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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29. 2022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리뷰

지금을 펼쳐 만든 우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


 자칭 타칭 영잘알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영화사 A24의 온갖 기록이란 기록은 다 갈아치우고 있는 바로 그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습니다. 본토엔 지난 3월 개봉되어 전 세계 평단의 찬사를 받았고, A24 영화 역사상 최초로 전 세계 흥행 수익 1억 달러를 달성하며 여러모로 축배를 들 수밖에 없는 역사적 작품으로 남게 되었죠.



 미국에 이민을 와서 하루하루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던 에블린. 일상을 이어가기도 힘든 시기에 이혼 서류를 품에 숨긴 남편과 여자친구를 데리고 온 딸 탓에 시름은 깊어지고, 여느 날처럼 시달리던 세무 당국의 조사는 숨통을 옥죄어 옵니다. 바로 그 순간 에블린은 멀티버스 안에서 수천, 수만의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능력을 통해 세상과 가족을 구해야 하는 운명에 놓이죠.


 평행 세계, 멀티버스라는 말이 이제는 그래도 상식 선으로 내려온 것 같습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인기가 큰 공헌을 한 것 같지요. 2011년 영화 <소스 코드> 때만 해도 영화 말미에 원 화면에는 없는, '평행 세계'라는 단어를 설명하는 자막 번역가의 추신이 붙어 논란이 된 적이 있었죠. 그런데 이제는 그런 소재를 가지고 하나의 영화를 만들어도 별 수식을 붙일 필요가 없어졌네요.



 보통 이해하는 평행 세계라는 개념은 인생의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마다 분기점이 생겨, 같은 상황에 다른 선택을 내린 또 다른 내가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그 때 그렇게 할 걸, 그렇게 하지 말 걸 하는 후회와 회한들이 뭉친 세계라고 볼 수도 있겠죠.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지금이 믿어지지 않을 때 쉽게 써먹을 수 있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그런 평행 세계의 개념을 아주 특이하고 신선한 방식으로 소화한 영화입니다. 주인공인 에블린은 가족부터 직장까지 뭐 하나 마음대로 풀리는 것이 없는 인물입니다. 관객들이 자신의 한 구석을 투영하기 더없이 좋은 인물이죠. 그런데 알고 보니 지금 이 순간에 다다르는 단 하나의 선택만 아니었다면 자신이 지금 꿈꾸던 어떤 것이든 될 수 있었다는 씁쓸함에서 출발합니다.



 멀티버스의 에블린은 하나같이 지금의 에블린이, 에블린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바랄 번한 에블린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대단한 재주와 업적으로 사회적 명망과 명예를 한 몸에 안고 있죠. 그 에블린과 이 에블린을 가른 일생일대의 선택은 남편 웨이먼드와의 만남이었습니다. 부모님이 그토록 반대했던, 어쩌면 젊은 날의 치기로 결정해 버리고 만 바로 그 결혼이었죠.


 누구에게든 살면서 후회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자의였든 자의가 아니었든, 그 때 그런 일이 일어나거나 그러기로 선택하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는 순간이 있죠. 그런 맹목적인 회의의 무서운 점이라면 살면서 가장 약해지는 순간 불쑥 찾아와 기껏 잘 가지고 있던 몇 안 되는 희망까지도 밟아 꺼뜨리려 위세를 키운다는 것이 있겠습니다.



 영화는 얼핏 그 순간을 잘 피해간 에블린들의 강함을 나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의 유약한 에블린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성공한 에블린들의 능력을 빌려 목숨을 부지하죠. 여기에 립밤을 먹거나 코끼리코를 도는 등 정상적인 현실이라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을 멀티버스의 발동 조건으로 내거는 등 영화적 상상력과 재치를 더해 개성을 확보합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이상적이기만 한 나의, 나들의(?) 힘을 빌려 문제를 뚝딱 해결했으니 모두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전개는 지나치게 무책임합니다. 지금의 나에게도 지금을 살아갈 힘이 필요하고, 이상적인 나에게도 지금의 나라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아픔이 있기 마련입니다. 삶과 인간에게 있어 완벽함이라고는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지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그를 간접적으로 투영하는 인물이 바로 모든 멀티버스를 무너뜨릴 음모와 야심으로 뭉친 악당 조부 투파키입니다. 지금의 에블린이 있는 차원과 조부 투파키가 활동하는 차원에서 극중 그 어떤 인물들보다 큰 괴리를 갖고 있습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런 조부 투파키가 조부 투파키가 되지 않을 열쇠는 지금의 에블린이 쥐고 있고, 후반부는 그를 두고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구요.


 모든 것, 모든 곳, 모든 순간이 한 곳에 뭉쳐도 가장 위대한 것은 지금 이 순간과 사랑입니다. 맨날 지겹도록 들어서 예전부터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이야기를 돌고 돌고 3연속 공중제비를 돌아서 물구나무를 선 채로 듣는 것 같기는 하지만, 껍데기가 화려할수록 알맹이는 근본적이어야 더 큰 시너지가 생기는 법이죠. 모든 길이 옳으며 옳지 않은 길은 없다고 주장했던 <미스터 노바디> 생각도 왕왕 납니다.



 환상을 현실로 옮긴 듯한 총천연색 비주얼도 눈길을 사로잡고, 엉뚱함을 엉뚱함의 영역에 내려놓지 않은 과감함도 분명한 동력이 됩니다. 몇몇 장면에서는 연출 욕심과 대중성을 맞바꾼 것처럼 보이기도 하나, 그런 뚝심이 아니었다면 들어가지 못했을 것들이 모여 탄생한 영화가 바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죠. 그야말로 영화의 안과 밖을 관통하는 제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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