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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l 15. 2023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 리뷰

바늘 의적이 소 의적 된다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

(Dungeons & Dragons: Honor Among Thieves)

★★★


 <베케이션>의 조나단 골드스틴, 존 프랜시스 데일리 콤비가 파라마운트와 손잡고 만든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입니다. 전 세계적 인기를 자랑하는 TRPG를 기반으로 한 작품으로, 20세기 말 입술 파랗게 칠한 제레미 아이언스와 함께했던 동명 시리즈의 리부트이자 재도전이기도 하죠. 크리스 파인, 미셸 로드리게스, 저스티스 스미스, 소피아 릴리스, 휴 그랜트, 레게 장 페이지와 함께했습니다.



 한때 명예로운 기사였으나 어떤 사건 이후 홀가, 사이먼, 포지와 함께 도적질을 하게 된 에드긴. 소피나의 제안으로 부활의 서판을 얻기 위해 코린의 성에 잠입하지만, 믿었던 동료의 배신 탓에 감옥에 가게 됩니다. 이내 탈옥에 성공한 에드긴은 옛 동료들과 함께 서판과 명예, 그리고 딸을 찾아나서고, 세계를 지배할 야욕에 불타는 레드 위저드의 음모에도 맞서려 하죠.


 몇 퍼센트씩 부족해 보이고 정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고 인간적인 유대도 형성합니다. 굳이 어드벤처나 판타지 장르가 아니더라도 캐릭터 구성만 다양하다면 일정한 재미를 기대할 수 있는 구성이죠. 대장, 라이벌, 잠입, 힘, 두뇌 등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팀이 요구하는 활약이 모여 혼자서는 해낼 수 없었던 대의를 달성합니다.



 <도적들의 명예>는 그를 본격적으로, 그리고 공식적으로 세분화했습니다. 캐릭터별 타고난 특징과 개성을 부여해서 특정한 상황에 맞닥뜨릴 때마다 누군가 활약할 기회를 마련하죠. 소서러, 바바리안, 팔라딘, 드루이드 등 비디오게임을 즐겼던 사람이라면 익숙하고 또 반가울 직업명들이 스크린에서 살아 숨쉬며 적재적소에서 눈요깃거리가 되어 주는 스킬을 마음껏 사용하니 보는 맛이 있습니다.


 특히 판타지 블록버스터의 뼈대를 유지하면서도 원작 <던전 앤 드래곤>에 충실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작용합니다. 보통 영화로 옮기기 쉽지 않은 무언가를 원작 삼은 영화들은 해당 원작의 세계관이나 이름만 겨우 빌려오는 경우가 많고, 종국에는 그럴 거면 다른 제목으로 개봉하지 그랬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죠. 딱히 틀린 말이 아닌 사례들은 슬프게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번 <도적들의 명예>는 다릅니다. 매 순간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고 주사위를 굴려 더한 난관에 봉착하거나 기적적인 묘수를 찾아내는 TRPG의 특성까지도 십분 살렸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거나 도무지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는 위기를 만나도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극중 에드긴의 말마따나 멈추는 순간 실패하는 것이라는 원작의 정신(?)을 나름대로 재해석한 전진이죠.


 물론 치사하게 따지자면 제멋대로식 전개에 그럴듯한 구실을 준비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용어부터 생소한 TRPG는 뭐고 그것의 정수가 임기응변으로 둘러대기 나름인 것을 어떻게 아냐고 하면 할 말은 없겠죠. 실제로 극중 큰 역할을 하는 이리저리 마법봉이나 죽은 자를 살려내서 질문을 할 수 있는(!) 주문 등 각본이 필요로 하는 무언가가 어디선가 뚝딱 튀어나와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도 많기는 합니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티격태격대며 동네 특공대 정도의 전투력이나 분위기에 만족하는 반면, 세계 정복을 목적으로 날뛰는 악당은 지극히도 진지하고 어둡습니다. 이 구도만 비교하자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닮은 점이 많은데, 악당 혼자만 무겁게 구는 모습마저 유머로 소화하는 것까지도 공통점이죠. 물론 그 덕분에 그러지 않아도 지극히 전형적인 악당의 존재감이 꽤 약해지긴 합니다.


 그래도 주인공 일당 쪽은 개성과 역할 분배가 꽤 충실하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에드긴, 홀가, 도릭, 사이먼, 짧고 굵은 등장으로 관객들과 동료들에게도 큰 인상을 남긴 젠크까지, 특정한 상황에서 누가 어떻게 활약할지 그림을 그려 보는 재미가 있죠. 사실상 괴수로도 변신하는 도릭 쪽이 절대 강자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필요한 동물로 변신해 문제를 해결하는 등 소소하게 틀을 깨는 전개도 있구요.



 유쾌하고 즐겁지만 유치하고 가볍습니다. 보기에 따라 한 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대비죠. 보려고 온 사람들을 만족시킬 준비는 되어 있지만, 애초에 이걸 보겠다고 결심하기까지의 진입 장벽이 의외로 높다는 것이 최대의 단점입니다. 동서를 막론하고 호평이 지배적임에도 제작비조차 건지지 못한 흥행 성적이 그를 증명하는 것 같은데, 즐긴 관객들에겐 슬픈 결과가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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