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지 Nov 19. 2022

<하우스 오브 드래곤> 리뷰

역린의 파국


<하우스 오브 드래곤>

(House of the Dragon)

★★★★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왕좌의 게임>의 풍비박산 탓에 차마 고운 시선을 보낼 수 없었던 프리퀄 시리즈, <하우스 오브 드래곤>입니다. HBO 맥스를 통해 지난 8월 말부터 약 두 달에 걸쳐 공개되었죠. HBO 맥스가 서비스되지 않는 국내에서는 웨이브를 통해 공개되었으며, 1화는 롯데시네마 월드타워관에서 극장 상영회를 개최하는 등 나름대로 힘을 주었습니다.



 용엄마 대너리스 타르가르옌이 태어나기 172년 전, 웨스테로스에서 벌어진 타르가르옌 가문 사상 최대의 왕위 쟁탈전이 벌어집니다. 그 중심엔 타르가르옌 가문의 정통 계승자인 공주 라에니라 타르가르옌, 그리고 그녀의 어린 시절 소꿉 친구이자 새어머니가 된 알리센트 하이타워가 있죠. 각자의 이유로 하나의 거대한 싸움에 참전한 이들은 음모와 배신이 판치는 용들의 춤을 시작합니다.


 얼개는 <왕좌의 게임> 시리즈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단 하나의 왕좌를 두고 벌이는 거대한 게임이죠. 바라테온, 라니스터, 스타크 등 훨씬 많은 가문들과 훨씬 많은 사람들, 훨씬 많은 설정들이 있었던 <왕좌의 게임>에 비하면 오히려 깔끔하고 압축적인 편입니다. 한 시즌을 끝낸 직후에도 누가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지 곧잘 잊어버렸다면 이번엔 그나마 쉽게 접근할 수 있죠.



 10부작으로 구성된 이번 첫 번째 시즌은 그 안에서 5부씩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뉩니다. 주연 라에니라와 알리센트가 전반부에서는 아역, 후반부에서는 성인이 되어 나오죠. 물론 어린이들은 짧은 시간에도 쑥쑥 잘 크기에(?) 맷 스미스, 패디 콘시딘, 리스 아이판스, 이브 베스트, 스티브 투생 등 다른 배우들은 전반부와 후반부 모두 그대로 등장합니다.


 전반부는 각 인물들의 개성을 파악하고 그들이 얽히고 설킨 관계도를 그리는 시간입니다. 누가 누구의 가족이고 누가 누구의 우호 혹은 적대 관계이며 누가 누구의 어떤 운명을 바라는지 잘 따라가야 하죠. 말 하나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 위치만 바뀌어도 순식간에 판세가 바뀌는 게임판을 높은 곳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일반적인 체스나 장기와 차이가 있다면 한 번 가졌던 색이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겠죠.



 <하우스 오브 드래곤>이라는 제목에 충실합니다. 용 그 자체였던 타르가르옌 가문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정말 말 그대로 용들의 가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죠. <왕좌의 게임>에서는 한 마리만 있어도 온 세상을 정복할 수 있었던 최종병기 취급을 받았던 용들이 여기서는 아낌없고 다양한 존재감을 뽐내며 이야기의 핵심이자 볼거리로 기능합니다. 회당 250억 원이 넘는 제작비 덕을 톡톡히 보죠.


 물론 권력이 걸린 암투에서는 인간 주인공들의 개성과 매력이 극을 이끌어가는 주된 동력이 됩니다. 어느 누구의 시점에서도 친구나 가족을 포함한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지만, 그런 혼란한 정국에서도 끝내 목표를 이루는 사람은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 전개 과정의 흥미와 탁월함이 관건이 될 텐데,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선악처럼 정답이 정해진 문제가 아닌 인간과 인간, 신념과 신념의 대립으로 그를 그려내죠.



 마치 특정한 응원 팀 없이 그저 세계적인 팀 간의 수준 높은 경기에서 나오는 미학 자체를 즐기는 스포츠 리그 팬과 같은 심정입니다. 물론 모든 캐릭터를 공평하게 지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보는 사람이 그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시리즈의 짜임새를 증명합니다. 급격히 바뀌는 판세의 영향은 화면 밖까지 향해 시청자의 심리를 쥐락펴락하죠.


 라에니라, 다에몬, 알리센트, 오토, 라에니스, 코를리스 등 모두가 각자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왕좌를 노립니다. 모든 논리들은 말이 되는 동시에 말이 되지 않죠. 그러니 누가 되어도 옳고 누가 되어도 옳지 않습니다. 상대를 직접 노리는 방법도 있지만, 상대가 승부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방법은 수십 수백 수천 가지가 있습니다.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여기서 승부수가 되는 것은 당연히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겠죠. 똑같이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은 또 의도된 것과 의도되지 않은 것으로 나뉩니다.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 자체의 파급력만 해도 엄청난데, 그것이 의도하지 않은 것이었다면 그 파장은 자기 자신마저도 뒤늦게 수습하고 책임져야 하는 결과를 낳죠. 제어할 수 없는 가족, 제어할 수 없는 친구, 제어할 수 없는 용은 좋은 소재가 되구요.


 사실 전반부와 후반부를 동일하게 5부작씩 배치하기에는 속도감으로 보나 무게로 보나 후반부에 비하면 전반부는 거의 무용한 수준입니다. 두세 개로 줄였어도, 회상으로 보여주거나 대화로 암시만 했어도 충분한 내용임에도 후반부와 동일한 분량을 가져가죠. 후반부는 얽힌 인물들도 훨씬 다양해지면서 이야기의 밀도가 급격하게 높아지는데, 어쩌면 용을 비롯한 제작비 문제였나 싶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후반부의 엄청난 흡인력 하나만으로도 이번 시즌의 존재 가치는 충분합니다. 상대적으로 늘어지는 전반부마저도 그런 후반부를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면 얼마든지 용납할 수 있겠구요. 주인공이라고는 없이 누가 언제 어떤 일을 겪어도 이상하지 않았던, 그리고 그런 공기를 무기 삼았던 <왕좌의 게임> 초반 시즌의 재미가 그대로 재현되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