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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 무비 2> 리뷰

무한한 재료의 유한한 효용

by 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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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 무비 2>

(The Lego Movie 2: The Second Part)

★★☆


2014년 6천만 달러를 들여 4억 7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레고 무비>가 돌아왔습니다. 첫 번째 영화에 재미를 톡톡히 본 워너브라더스는 속편 사이에 <레고 배트맨 무비>와 <레고 닌자고 무비>를 집어넣으며 공격적인 확장을 시도했죠. 전자는 <다크 나이트> 이후 최고의 배트맨 영화(...)라는 평가까지 받았지만, 슬프게도 후자는 손익분기점 돌파에도 실패하고 말았죠. 그렇게 이번 <레고 무비 2>의 어깨는 좀 더 무거워졌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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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던 지구에 모습을 드러낸 시스타 행성 전사들. 계속되는 침공으로 지구는 황폐화되지만, 우리의 착한 에밋은 루시와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스타 행성의 어마무시 장군이 루시와 친구들을 납치하는 사건이 발생하죠. 홀로 남겨진 에밋은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우주 여행을 준비하고, 어쩌다 보니 멘토로 합류한 렉스와 함께 지멋대로 여왕의 음모를 막으러 나섭니다.


제목에 상표가 들어간 영화답게, 1편은 각자만의 레고로 수십 수백 편의 영화가 탄생하기도 했던 유년 시절에 바치는 헌사였습니다. 레고로 해낼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이야기였죠. 했던 이야기를 또 할 수는 없으니, 2편의 초점은 조금 다른 곳으로 옮겨갑니다. 같은 장난감을 두고 싸우는 남매의 이야기죠. 듀플로 행성에서 왔다며 레고들을 잡아먹는 오프닝의 목소리에서부터 눈치를 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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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양엔 여전히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도시 전체부터 폭발 불꽃까지, 레고로 한 땀 한 땀 만들어진 세계는 어느 곳을 보아도 신기하기만 하죠. 특히 조립왕 루시가 여기저기서 부품을 긁어모아 커다란 것을 뚝딱 만들어내는 장면은 레고의 무한한 가능성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듯 합니다. 이번엔 모험의 무대도 우주와 다른 행성으로 옮겨간 덕에 더욱 강조되는 바이기도 하죠.


하지만 그것뿐입니다. 1편은 캐릭터와 각본의 방향성이 레고라는 보편적인 소재와 맞물려 최대한의 잠재력을 발휘했습니다. 거기서 속편을 이어나가려니 전편과 다른 곳으로 가 보고 싶었겠고, 그러다 보니 무리수가 자연히 따라옵니다. 주인공 에밋을 포함, 이번 2편에서는 '매력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캐릭터가 전무합니다. 누구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채 일회용 개그로 러닝타임을 불립니다.


렉스와 지멋대로 여왕 등 무언가 꿍꿍이를 숨기고 있음이 분명한 캐릭터들도 나오지만, 이마저도 사건의 중심에 놓이지 못한 채 수많은 조연들 중 한 명의 일탈 취급을 면치 못합니다. 사건과 사건의 비중 분배가 완전히 실패한 탓이죠.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사건과 각 조연들의 심심풀이 사건이 똑같은 무게감을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누구의 어떤 이야기에도 곧이곧대로 집중을 할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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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영화는 이 모든 이야기가 어린이 남매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밝히고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이 멸망할, '마마'겟돈이라는 재앙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언과 함께합니다. 조연들의 음모를 비롯해 도무지 긴장감이라는 것을 유지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힌트가 없어도 뻔하게 흘러갈 각본이 제발 눈치채라며 한아름 던져 주니 시시하기 이를 데가 없죠.


장난감을 두고 싸우는 남매 이야기는 배트맨과 지멋대로 여왕의 결혼식으로 전개됩니다. 에밋-루시의 이야기와 에밋-렉스의 이야기는 또 다른 줄기죠. 특히 에밋-렉스의 경우 후반에 접어들면 직전까지의 세계관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괴상한 설정이 끼어드는데, 이는 주인공들의 모험이 어린이들의 손과 상상력을 빌린 것이라는 영화의 근간을 위협합니다. 갈 데까지 갔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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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이렇게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도 굳이 현실 세계의 남매를 등장시킨 이유로 제품 홍보를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남자아이들에게 레고를, 여자아이들에게 레고 프렌즈를 산더미만큼 사 주면 둘이 이렇게 멋진 모험을 상상하며 사이좋게 놀 수 있다는 거죠. 개연성만 따져 보면 20세기 말에 유행하던 시리얼이나 과자 광고 시리즈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천하의 레고가 일회용에 불과했다니, 역설적일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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