으면 '운명의 지도자' 설정을 치트키처럼 곧잘 써먹습니다. 여느 신화적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들 중 그러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냐만은, 토루크는 위를 볼 일이 없으니 위에서 덮치면 토루크 막토가 될 수 있다는 간편한 전개 등으로 그를 필요 이상으로 쉽게 정당화하죠. 이건 제이크가 뛰어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나비족이 아둔하다는 말을 들어도 쌉니다.



 하지만 판도라라는 행성, 그리고 그를 시각화한 시도 자체가 나머지 모든 것을 상쇄합니다. 모든 생명체와 교감하며 거대한 질서를 따르는 생활 방식부터 현실과 판타지를 적절히 섞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 등, 한 땀 한 땀 쌓아올린 행성이자 문명은 충격이나 혁신이라는 작은 단어에 가둘 수 없는 결과물이었죠. 개봉 당시 판도라를 동경한 관객들의 '아바타 우울증'이 뉴스에 보도될 지경이었습니다.


 영화가 아니라 잘 만든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어느 곳으로 고개를 돌려도 시각적인 즐거움만이 가득한 별천지를 무대로, 내 시선을 사로잡은 무언가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작동하는지 궁금해하는 호기심을 놓치지 않고 해소해 주죠. 무대의 색이 워낙 휘황찬란한 덕에 채도가 다소 떨어지는 이야기가 펼쳐져도 주변 시야의 힘을 톡톡히 봅니다.



 '때깔만 좋은' 영화들이 하릴없이 무너져내리는 사례는 정말 수도 없이 많습니다. 평단이나 관객들에게 외면받는 할리우드 거대자본 블록버스터들의 99%는 여기에 해당하지만, <아바타>는 거기에도 '절대'라는 것은 없음을 너무도 당당하게 증명했습니다. 오랜 기다림에 보답하듯 이미 4편의 절반까지 촬영을 마쳤다고 하는데, 5편까지 예정된 대장정은 이제 시작일 뿐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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