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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y 17. 2019

<악인전> 리뷰

우물을 패도 한 우물만 패라


<악인전>

★★★


 2017년 <대장 김창수>로 데뷔한 이원태 감독이 2년만에 돌아왔습니다. 이제 이름 석 자가 장르명이 되어 버린 마동석과 김무열이 뭉친 <악인전>이죠. 개봉도 하기 전에 바로 그 실베스터 스탤론과 발보아 프로덕션이 할리우드 리메이크를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특이하게도 마동석은 리메이크에서도 원작의 캐릭터를 다시 한 번 연기한다고 하지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비슷한 방법으로 무참히 살해되는 사람들. 워낙 중구난방인 살해 방식 탓인지, 이를 연쇄살인이라 직감한 사람은 강력반 형사 태석이 유일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직의 보스인 동수가 이 살인마의 표적들 중 유일한 생존자가 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각자의 이유로 연쇄살인마를 쫓게 된 형사와 보스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손을 잡습니다.


 나쁜 놈 잡으려 뭉친 나쁜 놈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선했던 소재도 이제 명을 다해 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마동석과 조폭, '미친개'라 불리는 형사 등 비슷한 영화에서 한 번쯤은 보았을 수밖에 없는 구성 요소들은 죄다 끌어모았죠. 이제는 형사가 아무리 독종이어도, 주인공 주먹이 아무리 강해도, 사이코패스 악당의 웃음소리가 아무리 소름끼쳐도 더 이상 넘어설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른 듯 합니다.


 의외로 그를 잘 알고 있는 듯한 <악인전>은 가진 것에 만족하고 목표에 집중합니다. 2017년 가장 뜻밖의 흥행작이었던 <범죄도시>의 향내가 짙게 풍깁니다. 세련되지는 못하지만 촌스럽지도 않고, 영리하지는 못하지만 무식하지도 않습니다. 장르적 재미를 최대한으로 끌어낼 수 있는 경계선에서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궁금하지 않은 과거사로 눈물을 빼내지도, 불필요한 정의감으로 선악을 흐리지도 않습니다.



 이는 초장부터 분명하게 긋고 들어간 주연들의 개성과 합 덕분입니다. 태석은 형사임에도 불구하고 부패한 상사 탓에 뒷골목을 마음대로 쑤시고 다닐 손발이 모자랍니다. 동수는 법 없이 움직이는 조직의 보스지만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정보가 절실합니다. 이렇게 둘은 서로의 단점을 거의 완벽히 보완하는 덕에 말 그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연쇄살인마를 상대하는 다른 작품들이 가지 못했던 길을 보여주게 되죠.


 하지만 조금만 깊게 찌르는 순간 곧바로 바닥을 만납니다. 제목이 '악인전'인 영화에 조폭과 형사가 등장합니다. 일반적으로 조폭은 악인으로 분류하는 게 맞지만, 형사는 정반대죠. 그렇다면 형사가 '악인'으로 불려도 이상하지 않은 이유를 응당 보여주어야 합니다. 지금껏 동종 영화들에 등장했던 부패 경찰들의 목록을 떠올려 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김무열의 태석은 그렇지 않습니다. 뒷돈을 받아먹는 건 상사 쪽이고, 오히려 태석은 어떻게든 한 놈이라도 더 잡아넣으려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조직 보스와 손을 잡은 이유도 연쇄살인마를 잡기 위함인데다 그 극악무도한 범죄자도 주먹이 아닌 법 앞에 세워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합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왜인지 둘이 손을 잡는 순간부터 둘의 입을 빌려 '나쁜 놈들이 더 나쁜 놈을 잡는다'고 이야기하죠.


 물론 그를 뒤늦게나마 벌충하려 본의 아닌 일을 저지른 태석의 내적 갈등을 아주 살짝 비추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의 해프닝에 가깝도록 가벼이 묘사하며 별다른 창작욕을 불태우지 않습니다. 캐릭터 대신 배우를 내세우기로 결심한 듯, 배를 맞으면 주먹이 반대쪽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마동석의 묵직한 움직임으로 여타의 설명을 대신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썩 잘 먹힙니다.



 얼핏 <동네사람들>, <성난황소> 등 '장르가 마동석'이라고 불리는 양산형 영화들의 연장선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악인전>엔 분명히 독자적인 매력이 존재합니다. 언급한 영화들이 배우의 존재감과 이미지 자체에 영화 전체를 기댔다면, <악인전>은 만듦새는 얼추 갖춰놓은 뒤 눈에 띄게 삐걱대는 구석들에만 시선을 돌리려 덧바른 셈이죠. 앞으로 마동석이라는 치트키(...)를 만지작거리는 다른 영화들이 본받아야 할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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