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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Nov 19. 2022

<몸값> 리뷰

바닥보다 튼실한 혓바닥


<몸값>

★★★


 <콜> 이충현 감독이 2015년 신인 시절 내놓았던 동명의 단편이 장편 시리즈로 재탄생했습니다. 전우성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진선규, 전종서, 장률, 박형수, 정인겸, 이주영 등이 모인 <몸값>이죠. 지난 10월 28일부터 티빙에서 3부씩 2주, 총 6부작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넓게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콘크리트 유니버스 작품이라고는 하는데, 아직은 밝혀진 바가 그리 많지 않네요.



 외딴 모텔에서 만난 형수와 주영. 100만 원을 들고 들어온 형수는 기대와는 다른 주영의 모습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화대를 깎으려 들고, 주영은 그런 형수의 모습이 못마땅하지만 차마 거절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흥정을 벌이던 중 주영의 진짜 목적이 밝혀지고, 판이 파국으로 치달으려는 찰나 세상이 무너지듯 커다란 지진이 일어나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더 큰 재앙이 시작됩니다.


 짧고 굵은 반전이 곧 정체성이었던 단편이 세계관까지 오가는 장편 시리즈로 거듭났습니다. 원작의 구성을 일부 따라가긴 하나 전체 분량으로 보면 10분의 1도 되지 않죠. 원작이라는 표현보다는, 해당 단편을 훨씬 거대한 무언가의 시작점이라고 가정한 채 신나게 써내려간 결과가 바로 이번 시리즈라고 보아야 좀 더 정확합니다. 물론 미리 알아야 할 것은 전혀 없겠구요.



 그렇게 베일을 벗은 <몸값>의 진짜 장르는 재난 블록버스터입니다. 외딴 곳에 있던 커다란 모텔이 난데없는 지진에 무너지고, 바깥을 향하는 구멍이란 구멍은 죄다 무너져내립니다. 다들 가만히 있어도 살 확률보다 죽을 확률이 훨씬 높은 마당에, 각자의 목적을 숨긴 채 속고 속이는 권모술수가 판치죠. 게다가 아무리 진실이란 것이 하나씩 드러나도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찜찜함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재난보다는 재난 상황에 집중합니다. 롤랜드 에머리히 영화들처럼 재난이 덮쳐오는 광경 자체를 보여주기보다는 그렇게 생겨난 무법천지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죠. 그러면서도 한정된 공간을 무대로 하는 여느 동종 영화들에 비하면 무대의 크기가 큰 편이라 주인공들의 동선도 활발하고, 덕분에 다채롭고 능동적인 상황 전개가 가능합니다.



 아주 많지는 않은 등장인물들의 가운데엔 진선규의 형수와 전종서의 주영이 있습니다. 이들은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각자의 모든 것을 의도적으로 숨긴 사이입니다. 이름이나 직업은 물론 서로의 목적이나 정체마저도 베일에 싸여 있죠. 이후 벌어지는 재난 상황을 전제한 수 싸움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위치하게 된 아비규환에서 의지할 곳은 차라리 초면인 사이뿐입니다.


 이 지점이 바로 <몸값>의 동력입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그리고 그 인물들을 담고 있는 이 시리즈 또한 '자신만이 아는 것'을 한아름 갖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적당한 순간에 적당한 양을 풀어야 합니다. 너무 많이 풀면 남는 것이 없어 죽게 되고, 그렇다고 하나도 풀지 않으면 칼을 든 사람들에게 빼앗겨 죽게 됩니다. 한 번의 움직임에 너무나 많은 것이 달려 있죠.


 하나의 상황이 새롭게 펼쳐질 때마다 유리한 사람이 다릅니다. 각자 가진 것이 다르고 아는 것이 다른 덕입니다. 형수의 생존 확률이 높을 때가 있는가 하면 주영의 생존 확률이 높을 때가 있고, 힘을 합쳐야 살 수 있는 때가 있는가 하면 흩어져야 살 수 있는 때도 있습니다. 넓게 보면 폐허가 된 하나의 거대한 공간임에도 전개 방식은 꽤 다양한 편이죠.



 다만 이처럼 모든 등장인물들이 같은 입장에서 같은 수법으로 나오다 보니 인물의 개성이 떨어집니다. 출발점에서 가졌던 성별이나 (겉으로 보이는) 직업 등을 제외하면 내면의 개성은 꽤나 일률적이죠. 특히 마침 두 주인공 다 입만 열면 욕설이 추임새로 붙는 터라, 대사를 텍스트만 놓고 보면 둘 중 누가 이야기하는 것인지 맞히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넘쳐나는 거짓들 사이에 찔끔찔끔 풀리는 진실이 캐릭터가 되건 사건이 되건 세계관이 되건 무언가를 짜맞춰나가야 하는데, <몸값>은 서로가 속고 속이는 인간 군상에 고개를 박고 차례를 지나칠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습니다. 이제 좀 다음 이야기가 나오나 싶으면 알고 보니 방금까지는 거짓이었고 새로운 무언가가 시작되는 구성이 필요 이상으로 반복되죠.



 재난 상황을 다룬 작품들이 으레 그렇듯 주인공들을 제외한 조연이나 단역들은 <인사이드 아웃>의 감정들마냥 하나의 계층이나 인구를 형상화한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대사부터 표정까지 한껏 과장되어 어차피 어떻게든 죽을 텐데, 빨리 죽기나 하면 더 이상 안 봐도 될 것이라는 묘한 불만으로 일관하게 되죠. 애초에 작품 자체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 힘입어 퇴장에는 결코 망설이지 않기도 하구요.


 왜인지 입 밖으로 내는 말의 절반이 책임지라며 징징대는 소리뿐인 장률의 극렬은 이 대접에서 벗어나 주연 취급을 받는데,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쉽게 오가는 와중에도 본인의 존재 이유를 능동적으로는 전혀 증명하지 못합니다. 비슷한 과정으로 원체 뭘 숨겨 놨다가 뒤늦게 꺼내들기를 좋아하는 시리즈라, 뭐 대단한 것이라도 있겠지 싶은 일말의 기대가 최후반부까지 누적되어 한 번에 터져내리죠.



 이야기의 무대를 넓히며 장르를 탐구하는 시도 자체는 문제가 없었고, 화면이 인물과 공간을 번갈아 다님에도 매 에피소드를 원테이크처럼 연출하는 등 대담함이 엿보이는 순간도 많습니다. 그런 대담함을 뽐낼 자리가 좁아 판을 한껏 키웠지만,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달은 순간엔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그마저도 무시했는지 다음 시즌 예고도 아닌 다음 화 예고쯤에서 끊은 배짱도 썩 곱게 보이지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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