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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Nov 10. 2023

인테리어는 고지 의무와의 줄다리기

금융 상품 가입할 때 모든 사항을 읽어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계약서마저도 읽지 말고 빨리 동의하라는 듯 서명할 곳이 형광펜으로 칠해져 있다. 판매자나 구매자나 모두 이 과정이 귀찮을 뿐이다. 판매자는 이 긴 약관들에 기대어 자신있게 판매한다. 구매자는 긴 약관을 준비할만큼 철저한 그 회사를 신용할 뿐, 자신에게 문제가 발생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테리어도 마찬가지다. 판매자는 모든 걸 고지할 수 없고, 구매자는 계약서는 형식일 뿐 회사를 믿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인테리어는 금융상품과 달리, 하자가 발생한다. 아주 많이. 그리고 현장 이슈도 많다. 대한민국에 아파트는 사이즈는 비슷할지라도 벽면과 바닥, 천장의 상태는 각양각색이며 대부분 낡았기 때문이다.


고객은 고지 의무 위반을 용납할 수 없다.


"이럴 수 있다고 미리 말씀 안하셨잖아요."

인테리어 사장님이라면 수천번도 넘게 듣는 말. 고지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은 늘 속이 타기만 한다. 분명 말했는데, 분명 계약서에 쓰여있는데. 고지 의무 위반은 착한 고객도 악마로 만든다. 악마의 눈엔 작은 티끌도 하자다. 다시 해줘야 납득하며, 다 될때까지 잔금을 줄 순 없다.


이제 고객은 사장님을 믿을 수 없다. 견적을 하나 하나 따져본다. 네이버 카페에도 올려본다. 악덕 사장님께 당한 사람이 너무 많다. 이건 모두 잘못된 시공이며 계약이라는 댓글이 난무한다. 수천만원 들인 공사인데 속이 쓰립기만 하다. 집이 완성되는 건 이제 모르겠고, 사장님을 괴롭게 해야만 한다.  


사장님은 고지 의무 위반을 가격으로 치환한다.


인테리어 사장님은 결심한다. 다음 계약 때 이 부분은 고지하리라. 그렇게 늘어난 고지 의무 리스트는 어느덧 100개를 넘게 된다. 안타깝게도, 100개가 101개로 되는 건 순식간이다. 결국 다시 해줘야 하는 비용과 잔금을 못받는 리스크는 전부 가격으로 반영된다. 그래야 월세도 내고, 월급도 준다. 그렇게 가격은 계속 올라간다.


물론 실력이 좋은 사장님은 고지 의무를 적절히 이행하고, 도어락 교체와 같은 공짜 서비스로 고객의 마음을 사둔다. 그렇지 않으면 고지 의무 위반과의 줄다리기를 이길 수 없다. 잔금이 들어올 때까지 절대 방심해선 안된다. 언제 "고지 의무 위반"이 고객을 악마로 만들 지 누구도 알 수 없으니까.


결국은 마음을 사는 비즈니스


지난 시간동안 수천건을 시공하면서 내린 결론은 고객 마음을 사야만 한다는 것이다. 고객이 안심할만한 장치가 있어야 한다. 담당 영업매니저도 말 한마디 신중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시공팀도 마찬가지다. 시공 능력은 기본이다. 응대도 좋아야 하며, 뒷정리도 깔끔해야한다. 그렇게 모든 포인트마다 갈고 닦아야 고객의 마음을 살 수 있다.


당연히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럼 고지 의무 위반에 시달리게 된다. 근데 그 때 고지 의무 리스트를 늘리기 보단, 내부 역량에 집중해야 한다. 시공팀 교육, 매니저 교육, 시스템 정비 등 고객 경험을 개선해야 한다. 그게 훨신 현명한 방향이다.


물론 최선을 다했음에도 고객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가 많다. 속상할 때도 많지만, 그래도 만족했다는 고객 후기를 보며 뿌듯함을 느낀다. 다시 해도 하우스텝에 할 거라는 말. 어디선가 고지 의무 위반을 했겠지만 마음을 사는 게임에선 이겼다는 증거라 생각하며. 언젠가 고지 의무 위반과의 줄다리기에서 완벽한 승자가 될 때까지, 부디 이 글을 보는 사장님도 고객의 마음을 사길 당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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