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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Nov 19. 2022

<올빼미> 리뷰

감은 눈으로 눈감지 않으려


<올빼미>

★★★


 <왕의 남자> 조감독이었던 안태진 감독의 데뷔작이자 <정직한 후보 2> 이후 2달도 되지 않아 신작을 내놓은 NEW의 <올빼미>입니다. <택시운전사>, <봉오동 전투>에 이어 다시 만난 류준열과 유해진을 주인공으로 최무성, 조성하, 박명훈, 김성철, 안은진, 조윤서 등이 함께했죠. 꽤 굵은 영화임에도 아직까지는 제작비나 손익분기점 규모가 알려지지 않았네요. 개봉일은 오는 11월 23일로 잡혀 있습니다.



 맹인이지만 뛰어난 침술 실력을 지닌 경수는 어의 이형익에게 그 재주를 인정받아 궁으로 들어갑니다. 그 무렵, 청에 인질로 끌려갔던 소현세자가 8년만에 귀국하고, 인조는 아들을 향한 반가움도 숨긴 채 정체모를 불안을 드러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둠 속에서는 희미하게 볼 수 있었던 경수가 소현세자의 죽음을 목격하고, 진실을 드러내려는 세력과 그를 감추려는 세력의 본격적인 대립이 시작됩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부터 <물괴> 등의 많은 영화들이 그랬듯, 실록의 빈 자리를 상상력으로 채워넣는 사극입니다. 인조 23년, 침술로 치료를 시도하였으나 학질로 세상을 떠난 소현세자의 이야기에 주맹증 침술사라는 가상의 인물을 집어넣었죠.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들을 바닥에서부터 설명하지 않고도 일종의 전제로 삼을 수 있고, 덕분에 압축적인 이야기 전개가 가능한 구조입니다.



 가장 비슷한 영화라고 하면 <관상>을 꼽을 수 있겠죠. 권력을 두고 벌이는 세도가들의 암투에 특별한 재주를 지닌 천민 혹은 평민이 개입하여 관객들의 눈으로 높으신 양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봅니다. 보통은 그 재주 덕에 그 신분으로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자리에서 감히 꿈도 꾸지 못할 광경을 목격하게 되는데, 모두가 알고 있거나 반대로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의 귀퉁이가 사실은 이랬다며 접근하죠.


 절대적인 신분 사회에서의 권력 다툼은 일반적인 양상과 조금 다릅니다. 증인은 증인이, 증거는 증거가 될 수 없어지기가 너무나 쉽죠. 어느 안전에서 감히 입에 올렸다간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잡초마냥 짓밟혀도 누구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때문에 보아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지내는 것이 분수에 맞는 삶을 오래도록 이어갈 수 있는 비결 아닌 비결로 묘사되죠.



 <올빼미>는 바로 이 지점, 이 문장에 주목한 영화입니다. 보아도 못 본 척 해야 했던, 그런 묵인 하에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너무나 많은 피와 눈물이 모인 곳이 바로 조선의 권력 사회였습니다. 주인공 경수는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지만, 정확히는 빛이 있는 곳에서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으나 빛이 없는 곳에서는 조금 볼 수 있는 주맹증을 앓고 있죠.


 경수에겐 낮이 밤이고 밤이 낮이며 빛이 어둠이고 어둠이 빛입니다. 모든 것이 드러나 있을 때에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지만, 반대로 모두가 무언가를 감추려 들 때엔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궁궐에서, 특히나 누구도 그가 밤에는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곳에서 경수의 존재는 이보다 상징적일 수 없죠.



 실록의 빈 자리를 자신만의 설정으로 채워넣는 능력은 출중한 영화입니다. 실제 역사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을 잘 파악한 뒤 어쩌면 정말 그랬을 수도 있지 않겠냐는 이야기꾼의 입담을 보는 것만 같죠. 보통은 평민 혹은 천민이 거기 있다는 사실 자체가 대충 넘어가야 하는 설정 오류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앞을 볼 수 없기에 누구도 그의 존재를 신경쓰지 않는다는 설명으로 설득력을 확보합니다.


 관객들은 경수가 앞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나머지 인물들은 그를 모르거나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긴장 상황의 활용도도 높습니다. 스릴러 영화에서 소위 말하는 서스펜스를 끌어올리기 아주 좋죠. 단서를 흘리고 주워담는 방식이 다소 단순하고 기계적이기는 하나, 상황을 가능한 모든 사람에게 이해시키려는 의도라면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왕위를 둘러싼 다툼이 본격적이 시작된 이후에도 문제 상황의 기승전결이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은밀해져 가는데도 '앞을 볼 수 없으니 그 공간에 들어가 있을 수 있음-본인은 눈치채지 못한 단서를 흘림-누군가 그를 통해 뒤를 쫓음' 식의 구성이 반복되죠. 영화 초반 경수가 희미한 발소리만 듣고도 병을 짐작해낼 정도로 잘 듣는다는 사실은 모두가 잊은 것만 같습니다.


 또한 경수가 목격하는 상황을 만들어 주기 위해, 그리고 장면 연출에 있어 빛과 어둠을 활용했음을 강조하기 위해 전등 스위치를 켜고 끄듯 촛불이 꺼지고 빛이 사라지는 흐름도 되풀이되죠. 말 한 마디면 목숨줄 따위도 손쉽게 끊을 수 있는 조선 최고의 권력들이 얽힌 음모의 한가운데에서 경수의 활약을 강조하려니 그들은 놀랍도록 허술해지는 가운데 혈혈단신 경수는 서서히 초인의 경지에 이릅니다.


 류준열의 경수, 유해진의 인조, 조성하의 최대감, 최무성의 이형익, 김성철의 소현세자 등 권력 다툼의 정중앙에 있는 인물들을 제외하면 서사 면에서나 배우의 연기력 면에서나 걸리는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후자는 초중반부의 가벼운 장면에서조차 영화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기도 하는데, 후반부엔 해당 캐릭터가 등장하기만 해도 몰입이 흐트러질 지경입니다.



 인물과 사건, 전반부와 후반부, 상업성과 작품성, 실화와 각색, 주연과 조연 등 여느 작품이라면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요소들이 힘을 합치기보다는 나눠 가지는 편입니다. 한 쪽에 힘을 주고 있으면 다른 한 쪽이 가라앉는데, 과감히 선택하는 대신 어느 한 쪽을 내려놓지 못하고 모두 붙잡고 있죠. 그럼에도 무너지지는 않았으니, 시도와 의도를 증명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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