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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맨> 리뷰

꿋꿋하고 꼿꼿하게

by 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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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맨>

(Rocketman)

★★★☆


가이 리치 밑에서 남자 냄새 물씬 풍기는 영화들을 만들어 오던 덱스터 플레처. 그런 그가 2011년 <와일드 빌>로 독립을 선언했고, 이번 <로켓맨>은 <독수리 에디>에서 만난 태론 에저튼과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춘 영화입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엘튼 존의 전기영화이며, 흥미롭게도 덱스터 플레처는 브라이언 싱어가 중도 하차했던 <보헤미안 랩소디>의 응급처치를 담당하기도 했더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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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적인 음악성과 독보적인 노래로 세상을 뒤흔들며 대중을 사로잡은 뮤지션 엘튼 존. 연이은 히트곡과 환상적인 퍼포먼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화려한 패션 덕에 가장 빛나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습니다. 그러나 인생 최고의 순간,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진짜 모습을 거부한 부모와 사랑했던 친구들과의 갈등으로 그의 내면은 누구도 모르게 타들어가고 있었죠.


사실상 감독 전작인데다 워낙 대단했던 인기 탓에 <보헤미안 랩소디>와의 비교는 피할 수 없습니다. <보헤미안 랩소디>엔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퀸과 프레디 머큐리 중에 골라야 했고, 역사와 음악 중에 골라야 했습니다. 한 쪽을 고른다고 해서 나머지 한 쪽을 완전히 버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을 거의 마취 상태에 빠뜨렸던 노래들을 빼면 뒷맛이 썩 좋지는 않았죠.


반면 <로켓맨>은 상대적 이점을 갖고 있습니다. 일단 그룹이 아닌 개인입니다. 한 사람에게만 집중해도 가수의 정체성 그 자체를 그려낼 수 있습니다. 퀸의 라이브 에이드처럼 영화적으로 뚜렷한 종착지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덕분에 그의 인생사를 원하는 지점에서 원하는 만큼 물 흐르듯 다룰 수 있습니다. 엘튼 존의 어떤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어도 관객들은 열심히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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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맨>은 그를 십분 활용합니다. 유년 시절부터 시작된 레지 드와이트의, 엘튼 존의 인생 곡선을 충실하고 영리하게 따라갑니다. 사람들이 알고 있을 만한 사실은 간단히 짚기만 하며 알지 못할 만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부모 모두에게서 버림받고 연인에게 상처받으며 온전할래야 온전할 수 없었던 그의 내면에 집중합니다. 받은 사랑은 적었음에도 줄 사랑은 누구보다 많았던 그의 아픔을 한 꺼풀씩 따라갑니다.


거기에 그의 노래를 얹습니다. 영화에서 엘튼 존은 맨정신으로 도저히 버텨내지 못할 일들을 마주하고서도 열과 성을 다해 공연을 이어갑니다. 여느 뮤지컬 영화처럼 캐릭터의 감정을 따라가며 분출하는 곡들이기에 진입 장벽도 낮습니다. 그의 노래를 한 곡도 몰라도, 심지어 엘튼 존이라는 사람을 전혀 몰라도 무관합니다. 후반부에 접어들면 노래와 상황의 편집점이 살짝 꼬이는 지점도 눈에 밟히지만, 가진 재료들로 만들어낸 최선의 흐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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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주인공 태론 에저튼은 일루미네이션의 애니메이션 <씽>에서 엘튼 존의 'I'm Still Standing'을 불렀고, 직접 출연한 <킹스맨: 골든 서클>에서는 본인 역으로 등장한 엘튼 존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마침내 엘튼 존을 연기하기까지 했으니, 최소한 영화 쪽에서는 엘튼 존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모조리 해 본 셈이죠.

그 경력 덕인지 지금껏 출연했던 그 어떤 영화에서보다 대단한 존재감을 자랑합니다. 감정을 대놓고 분출하는 뮤지컬부터 가만히 앉아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내면 연기까지 가리지 않습니다. 전작들에서 몇 번 선보였던 노래 실력도 결코 빠지지 않구요. 거기에 제이미 벨,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 리차드 매든 등 익숙한 얼굴들도 겹치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출로 뮤직 비디오스러운 신비로움까지 가져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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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 인물들을 다룬 대부분의 음악 영화들은 해당 인물에게 바치는 헌사로 귀결됩니다. <로켓맨>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세상이 엘튼 존에게 바치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엘튼 존이 세상에 바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여러 이유로 실제로는 할 수 없었던 말을 꺼내들어 서로를 치유합니다. 위대함을 노래하려 사소한 곳을 바라봅니다. 그는 그렇게 아직도 잘 서 있고, 잘 버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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