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숙한 행차에 성가신 난입
2010년 <몬스터즈>로 괴수물에서의 적성을 뽐낸 가렛 에드워즈는 2014년 <고질라>의 책임자가 됩니다. 에드워즈는 90년대 특유의 우스꽝스러운 고전으로만 기억되던 고질라를 성공적으로 부활시켰고, 그렇게 워너브라더스의 몬스터 유니버스도 야심차게 출발했죠. 유니버스의 두 번째 영화였던 2017년 <콩: 스컬 아일랜드>도 준수한 성적을 거둔 덕에 2편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까지 마침내 선을 보였습니다.
고질라의 등장으로 아들이자 오빠를 잃은 엠마와 마크, 딸 매디슨. 미지의 생물을 연구하는 모나크 소속 과학자 엠마는 또 다른 공격에 대비해 괴수들과의 소통이 가능한 장치 '오르카' 개발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이를 악용하려는 세력의 등장으로 지구를 파멸시킬 고대의 존재들이 한꺼번에 깨어나는 대재앙이 일어나고, 이들과 홀로 맞서는 고질라를 돕기 위해 인간들은 백방으로 팔을 걷어붙입니다.
<킹 오브 몬스터>는 예고편부터 드뷔시의 'Clair de lune', 푸치니의 'Nessun Dorma' 등을 배경음악으로 선곡하면서 그야말로 경이로운 화면을 자랑했습니다. 화산 꼭대기만한, 폭포만한, 빌딩만한 괴수들이 위용을 자랑하는 장면에 깔리는 클래식은 절로 탄성을 불렀죠. 러닝타임 123분 동안 고질라의 등장 시간은 단 8분밖에 되지 않았던 전편에 비하면 괴수들의 분량만큼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킹 오브 몬스터>는 그 기대에 아낌없이 부응합니다. 영화의 종반부쯤 하이라이트로 나올 줄만 알았던 기도라와 고질라의 대결을 시작으로 로단, 모스라, 무토 등 주조연으로 나뉘는 초거대 괴수들의 아낌없는 향연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입에서 뿜어내는 형형색색 불꽃, 펄럭거리기만 해도 제트기가 추풍낙엽처럼 격추되는 거대한 날개, 존재만으로 기상을 뒤틀어 초대형 태풍을 부르는 덩치 등 그야말로 압도적이죠.
단순히 위용을 뽐내는 장면부터 힘을 발휘하는 장면까지의 완급 조절도 의외로 잘 되어 있는 덕에 시각적인 피로도도 그리 높지 않습니다. 그렇게 거대한 스크린과 빵빵한 스피커를 대동할 이유를 끊임없이 증명하죠. <퍼시픽 림> 시리즈와 <램페이지> 등의 영화들도 같이 추구했던, 그야말로 물량과 크기로 밀어붙이는 영화 목록에서 당분간은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오래지 않아 태생적인 단점을 자백합니다. 지구와 괴수들처럼 자연 법칙 그 자체인 고대의 무언가에게 인간은 곧 병균입니다. 영화의 구조로 놓고 보았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괴수들이 자웅을 겨루는 무대에 끊임없이 끼어들어 관심을 부르짖는 인간들의 사소한 이야기는 <킹 오브 몬스터>의 한계이자 패착입니다. 매력도 개성도 맥락도 없이 부여잡는 분량은 사실상 영화가 갖고 있는 모든 단점의 근원이 되죠.
부연 설명도 지겨운 동기와 사고방식은 둘째치고, 영화는 왜인지 인간 주인공들에게 괴수와 관객의 중간자 역할을 부여합니다. 괴수들이 특정한 행동을 하면 갑자기 등장인물 중 하나가 도사 수준의 적중률로 그를 해석합니다. 가능한 예측이 수십 수백 가지에 달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긴장감을 바닥으로 끌어내리죠.
예를 들어 상처 입은 고질라 앞에 모스라가 나타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괴수들을 고질라의 적인 기도라를 따르는 상황이기에, 약해진 고질라 앞에 나타난 새로운 괴수는 그 자체로 긴장을 유발합니다. 하지만 공격을 하지 않는 모스라를 보며 누구든 모스라가 고질라의 유일한 동료임을 깨달을 수 있고, 뻔하지만 필요했던 순간적인 안도감을 가져갈 수 있죠.
하지만 영화는 모스라가 등장하자마자 구원자라도 나타난 것처럼 반응하는 인간들을 보여줍니다. 분명 모스라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당연히 모스라는 고질라 친구 아니겠냐며 그저 아름다움에 취해 감복하고만 있죠. 한 방에 상황의 개연성과 잠재력 모두를 망칩니다. 비슷한 유형으로 도무지 결과를 짐작할 수 없는 문제 상황의 모범답안을 너무나 쉽게 내놓으며 타파하는 연출도 반복되죠. 이처럼 시시한 매듭이 이어지면 힘이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비중과 분량이 늘어날수록 영화가 빠지는 수렁만 깊어지는 인간 캐릭터들은 그저 대재앙 앞에 무력해지는 관조자로 내버려 두어야 했습니다. 1편은 고질라 자체를 미지의 두려운 존재로 상정했기에 그에 맞추어 행동하는 인간들을 비출 수 있었다지만, 2편은 대놓고 괴수들의 자태를 뽐내기로 마음을 먹었음에도 버릴 것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주연급 캐릭터 목록에서 인간을 완전히 배제하는 쪽이 훨씬 나은 선택이었을지 모릅니다.
물론 어쩌면 인간 캐릭터들이 낳는 따분함과 갈증을 주기적으로 풀어 준 덕에 괴수들의 존재 의의가 더욱 빛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크기에 눈 돌아가는 괴수물 팬을 자처한다면 극장행을 포기할 수 없겠고, 최소한 시각적인 만족만큼은 누구의 것이든 보장한다고 단언할 수 있죠. <킹 오브 몬스터>까지 보고 나니 그러지 않아도 의아했던 콩과의 대결은 도대체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성사될런지 더욱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