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지 Dec 25. 2018

<PMC: 더 벙커> 리뷰

멍하니 연사


<PMC: 더 벙커>

★★★


 2013년 <더 테러 라이브> 이후 5년만에 돌아온 김병우 감독의 <PMC>입니다. 다시 한 번 하정우를 필두로 이선균은 물론 제니퍼 엘, 케빈 듀란드 등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던 얼굴들을 섭외했네요. 제작 초기엔 군사분계선 벙커를 무대로 벌어진다는 이유로 제목인 'PMC'가 '판문점'의 코드명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듯 한데(...), 흔히 쓰는 'Private Military Company'의 줄임말입니다. 영어 제목은 조금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춘 <Take Point>라고 나와 있네요.



 글로벌 군사기업 블랙 리저드의 캡틴 에이헵은 CIA의 의뢰로 거액의 프로젝트를 맡게 됩니다. 그러나 작전 장소인 DMZ 지하 비밀 벙커엔 약속된 타겟이 아닌 뜻밖의 인물, 북한의 '킹'이 나타나죠. 아시아 최고의 현상금이 걸린 그를 잡기 위해 에이헵은 작전을 변경하고, 팀원들과 함께 킹 납치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함정이라는 북한 의사의 발언에 상황은 역전되고, 이내 절체절명의 위기가 끝없이 쏟아집니다.


 영어 가득한 대사에 1인칭 액션까지, <PMC>는 예고편만으로도 지금까지의 한국영화와는 다른 곳을 지향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기본적인 설정은 물론 결말을 포함한 전개마저도 실험적이었던 전작 <더 테러 라이브>의 정신을 일부 계승하려 하죠. 본격적인 장편 상업영화였고, 첫 술에도 배가 한가득 불렀으니 그럴 법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이는 연말 3파전을 펼치는 한국영화들의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스윙키즈>의 유머와 <마약왕>의 구성은 모두 각 감독들이 이전 작품들에서 재미를 톡톡히 보았던 특징이었습니다. 하지만 전혀 다르게 접근해야 했던 소재마저도 같은 방식으로 다루는 과오를 저질렀죠. <PMC>도 심리는 비슷합니다. <더 테러 라이브>에서 먹혔으니 이번에도 먹히리라는 희망이 곳곳에 녹아 있습니다. 다행히 오판은 아닙니다.



 <더 테러 라이브>의 전제적인 구성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전작은 방송국 스튜디오 안의 카메라 프레임이라는, 제약 안의 제약을 주인공에게 걸었습니다. <PMC>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엔 지하 벙커 안의 욕실이죠. 하정우는 다시 한 번 본의 아니게 전자 장비와 통신에 의존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지만 가능한 모든 것을 해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죠. 그렇기에 전작과 같은 전개가 가능합니다.


 극중 에이헵이 애용하는 공 형태의 카메라 덕에 액션의 현장감과 긴장감이 대두됩니다. 교전의 한가운데에서 팀원들의 생사를 함께 지켜보는 듯 하죠. 액션에 액션이 꼬리를 물면서 쉴 틈 없이 몰아칩니다. 쉴 틈이 없는 것은 에이헵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는 극단이라고 생각한 곳에서 또 한 번 에이헵을 궁지로 내몹니다. 출산 직전인 아내부터 오락가락하는 인질의 목숨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바닥까지 긁어모으죠.



 그래서인지 금방 피로해집니다. 어떤 새로운 것에도 더 이상의 새로움을 느낄 수 없는 지경에 빠르게 도달합니다. 액션의 8할 이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총알을 교환하는 소모전입니다. 설상가상으로 관객이 몰입할 캐릭터는 끽해야 에이헵 정도임에도 막상 에이헵과는 딱히 무관한 일입니다. 팀원들과의 관계는 나온 적도, 쌓아올릴 의도도 없기에 그러지 않아도 무기력한 소모전의 신선도는 빠르게 떨어지죠. 다른 일 한참 하다가 한 번씩 생각나서 쳐다보면 아직도 열심히 싸우고 있는 수준입니다.


 각본에 급박하게 끼어든 의사 윤지의는 생사고락을 함께했을 팀원들보다 훨씬 나은 대접을 받습니다. 영화가 에이헵의 '돈만 보고 움직이는 용병'과 '그래도 속은 따뜻한 동포'라는 두 개의 이미지를 상황의 입맛에 맞추어 취사선택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순간의 긴박함으로 대부분의 자연스러운 감정 연결을 대신합니다. 아마 에이헵은 세상에서 가장 긍정적이고 감상적인 용병 대장일 겁니다.



 후반부에 접어들면 새로운 명목으로 새롭지 않은 광경을 반복합니다. 슬슬 늘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닥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까지 이어붙어 사족이 됩니다. 영화의 중심에 둘 메시지를 관객이 제대로 전달받지 못할까 안달이 납니다. 한두 번 말해도, 어쩌면 아예 말하지 않았어도 어련히 읽어냈을 내면을 말과 행동, 현재와 과거까지 교차하며 강조합니다. 슬프게도 그럴 가치가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그린치>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