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실한 초전박살
소년만화라는 장르의 대중화에 기여하며 지금까지도 꾸준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드래곤볼> 시리즈. 2010년대에 들어와서도 새로운 애니메이션 시리즈들을 계속 내놓으며 세계관을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습니다. 극장판으로는 2013년 <신들의 전쟁>, 2015년 <부활의 F>가 개봉되었구요. 이번 극장판은 부제를 캐릭터 이름인 <브로리>로 발표하며 일찍이 많은 팬들의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힘의 대회' 이후 평화를 되찾은 지구, 더욱 강해지기 위해 수행에 몰두하고 있는 오공과 베지터 앞엔 지금까지의 그 어떤 적보다 강한 사이어인인 브로리가 나타납니다. 태어날 때부터 행성 최고의 잠재력을 자랑했지만, 복수심에 불타는 아버지 손에 자라며 인간 병기가 되고 만 브로리. 거기에 또 다시 돌아온 프리저까지 뒤얽히며 세 명의 사이어인들은 각자의 극한을 시험하는 전투를 시작합니다.
읽은 만화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드래곤볼>의 첫 42권은 열심히 읽었더랬습니다. 해당 시리즈는 프리저, 셀, 마인 부우까지의 악당과 손오공의 초사이어인 3, 손오공과 베지터가 합체한 베지트에서 끝이 났죠. 거기에 플레이스테이션 2로 <드래곤볼 Z3>와 <드래곤볼 스파킹>을 달렸고, 최근 극장판들을 거치며 손오공의 새로운 모습들과 몇몇 악당들의 면면도 익혀 두었구요. 초사이어인 4를 넘어 초사이어인 블루, 초사이어인 갓 등 예습(...)할 양이 점점 많아지긴 했습니다.
이번 <브로리>는 꽤 예전부터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고 있던 캐릭터인 브로리를 세계관 정식 캐릭터로 받아들이는 자리입니다.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에서는 연차가 좀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공식적으로 밥상 자리를 제공받은 캐릭터는 아니었죠. 어찌됐든 최강의 사이어인이라는 대단한 설정은 잃지 않은 덕에 대대적인 정리가 필요했고, 탄생부터 파워 밸런스까지의 설정을 다듬어 탄생한 것이 이번 <브로리>입니다.
때문에 사실상 영화의 주인공은 브로리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브로리와 아버지 파라가스가 혹성 베지터에서 프리저군으로 흘러들어가는 과정부터 전투민족 사이어인으로서의 잠재력을 하나씩 개방하는 브로리의 모습을 따라가죠. 손오공과 베지터, 프리저, 부르마는 물론 심지어는 일곱 개의 드래곤볼마저도 여기서는 조연 신세를 면치 못합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아마 역대 최고라고 해도 무방할 액션이 달래고도 남습니다. 이번 <브로리>는 <레이드: 첫 번째 습격>이나 <드레드>, <수어사이드 스쿼드>(?)처럼 단 한 개의 액션 시퀀스로 영화의 중후반부를 채우는 영화죠. 손오공-베지터와 맞서는 브로리는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부을 기회를 맞이하고, 한계에 맞닥뜨리면 한 단계씩 강해지는 종족 특성을 십분 발휘하며 전투의 수준을 끝없이 끌어올립니다.
한 컷 한 컷 엄청난 정성을 들인 작화 덕에 액션의 박진감과 속도감 또한 대단합니다. 주먹과 주먹이, 기탄과 기탄이, 사이어인과 사이어인이 맞붙습니다. <드래곤볼>의 액션을 보고 단 한 번이라도 감탄한 적이 있다면 이번 영화를 즐길 준비가 끝난 겁니다. 후반부에 접어들면 손오공이 느낄 피로마저 눈과 귀로 전해 옵니다. 정신없는 롤러코스터에 한바탕 휘둘린 느낌입니다.
물론 그만큼 단순한 각본은 각오해야 합니다. 손오공 일행과 브로리의 전투가 시작되는 순간 그를 제외한 모든 구성 요소들은 사실상의 존재 이유를 잃어버립니다. 극장판을 위해 새로이 합류한 캐릭터인 치라이와 레모는 뉴페이스 특혜를 받아 필요 이상의 비중을 가져가는데, 감정선과 그에 따른 행동을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순전히 손오공의 착한 마음씨 덕에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할 생각을 하지 않죠.
그렇게 <브로리>는 단일 영화로는 시리즈 역사상 손에 꼽을 전투씬을 자랑하고, 브로리의 안착이라는 의의도 가져갔습니다. 손오공과 베지터, 브로리의 변신 단계별 대결 양상이 분명하게 묘사되기에 소위 말하는 '전투력 측정기'의 일환으로 활용하기도 좋구요. 그나저나 오공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걸린 세월과 들인 노력이 얼만데, 불과 수 시간만에 막상막하가 된 브로리를 보고 있으면 타고나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