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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an 09. 2019

<말모이> 리뷰

방어 불능 기술


<말모이>

★★


 연초의 몽글몽글한 감성(?)을 노린 영화가 찾아왔습니다. 천만 영화 <택시운전사>의 각본을 담당했던 엄유나 감독의 데뷔작, <말모이>죠. 유해진과 윤계상을 필두로 김홍파, 우현, 김태훈, 김선영, 민진웅은 물론 우정출연과 특별출연 명단까지 길게 잡았구요. 동시 개봉하는 경쟁작의 덩치가 그리 크지 않음에도 개봉 전까지 유료/무료 시사회를 연달아 열며 무려 16만 명이 넘는 관객을 사전 확보했습니다.



 때는 1940년대, 일제의 강압적인 정책으로 우리말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경성. 우리의 주인공 판수는 아들의 학비 때문에 가방을 훔치다 실패하고, 어쩌다 보니 가방 주인이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임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판수는 바짝 조여오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우리말을 모으는 그들의 작업에 본의 아니게 합류하게 되고, 돈도 아닌 말을 왜 모으나 싶던 그 역시 난생처음 글을 읽으며 우리말의 소중함에 눈뜨게 되죠.


 <말모이>의 주제이자 우리의 주인공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간단합니다. '옳은 것'을 바라보는 힘이죠. 민족의 얼을 보존하는 방법은 많고 많지만, 그 중에서도 조선어학회에 발을 담그게 된 주인공들은 말을 모으기로 결심한 겁니다. 일상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말에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이 담겨 있죠. 일제 역시 그것을 알고 우리말을 없애려 혈안이 되어 있으니, 지킬 명분은 충분한 셈입니다.



 이런 '옳음'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는 결정을 자체적으로 내리곤 합니다. 착한 우리나라 사람이 나쁜 일본인들의 감시를 피해 옳은 일을 하겠다는데, 무슨 말을 더 해야 하냐는 접근이죠. 딴지를 걸면 괜히 나쁜 일을 하는 것만 같고, 주인공들의 행적을 방해하는 무리와 같은 선상에 놓이는 것 같아 기분이 애매합니다. 


 <말모이>는 그 자책을 무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유해진의 판수와 윤계상의 정환을 제외한 캐릭터들은 각기 다른 직업과 처지에도 어떤 연유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저 이것이 옳은 일이기에 함께하고 있고, 옳은 일이기에 앞으로도 함께할 것이며, 옳은 일이기에 포기하지 않습니다. 본인이 술을 좋아하거나 아내가 형무소에 있는 등의 자잘한 설정은 단발적인 에피소드를 만들기 위해 붙어 있는 부연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러닝타임의 대부분은 말을 모으는 과정보다는 외부인이자 까막눈인 탓에 학회와 사전엔 담을 쌓던 판수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좀도둑이지만 따뜻한 가장이고, 막무가내지만 일처리는 확실합니다. <수상한 그녀>에서 나문희의 말순이 잘 나가는 국밥집의 비법을 훔친 것도 다 먹고 살기 위해 그런 것이라 소리쳤듯, 사람이 선하고 결과가 따스하니 자잘한 것은 알아서 눈을 감아야 하는 식이죠.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무대가 방금 지은 세트장처럼 생겼다는 사실은 차치하도록 하고, 잘 풀린다 싶으면 문제가 생기고 문제가 생긴다 싶으면 해결책이 나타나는 구성이 반복됩니다. 분위기부터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허허실실로 가득한 탓에 긴장도 어렵습니다. 소위 '우리네 정'을 보여주고자 하는 사족성 장면들만 여러 개 도려냈어도 훨씬 알찬 구성이 가능했을 겁니다. 



 사람과 신념이 따로 노는 영화입니다. <말모이>는 <웰컴 투 동막골>처럼 특정한 시대와 상황 속 '사람'에 집중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성취하고 달성해야 하는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정작 중요한 일은 당연히 옳은 것이 아니겠냐는 전제에 맡겨 버린 뒤 살짝 어긋난 곳만을 연거푸 바라봅니다. 결국 그 간극의 해소는 또 다시 신파와 눈물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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