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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29. 2022

<리멤버> 리뷰

사라지기 전에 붙잡을 것들


<리멤버>

★★★


 2016년 <검사외전>을 내놓았던 이일형 감독의 신작, <리멤버>입니다. 아톰 에고이안의 2020년 영화 <리멤버: 기억의 살인자>를 원작으로 두고 있으며, <범죄와의 전쟁>으로 이름을 알린 윤종빈 감독이 기획, 제작, 각본 등에 참여한 작품이기도 하죠. 이성민과 남주혁을 주인공으로 박근형, 윤제문, 정만식, 송영창, 김홍파 등이 함께 출연했습니다. 지난 10월 26일 개봉되었네요.



 뇌종양 말기, 80대 알츠하이머 환자이자 일제강점기 때 친일파들에게 가족을 모두 잃은 한필주. 어느 날 그는 알바 중이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절친이 된 20대 알바생 인규에게 일주일만 운전을 도와 달라 부탁합니다. 이유도 모른 채 필주를 따라나선 인규는 순식간에 살인 용의자로 지목되는 사건에 휘말리고, 필주는 사라져가는 기억과 싸우며 아주 오래 전부터 계획되었던 복수를 이어갑니다.


 제목만 보아도 기억과 관련된 영화임은 분명합니다. 일생일대의 복수를 기획하고 마침내 스스로의 정의를 실현하려던 찰나, 시간이라는 예상치 못했던 적이 나타나는 그림을 기대하게 되죠. 어쩌면 평생을 지금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고대하며 살아 온 사람에게서 기억을 앗아간다는 설정은 충분히 흥미롭습니다. 그 기억이라는 것의 가치가 정말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면 폭발력은 비례하겠죠.



 <리멤버>는 그 기억을 설명하고 전개하는 수단으로 친일파를 택했습니다. 필주뿐만 아니라 그 시간을 버텨낸 사람들, 버텨낸 그 시간으로 지금을 누리는 사람들이 잊어서는 안 될 것으로 그보다 적절한 소재는 찾기 어렵겠지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장을 하나의 영화로 늘린다면 나올 법한 작품이 바로 <리멤버>가 되겠습니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접근은 조심스럽습니다. 소위 말하는 국뽕 영화로 전락할 지점과 여지는 너무나 많기에 전략을 잘 짜야 하죠. 여기서 나올 나쁜 놈들은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처단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합니다. 괜시리 개인적인 패악질이라도 과하게 묘사했다간 악의 초점이 집단이 아니라 개인으로 향하게 되죠. 친일파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냥 이 사람이 나쁜 것이라는 인상을 주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리멤버>는 그들을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 묘사하려고 노력합니다. 필주의 복수가 다섯 명에게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겠죠. 그들은 일제 강점기에서 각자 다른 방법으로 살아남았으나 모두 자신의 과오를 부정하고 정당화합니다. 입 밖으로 내뱉는 변명과 구실도 같은 듯 조금씩 다릅니다. 필주의 입을 빌려 가장 큰 공통점을 이야기하자면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것이겠죠.


 메시지의 전달에 있어 조심해야 할 곳에는 조심하지만 단호해야 할 땐 또 더없이 단호합니다.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식으로 에둘러 말하는 대신 사살, 처단, 척살 등 강경한 단어들을 아낌없이 사용하죠. 스크린을 넘어서는 뚝심이자 신념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땐, 그리고 모두가 그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을 땐 정면을 향해 돌진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렇게 필주와 필주의 복수만 놓고 보면 빈 자리 없이 꽉꽉 들어찬 작품처럼 보이지만, 애석하게도 그를 제외한 대부분의 인물들에서 단점과 구멍이 발생합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영화 내내 그의 옆에 있는 인규부터가 그렇죠. '알바 절친'이라는 설명 하나로 모든 설명을 끝낸 그는 친일파 사장의 공장에 다니는 아버지나 사채업자 등 영화의 부차적인 에피소드들을 만들 수 있는 설정의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여느 비슷한 모든 영화들에서 그러하듯 매번 한 발 늦는 경찰들은 관찰자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합니다. 눈에 띄지 않아야만 하는 작전 내내 자신을 뒤쫓는 사람들을 놀리듯 빨간 포르쉐를 운전하는 주인공들 앞에서 내내 쩔쩔매죠. 차라리 <택시운전사>에서 엄태구의 박성학 중사가 그러했듯 은근한 끄덕임이라도 남겼다면 모를까, 센서 수도꼭지 잘 켜는 방법 알려주는 모습이 극중 최대 업적인 수준입니다.



 그리 많지도 않은 인물들에게 너무 많은 설정들을 욱여넣었습니다. 후반부에 접어들면 어째 필주의 알츠하이머마저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방향성으로 써먹는 것 이외에 각본상의 존재감은 미약해지죠. 그러나 부족한 완성도와 기승전결의 억지를 의의로 정당화하려는 수많은 영화들 사이에서 <리멤버>는 그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공시킨 몇 안 되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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