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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Nov 10. 2022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리뷰

연대한 자아들의 도취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Black Panther: Wakanda Forever)

★★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토르: 러브 앤 썬더>를 잇는 2022년 마지막 마블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입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페이즈 4의 마지막 작품으로, 라이언 쿠글러가 다시 한 번 메가폰을 잡고 레티티아 라이트, 안젤라 바셋, 도미니크 손, 테노치 우에르타 메히아, 마틴 프리먼, 다나이 구리라, 미카엘라 코엘, 윈스턴 듀크, 루피타 뇽오 등이 함께했죠.



 국왕이자 수호자인 블랙 팬서, 티찰라의 죽음 이후 위기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와칸다. 여왕 라몬다, 공주 슈리, 장군 오코예 등은 각자의 사명감을 가지고 국력을 유지하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이어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역사적으로 와칸다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비브라늄의 패권을 노리고 그 누구도 존재를 알지 못했던 적들이 바다에서 나타나고, 와칸다는 전에 없던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블랙 팬서> 1편과 어벤져스 시리즈를 거친 티찰라 역의 채드윅 보스먼은 지난 2020년 8월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배역이 동일함에도 배우를 교체하는 일은 마블 유니버스 영화에서도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워낙 아이콘이나 마찬가지인 배우였던 터라 제작사 측에서도 이를 기리는 방향으로 시나리오를 전면 수정했죠. 때문에 이번 2편 또한 티찰라의 사망에서 시작됩니다.



 이번 <와칸다 포에버>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국가 그 자체나 마찬가지였던 국왕이자 수호자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일어서는 와칸다의 모습을 담으려 한 작품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와칸다인이라는 정체성은 변하지 않기에 우리 와칸다인들은 영원한 블랙 팬서와 영원한 비브라늄의 가호 아래 힘을 얻는다는 외침이자 다짐이죠.


 1편에서부터 이어진 유대와 연대의 방향성은 스크린 밖의 인종 문제와도 강렬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외부의 부당한 억압에도 우리는 무엇이 옳은 것인지 스스로 판단하고 나아갈 정신을 갖추고 있지만, 힘이 수반되지 않는 외침은 꽃노래에 지나지 않습니다. <블랙 팬서> 시리즈가 그 근거이자 근원으로 선택한 소재가 바로 마블 스튜디오의 무안단물인 비브라늄이죠.



 2018년 <블랙 팬서> 리뷰에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와칸다라는 국가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 또한 비브라늄입니다. 비브라늄 운석이 떨어진 곳에 정착해 만들어진 국가가 와칸다이기에 비브라늄은 와칸다에서만 채굴해 관리할 수 있는 물질입니다. 실제로도 지하자원은 국력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기에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이해할 수 있죠.


 그러나 이 비브라늄은 연구하면 할수록 인류의 발전 수준이 아니라 진화에 가까운 기술과 연계됩니다. 전쟁부터 의료까지 삶의 모든 것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며 와칸다인들의 일상을 여타 인류보다 수 세기는 앞선 것으로 만들어주었죠. 그럼에도 와칸다는 이 기술을 옳게 다룰 수 있는 것은 자신들뿐이라며 비브라늄은커녕 와칸다라는 국가의 존재마저도 꽁꽁 감추었습니다.



 와칸다의 태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가 밖 그 어떤 것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면 모를까, 자신들의 발전을 위해서는 인류의 유산을 아낌없이 이용했음에도 그 과일을 나눠 줄 생각이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는 국가가 바로 와칸다입니다. 그럼에도 외교 시에는 스스로를 세계 최강국이라 칭하며 다른 국가들의 기술과 수준을 미개한 것이라고 깎아내리길 주저하지도 않죠.


 이번 2편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심지어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지적에 당당하다는 듯한 상황까지 만들어 집어넣었죠. 마음만 먹으면 세계 통일도 이룰 수 있는 우리가 이렇게 평화적으로 나서서 너희들을 봐 주고 있는데, 비브라늄에 눈이 먼 네놈들이 가만히 있는 우리를 자꾸 건드리니 더 이상 참기 어렵다는 연설까지 등장합니다. 가해자는 당연히 치졸하기 짝이 없는 서구 열강들이죠.



 유치하다 못해 안쓰러운 자기방어이자 맹목적 연대는 애석하게도 이번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입니다. 비브라늄과 와칸다와 블랙 팬서는 일종의 동의어로 기능하며, 외세의 크고 작은 침입에 순간 흔들리거나 금이 갈 수는 있어도 끝에는 전에 없이 더욱 단단해진다는 설정이죠. 그 범위는 정신적인 것임을 주창하지만, 피부색이라는 더 큰 기준이 있음을 누구나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 삐걱대는 논리의 가장 큰 피해자는 와칸다와 꾸준히 협력해 온 에버렛 로스, 가장 큰 수혜자는 난데없이 처음 등장한 리리 윌리엄스입니다. 서로의 위기를 보듬고 목숨이 오가는 곳에서 전우가 되었던 로스와는 끽해야 우정 비스무리한 것에 그치지만, 비브라늄 활용법을 독학한 천재 소녀 리리 윌리엄스는 초면임에도 모두가 그녀를 위해 스스로는 물론 국가 전체의 존망을 걸고 있으니 수긍이 될 리가 없죠.



 극중에서조차 리리의 수트를 처음 본 사람들은 아이언 맨이 나타났다고 소리를 지르지만, 막상 토니 스타크라는 이름은 언급조차 되지 않습니다. 똑똑한 것은 내가 잘났고 비브라늄이 대단하기 때문일 뿐, 그토록 중요하다던 정신적 유대와 존중은 지극히 선택적이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겐 나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나의 힘에 무릎을 꿇는 선택지밖에 없다고 말하는 양상이 반복됩니다.


 쉽게 말해 내로남불입니다. 본인 말만 맞습니다. 해저 도시 탈로칸과 그를 이끄는 네이머는 설정만 놓고 보면 바닷속의 와칸다와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초대 왕이 지금껏 통치하고 있기에 국왕과 국민의 정체성이나 소속감은 지금의 와칸다보다 더욱 강력하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럼에도 와칸다는 탈로칸의 등장과 분명 같은 뿌리에서 나온 신념의 대립에 스스로 정한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댑니다.



 이 논리로는 탈로칸은 물론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조차 설득할 수 없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꺼낸 비브라늄의 무안단물 기술력으로 본인이 맞음을 인정할 때까지 두들겨 팹니다. 전사 대 전사로 싸워서 진 뒤 비브라늄 수트로 둘둘 덮고 다시 붙어서 박살을 내고는 마치 공정하고 정의로운 승부였다는 듯 포장하죠. 처음엔 그토록 무게 잡고 나오다가 힘 없이 스러지는 적들은 그것대로 초라합니다.


 이렇게 비브라늄 때문에 존재할 수 있었던 시간과 사건들에 신념을 구색이라도 힘겹게 끼워맞춰 두었는데, 막히면 대충 비브라늄에서 비롯된 무한정의 과학력으로 해결해 버리니 기껏 쌓아둔 가치가 무용해집니다. 캡틴 아메리카에게 슈퍼 솔져 혈청이 온갖 의의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돌이킬 수 없는 단 한 번의 선택이었음도 큰 이유가 되었는데, 그걸 갑자기 편의점에서 판다고 하면 캐릭터가 우스워지겠죠.



 와칸다는 와칸다대로, 탈로칸은 탈로칸대로 흔들리는 와중 사실상 이 싸움의 이유가 되는 리리 윌리엄스는 더없이 겉돌고 있으니 그 과정은 걷잡을 수도 없습니다. 비브라늄을 기반으로 우주전쟁이라도 벌여야 할 것 같은 국가 간의 대립은 원시 갑옷을 입고 창과 창으로 싸우는 몰골인데다, 1편에서도 지적된 시리즈 특유의 둔중한 액션과 갈수록 퇴보하고 있는 마블의 CG가 만나 이렇다할 명장면조차 없죠.


 와칸다 포에버, 이범배 등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때만 해도 전율 그 자체였던 대사들은 이걸 여기서 이렇게 쓰나 싶을 정도로 맥없이 낭비됩니다. 레티티아 라이트의 슈리는 캐릭터로 보나 배우로 보나 빈 자리를 대신하고 하나의 영화를 지탱하기에는 힘에 부칩니다. 그나마 안젤라 바셋과 마틴 프리먼이 눈에 남긴 하나, 영화가 노린 굵직한 주연들을 모두 잃은 뒤라 위안을 삼기에는 꽤 작은 장점입니다.



 조금이라도 산만한 가지들은 돋아나는 순간 잘라 버리고 와칸다 대 탈로칸, 블랙 팬서 대 네이머라는 대립각에 차라리 오락적으로만 집중해야 했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캐릭터,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하나의 균일한 흐름에 맞추기는 아주 어렵죠. 성공만 한다면야 더없이 정교한 각본이 되겠지만, 높은 실패 확률을 감수하기에는 실패했을 때의 피해가 너무 큽니다. 슬프게도 이번 영화가 그 예시가 되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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