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거미줄에 걸린 소녀> 리뷰

밀레니엄 향 첨가

by 킴지
girl_in_the_spiders_web_ver3_xlg.jpg?type=w773


<거미줄에 걸린 소녀>
(The Girl in the Spider's Web)
★★☆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이 10부작으로 기획했으나, 3편까지 출간한 뒤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만 <밀레니엄> 시리즈. 현재 다비드 라게르크란츠가 정식 후속작들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밀레니엄 시리즈는 천재 해커 리스베트 살란데르와 언론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가 여러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 구성으로, 이번 <거미줄에 걸린 소녀>는 벌써 세 번째 영화화죠. 누미 라파스와 루니 마라에 이은 3대(?) 리스베트 자리는 <더 크라운>의 클레어 포이가 가져갔습니다.


movie_image.jpg?type=w773


일명 '악의 심판자'라 불리는 비밀스런 천재 해커 리스베트는 한 의뢰인으로부터 위험한 제안을 받습니다. 온라인 접속만으로 핵무기를 주무를 기술을 빼내 달라는 것이었죠. 하지만 임무를 수행하던 중 괴한들의 습격을 받고, 의뢰인마저 살해당합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리스베트는 이번 일이 전 세계를 위협하는 범죄 조직 '스파이더스'의 소행임을 알게 되지만, 조사와 추적이 이어질수록 점점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게 되죠.

<거미줄에 걸린 소녀>는 라게르크란츠의 손에서 나온 첫 번째 밀레니엄 시리즈를 원작으로 둡니다. 시리즈 연대순으로는 4편이죠. 스웨덴판 밀레니엄 시리즈는 3편까지 나왔었고, 할리우드판 밀레니엄은 1편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렇게 이번 영화는 속편도 리부트도 리메이크도 아닌, 애매하디 애매한 자리에 올라 버렸죠. 하지만 리스베트와 미카엘이 오랜 동료라는 사실만 알면 독립된 작품들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게다가 이번 영화는 접근법을 살짝 바꿨습니다. 미카엘의 비중을 최소화하고 사실상 리스베트를 유일한 간판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죠. 천재 해커임은 물론 대단한 판단력과 활동력까지 갖춘, 웬만한 첩보물에서 2인분 이상 해내는 캐릭터로 변신합니다. 그리고 이는 <거미줄에 걸린 소녀>가 저지른 근본적인 실수입니다. 원작의 인기와 줄기를 토대로 제작된 영화가 원작의 고유한 향기를 지우려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movie_image_%281%29.jpg?type=w773


핵무기를 노리는 악당 집단과 그를 막으려는 주인공. 첩보 영화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설정입니다. 닳고 닳아서 육수도 나오지 않을 소재입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색을 유지하는 영화들이 꾸준히 존재했습니다. 가장 최근만 해도 똑같은 소재를 차용했지만 시리즈 최고작이라는 평까지 들었던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이 있었죠. 공들여 쌓아올린 캐릭터를 토대로 발전을 거듭한 덕입니다.

하지만 <거미줄에 걸린 소녀>의 리스베트는 스타일과 감정을 맞바꾸었습니다. 다른 영화들에서 해커가 주인공이 아닌 조력자로만 묘사되는 데엔 이유가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 키보드만 두들겨서 비현실적인 전지전능함을 과시하는 그림엔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거미줄에 걸린 소녀> 역시 그 한계를 깨닫고 자동차 추격과 저격 등 곁가지 액션을 시도하지만, 규모가 영 시시합니다.

캐릭터의 내면과 관계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감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미카엘을 포함한 조연들은 리스베트의 도우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리스베트는 누구와도 이렇다할 감정적 교류를 하지 않습니다. 과거사는 서서히 밝힌 노력이 민망할 정도로 몰개성합니다. 이쯤 되면 리스베트가 리스베트인 근거도, 리스베트가 리스베트여야만 할 이유도 없습니다.


movie_image_%282%29.jpg?type=w773


다시 말해 그저 그런 양산형 첩보물에 밀레니엄 시리즈의 줄거리를 가져다 붙인 꼴입니다. 액션과 색채에만 서두르며 전작들은커녕 다른 영화들과 구분할 개성도 전혀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주인공의 두뇌를 내세워야 할 범죄 스릴러가 핵무기를 노리는 국제 범죄 집단을 끌어들이며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봅니다. 방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만 그럴듯할 뿐, 세계적인 조직씩이나 되는 소재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2편 없는 1편만 두 개째라니, 당분간 새로이 손을 댈 제작사를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keyword
킴지 영화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구독자 297
작가의 이전글<부탁 하나만 들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