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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28. 2023

<스즈메의 문단속> 리뷰

돌아온 모습 그대로 다시 만나


<스즈메의 문단속>

(すずめの戸締まり)

★★★☆


 2019년 <날씨의 아이> 이후 간만에 돌아온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입니다. 본토 일본에서는 작년 11월 개봉되어 흥행 수익 1억 달러를 넘기며 일본 역대 박스오피스 21위에 안착했습니다. 하라 나노카, 마츠무라 호쿠토, 야마네 안, 후카츠 에리 등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죠. 국내엔 오는 3월 8일 일반관은 물론 아이맥스 개봉까지 확정지으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규슈의 한적한 마을에 살고 있는 소녀 스즈메는 문을 찾아 여행 중인 청년 소타를 만납니다. 그의 뒤를 쫓아 산속 폐허에서 발견한 낡은 문. 스즈메가 무언가에 이끌리듯 문을 열자 마을에 재난의 위기가 닥쳐오고, 가문 대대로 문 너머의 재난을 봉인해 온 소타를 도와 간신히 문을 닫습니다. 안도도 잠시, 그 날 이후 일본 각지의 폐허에 재난을 부르는 문이 열리며 스즈메와 소타의 뜻하지 않는 동행이 시작됩니다.


 시간을 건너 연결되고 날씨를 조종하는 소녀가 나오더니 이번엔 지진을 일으키는 괴수와 맞섭니다. 겉으로 보기엔 너무나 평화롭고 평범해 보이는 이 세상에 사실은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활약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수퍼히어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설정을 들고 나왔죠. 초반부터 눈과 귀를 게을리 놀려서는 안 될 고유명사들이 가득합니다.



 일본 각 지역엔 현세로 튀어나오려 몸부림치는 '미미즈'라는 거대한 힘이 있습니다. 이들의 난동을 막기 위해 동부와 서부에 '요석'이라는 신비한 돌이 박혀 있지만, 그것으로 부족해 각지의 폐허에 생성되어 있는 '뒷문'들이 수시로 열려 미미즈가 새어나오죠. 한 번 열린 문을 제때 닫지 못하면 미미즈가 땅과 충돌해 지진을 비롯한 재난이 일어나고, 이를 막으려 문을 관리하는 존재를 '토지시'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스즈메의 문단속>은 자신만의 이름과 법칙들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형성합니다. 지구과학 쪽으로 설명되어 있는 지진의 원인을 자신만의 것으로 규정한 덕에 그 시작과 끝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할 자격을 가져가죠. 달리 말해 지진이 일어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에 더해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정의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스즈메와 소타가 자리하게 되죠.


 여기에 하나의 겹을 또 더합니다. 소타는 이미 숙련된 토지시고, 스즈메는 토지시 가문은커녕 방금 전까지는 세상에 이런 개념이 있는 줄도 몰랐던 평범한 고등학생이었죠. 그러나 소타는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요석 다이진의 저주에 걸려 의자가 되어 버리고, 스즈메는 조력자가 아닌 주인공의 무대에서 성장하고 활약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그 스즈메에겐 자신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비밀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일기장에서도 스스로 지워 버렸지만 이유조차 잊어버린, 세상을 일찍이 떠난 엄마에 대한 기억이었죠. 토지시가 아님에도 토지시들만이 볼 수 있는 것들을 볼 수 있고, 초면이었던 소타가 어딘가 익숙해 보였던 의문들이 해소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그저 세계관을 설명하는 방식만으로도 <스즈메의 문단속>이 중반부까지 평균 이상의 흡인력을 갖추는 비결입니다.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큰 것을 좌판에 죄다 깔아놓은 뒤 시간을 거꾸로 돌리듯 지금 보신 것이 사실은 이런 것이었다며 설명하죠. 전개상 복선이 아닌 것들에도 복선 역할을 부여하는 셈인데, 아귀가 어느 정도 맞아들어가다 보니 무릎을 치게 되는 순간이 많습니다.



 그렇게 모든 그림이 맞춰진 순간 영화는 계속해서 연결되어 오던 화살표를 스크린 밖으로 향하게 합니다. 3월 11일. 굳이 연도를 붙이지 않아도 일본인들에겐 잊을 수 없는 날이 된 그 날이 등장하며 스즈메의 세상과 관객들의 세상이 이어집니다. 전작들에서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위로는 더욱 직접적인 형태를 갖추어 따뜻한 악수와 포옹을 건네죠.


 재난의 피해자와 희생자가 된 여러분은 결코 어떠한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신은 그저 변덕스러운 아이와 같은 존재로, 여러분을 미워하거나 여러분의 잘못을 벌하려 내린 재난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들은 불안하고 불완전하지만, 그것들이 모여 만들어진 일상이야말로 우리가 누리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자 모든 것입니다. 열린 문을 닫는 것은 종결이 아니라 안정과 나아감의 시작입니다.



 이와 같은 작품의 방향성은 여러 장면과 대사들을 통해 꽤 직접적으로 설명되는데, 소타가 갇히고 만 스즈메의 유아용 의자가 좋은 예가 됩니다. 스즈메의 의자는 멀쩡한 의자라면 갖추고 있어야 할 네 개의 다리 중 하나가 없습니다. 그래서 소타는 의자가 된 처음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해 비틀거리죠. 어쩌다 다리가 없어진 것이냐는 질문에 스즈메는 그저 잃어버렸다가 찾았더니 다리가 없었다고 답변합니다.


 여기서 신카이 마코토가 주목한 것은 다리가 없어진 이유도, 없어진 다리의 회복도 아닙니다. 세 개의 다리로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걷고 또 뛸 수 있게 적응하는 것이죠. 없어진 이유를 알아낸다고 해서 지금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의자의 몸으로 다리를 만들어 붙이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모습으로도 이전의 정신을 잃지 않을 새로운 목표와 이유겠지요.



 다만 텍스트를 퍼즐처럼 조합한 각본 특성상 결과적으로는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 정해져 있기에, 그 쪽으로 향하는 동력은 흐지부지되는 순간이 많습니다. 인물의 감정선이나 동기가 마치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직감이라도 한듯 맹목적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대부분의 조연들은 스즈메에게 홀린 듯 일차원적인 조력자로 등장하는 통에 전개는 미미즈의 출몰과 해소를 반복시키는 것뿐이죠.


 그리고 그와 같은 설득력의 순간적인 부재는 신카이 마코토 특유의 눈부신 작화를 한층 끌어올려 해결합니다. 상황만 놓고 보면 물음표에 가까운 순간에 온갖 시각적인 장식들(그리고 약간의 주술적인 장치들)을 가져다 붙여 시선과 생각을 돌리죠. 실시간으로야 최소한 화면의 웅장함과 화려함에 압도되어 신경쓰지 않을 수 있지만, 지나간 뒤엔 그래서 방금 뭐가 어떻게 되었나 싶은 이물감도 꾸준히 남습니다.



 작품의 완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영화 밖의 지식이 필요하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과거의 아픔을 안은 채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맞이할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특이한 동시에 특별한 위로였고, 그 특이함을 그저 기이하기만 한 것으로 비춰지지 않게 한껏 노력했습니다. 곳곳에 빛이 내려 아름답게 반짝이는 신카이 마코토의 풍광은 곧 그가 바라보고 소망하는 세상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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