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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 하나만 들어줘>

작지만 강한 맘스 터치

by 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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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 하나만 들어줘>
(A Simple Favor)
★★★☆


미국 극장 방문 당시 보려면 볼 수 있었지만, 국내 개봉 소식이 살짝 들리는 듯해 기다렸던 <A Simple Favor>입니다. 정식 제목은 약간의 의역이 들어간 <부탁 하나만 들어줘>로 결정되었네요. <스파이>와 2016년판 <고스트버스터즈>의 폴 페이그 감독 신작입니다. 안나 켄드릭과 블레이크 라이블리를 필두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헨리 골딩도 이름을 올렸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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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열심히 하며 동료 엄마(?)들 사이에서는 초인 의심을 받는 우리의 주인공 스테파니. 그런 그녀 앞에 외모부터 커리어까지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인 에밀리가 나타납니다. 같은 학부모라고는 믿기지 않는 아우라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절친인 아들들 덕에 둘은 친구가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급하게 사라진 에밀리가 돌아오지 않고, 미지근한 경찰과 차오르는 걱정에 스테파니는 직접 조사를 시작하죠. 그런데 파면 팔수록 의심과 의혹은 꼬리를 뭅니다.

첫인상이 좋습니다. 확고한 스타일이 있습니다. 정장을 차려입은 블레이크 라이블리의 차가움과 하트를 뿜고 다니는 안나 켄드릭의 사랑스러움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누구든 둘 중 한 명에겐 반하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각본도 그 시도에 힘을 보탭니다. 초반부는 블레이크 라이블리에게, 후반부는 안나 켄드릭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돌리며 은근한 추파를 던집니다.

초반부의 캐릭터 배치가 끝난 뒤엔 곧바로 범죄 미스터리로 장르를 전향합니다. 에밀리가 사라지고 스테파니는 뒤를 밟습니다. 사진 찍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등 어딘가 이상했던 에밀리의 행적이 하나둘씩 설명됩니다. 그와 동시에 스테파니와 에밀리의 과거사가 끼어들고, 친구라고 부르기엔 다소 일방적이었던 둘의 균형추가 가운데로 옮겨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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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금 혼란스럽습니다. 영화가 끊임없이 유머와 위트를 시도하는 탓입니다. 화장실 개그를 남발하며 실없어지는 수준까지 떨어지지는 않지만, 영화가 특정한 캐릭터를 선과 악 중 어떤 곳에 데려다 놓으려는지 헷갈리기엔 충분합니다. 중반부 장면들에선 주인공들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는 데 집중력을 써야 합니다. 착한 사람은 결국 아무도 없다는 결론을 내지 않는 이상 최소한 분명한 경계선은 그었어야 할 텐데, 초반의 쿨함을 어떻게든 유지하려 지나치게 애를 씁니다.

사족과 무리수도 슬슬 많아집니다. 딱히 궁금하지도 않을뿐더러 들어갈 이유도 없는 스테파니의 옛날 이야기는 러닝타임을 잡아먹습니다. 옷 방 장면 등 에밀리의 초현실적인 장난질은 조금만 따져 보아도 순전히 연출 욕심 때문에 들어갔음이 명백합니다. 또한 에밀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비밀히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리 봐도 주변인들이 놀랍도록 아둔한 덕인 듯 한데, 그걸 본인의 치명적인 매력이라 굳게 믿는 태도 덕에 뒷심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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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배우의 힘과 장르의 힘이 워낙 탄탄합니다. 좀 더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나를 찾아줘>같기도 합니다. 뻔하지만 뻔하게 흘러가지 않고, 한 수에 안주하지 않은 채 두 수 앞을 내다보려 노력한 티가 납니다. 한편으로는 '작은 부탁'보다는 더 좋은 제목을 지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아무 생각 없이 한 사소한 부탁이 구르고 굴러서 파국으로 치닫는 전개를 기대했는데, 전체적인 틀은 일반적인 실종 범죄 미스터리에 훨씬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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