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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27. 2023

<본즈 앤 올> 리뷰

그럼에도 불구한 핏빛 사랑


<본즈 앤 올>

(Bones and All)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서스페리아>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과 티모시 샬라메, <이스케이프 룸>의 테일러 러셀이 뭉쳤습니다. 지난 제 79회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과 신인배우상에 빛나는 <본즈 앤 올>이죠. 부산영화제 상영작으로 인기를 모으기도 했으며, 예매를 놓쳤던 팬들이 아쉽지 않게 오는 11월 30일로 비교적 금방 공식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열여덟 살이 된 매런은 유일한 가족인 아빠마저 곁을 떠나자 한 번도 보지 못한 엄마를 찾는 길에 오릅니다. 절망 속에 남들 모르게 숨기고 참아 왔던 식성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서서히 알아가던 중, 우연히 자신과 같은 소년 리를 만나죠. 그와 동행하며 매런은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만, 평범한 삶을 갈구하는 내면 또한 결코 쉽게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1만 명의 사람이 있다면 1만 개의 사랑이 있다는 믿음에 아주 충실한 영화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보다 변화무쌍하고 다양할 수 없을 텐데, 그렇다면 반대로 이런 만남과 관계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되돌아보죠. 물론 사랑의 위대함은 바로 그런 모습조차도, 나아가 그런 모습이기에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음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즈 앤 올>은 개중에서도 그와 같은 묘사를 감성적으로 포장할 수 있다면, 그 한계를 시험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인공인 매런은 식인의 본성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자신이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3살 때부터 사람의 살을 탐했죠. 인류 사회 통념상 누구도 용납할 수 없는 이 모습에 매런의 부모마저도 자신들이 괴물을 낳았다는 생각에 괴로워했습니다.


 누구보다 괴로웠던 것은 매런 본인이었습니다. 평소엔 아무렇지 않은 듯 평범한 10대의 삶을 살아가지만, 순간의 갈망을 이기지 못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잠깐의 굴복은 자신과 주변인들의 일상을 남김없이 파괴합니다. 세상과 부모가 원망스럽지만, 아버지는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을지언정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원망과 외로움에 사무치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여기에 영화는 하나의 특이한 설정을 집어넣었습니다. 식인을 하는 사람들은 냄새를 통해 서로를 본능적으로 알아봅니다. 가깝게는 서로와 눈을 마주친 순간, 멀게는 수백 미터 밖에서도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죠. 덕분에 이 넓은 세상에 이렇게 태어나 이런 고통을 겪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리라는 공포에 평생 시달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평범함은 사치라는 불안은 여전합니다. 식욕이 돌아오는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나 스스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이런 끔찍한 모습을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겠다 확신하죠. 친구는커녕 나를 낳아 준 사람마저도 사랑이 아닌 세상을 향한 의무로 내 곁에 있었다는 생각은 너무나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우연히 만난 한 노인은 자신의 서글픈 삶과 말년을 미리 들여다보는 것만 같죠.



 그러던 중 리를 만납니다. 자유롭고 당당하지만 동시에 불완전한 그에게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발견합니다. 망망대해에서 혼자 떠돌아다니던, 어쩌면 그렇게 평생을 떠돌다 죽을 것이라 확신했던 매런에게 리는 구원이었습니다. 모두가 자신을 버렸거나 버릴 것이라는 아픔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정한 사랑을 향한 갈망이 되었던 차였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도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짧았습니다. 리와 함께하면 완벽해질 것이라 막연히 믿었던 것들의 단단한 벽을 마주했습니다. 모든 것이 알아서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현실과 달랐습니다. 리와의 만남이라는 불가능을 이룩했음에도 세상은 여전히 자신에게 진정한 사랑의 자리를 내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제는 정말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그 때 '본즈 앤 올'이 등장합니다. 나와 같은 사람도, 나와 같은 사람만이 꿈꿀 수 있는 궁극적인 사랑의 형태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 것이 있을리가 없다며 부정하지만, 그를 피와 살로 경험한 사람은 그것의 황홀함을 노래합니다. 알게 된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이제 매런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순간만을 꿈꾸고 기다리며 살아가는 몸이 되었습니다.


 얼개만 놓고 보면 루카 구아다니노가 그리는 판타지 어드벤처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절대 다수는 존재조차 모르는, 극소수만이 그것을 보았거나 경험했다고 주장하는, 심지어 누군가는 부정하는 무언가를 막연히 찾아 떠나는 순수한 영혼들의 여정이죠. 그를 시작하게 한 것도, 지속하게 한 것도, 끝에 다다라 만난 것도 사랑이라는 점이 소재부터 전개에 이르는 <본즈 앤 올>의 모든 것을 특별하게 합니다.



 '핏빛 사랑'이라는 수식에 이보다 들어맞는 이야기는 없을 겁니다. 나를 낳은 사람, 키운 사람, 만난 사람, 그리고 나 자신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지만, 그런 모습으로도 사랑하고 싶고 그런 모습마저도 사랑받고 싶은 본능을 말 그대로 무자비하게 펼쳐냈습니다. 보는 사람 뼈마디가 욱신거리는 광경이 엄청난 진입 장벽으로 기능하긴 하지만, 그 이질감마저 영화의 온기에 의도적으로 녹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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