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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27. 2023

<압꾸정> 리뷰

애프터 없는 비포


<압꾸정>

★★☆


 2018년 <동네사람들>의 임진순 감독 신작, <압꾸정>입니다. 2020년 말 촬영을 완료하여 <압구정 리포트>라는 제목으로 개봉을 준비했으나, 개봉 시기를 잡지 못하고 연기된 많은 영화들의 전철을 따르던 중 제목도 <압꾸정>으로 바꾸었죠. 마동석, 정경호, 오나라, 최병모, 오연서, 임형준 등과 함께하여 지난 11월 30일 개봉되었습니다.



 샘솟는 사업 아이디어와 타고난 말빨의 압구정 토박이 대국은 한때 잘나가던 실력 탑 성형외과 의사 지우를 만납니다. 재기를 꿈꾸는 지우의 욕심과 잠재력을 한눈에 알아본 대국은 일생일대의 사업 수완을 발휘할 때가 왔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하죠. 남다른 추진력으로 평소 갈고 닦았던 인맥을 한데 모은 대국은 압구정을 대표하는 성형외과를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뷰티도시를 꿈꿉니다.


 어느 모로 보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역사물(?)을 기대했던 것은 아닌데, 첫 장면부터 무언가 바탕이 된 사건이 있음을 암시하며 포문을 엽니다. 때는 2007년, 등장인물들이 피쳐 폰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2007년인 것이 티도 나지 않음에도 굳이 선택한 이유가 있기는 하겠죠. 한때 화제가 되었던 성형 프로그램 등이 언뜻언뜻 등장하는 것을 보면 시대적 배경이 있기는 한 것 같구요.



 그 중심엔 누구도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건 많은 한 남자가 있습니다. 요즘 <범죄도시> 시리즈를 하나의 세계관으로 확장시키고 있는 배우이자 빅편치 엔터테인먼트 대표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마동석 그 자체처럼 보이는, 대표님을 한 명의 깜찍한 캐릭터로 그려낸 것처럼 보이는 남자 강대국이죠.


 배우가 하나의 장르가 되는 것은 모든 배우들의 꿈이기도, 끝이기도 합니다. 이 사람이 나오기만 하면 어떤 장르와 기승전결이건 간에 평균적인 맛을 내죠. 언제 어디서 문을 열고 들어가도 익숙한 맛을 기대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 음식점과 같습니다. 가끔 지점 탓인지 아르바이트생 탓인지 맛이 조금 꼬름한 날도 있지만, 어쨌든 이름만 들었을 때 벌써 혀 끝에 찾아오는 맛 때문에 향하게 되는 곳이죠.



 <압꾸정>도 그 틀에 꽤나 충실한 영화입니다. 다만 '마동석 영화'라는 수식은 최근 몇 년 사이 그 의미를 살짝 확장했는데, 두 주먹으로 거칠 것 없이 때려눕히는 모습에 호방한 입담이 더해졌죠. 법과 주먹의 경계를 살살 넘나들며, 형은 다 알 수가 있다며 사람들이 마동석이라는 이미지에 기대할 만한 대인관계 스킬(?)까지도 장르의 양념이 되었습니다.


 보고 있으면 웃기기는 합니다. 주먹으로 패는 사람도 있었고 혓바닥으로 패는 사람도 있었지만, 둘 다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사람은 어째 딱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의 익살과 완력으로 추진하면 안 되는 것도 될 것만 같고, 정의를 추구하면서도 마냥 정도만을 걸으려고는 하지 않기에 또 인간적이기도 하죠. <압꾸정>을 포함한 최근의 마동석 영화들은 모두 같은 곳을 지향합니다.


 이 와중에 멀쩡한 기승전결이 있어도 마동석 영화라는 수식에 뼈대를 유지하고 있기가 쉽지는 않은데, <압꾸정>은 그마저도 제대로 갖고 있지 않습니다. 성형 타운을 건설하려다가 이런저런 사업적 난관 때문에 크고 작은 다툼을 겪는 그림은 영화의 러닝타임을 지탱할 힘이 없죠. 이렇다할 악당도 갈등 구조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기는 하는데, 지향점이 없으니 흐지부지 비틀대다 마무리 포즈만 취하는 꼴입니다.



 갖고 있는 재료로 사건을 쥐어짜내려니 뜬금없는 억지를 부립니다. 조연들은 각자의 개성이라고는 없이 전개의 기폭제와 촉진제로 소비될 뿐이죠. 모임마다 톰 브라운을 입고 나타나서는 압구정 한복판 15층짜리 성형외과 원장이 된 사람이 월세집 곰팡이에 고생하는, 현금 130억을 쌓아둔 사람이 집 계약금에 쩔쩔매는 광경이 말이 안 된다는 사실은 알고 그랬어도 문제, 모르고 그랬어도 문제입니다.


 후반부에 이런저런 사건이 일어나긴 하나 별 파급력은 없습니다. 얼핏 심각해 보이는 일엔 별 반응이 없고, 딱히 대단한 것 같지 않은 일엔 열을 내니 영화의 톤을 종잡을 수가 없죠. 예측이 가능한 건 어찌됐건 대국이 입이든 주먹이든 써서 모든 것을 원래대로, 최소한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영화도 스스로가 그렇게 보인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죠.



 가벼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머리는 비우고 보는 영화들이 소위 말하는 '즐기는 자' 모드가 되려면 꼭 필요한 자질입니다. 산만하게 꺼내놓는 게 많으니 뭔 말인지 알겠냐는 유행어 아닌 유행어를 주기적으로 던져줘야 하지만, 어쨌든 본인이 그렇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뭐가 잘 안 풀려도 씩 웃으면서 어깨 한 번 퉁 치고 아이 좀! 하고 지나치는 여유는 아직 독보적이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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