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속은 마케팅 유닛이다. 그런데 누가 있어야 유닛이지, 나는 마케팅 솔로라고 웃으면서(사실 안 웃으면서) 말하곤 한다.
이전 직장에서는 상사가 하도 갈궈서 사람들이 다 그 사람이랑 일을 못하고 나가는 상황이었고, 지금 이 솔로 자리는 계속해서 인턴들(의 열정과 패기와 아이디어들)로 돌려 막기 하는 자리였던 것 같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와서 보니 그렇다.
나혼자 GA 보고. 나혼자 회의 가고. 나혼자 촬영 가고. 나혼자 소재 만들고. 나혼자 리포팅하고. 그다음 가사는? 이렇게 매일 울고 불고.
왜 지금까지 일했던 친구들이 나갔는지 알겠다. 혹은 나가야만 했는지도. '이거는 마케팅 아닌 것 같아요'라고 생각했겠지. 그럼 진짜 마케팅은 뭘까? 난 뭘 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 나는 내게 닥친 일들을 무소의 뿔처럼 혼자 해내야만 하는 것이다. 마케팅이라는 이름을 달고 잡부의 일을 하는 것이다. 오늘은 대행사한테 던질 RFP까지 작성해 보라는 미션을 받았다. 나는 RFP에 맞춘 제안서나 쓸 줄 알지.그렇지만 못하겠다는 소리는 또 절대 못한다. 누군가 나한테 '우엉씨 그럼 유닛장이네' 그랬는데. 이럴 거면 진짜로 유닛장을 시켜 주시던지.그래,그래도 온라인 RFP표준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으니까. (배움형 인간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홈페이지 스크립트 설치가 하도 오래 걸려서 너무 답답한 나머지, 예스24에서 웹 기본 교과서를 주문해버린 나. 한편으로는 그동안 '조그마한 지식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걸 잘 배워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다.
'진짜 마케팅'이라는 건 그 누구도 함부로 쉽게 말할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마케터는 하루 종일 핸드폰을 놓을 수 없으며, 고객의 마음만큼 숫자와 친해야 하고, 눈길을 사로잡는 한 줄 카피를 써 내려가는 것보다 숫자를 보는 일에 훨씬 익숙해야 하고, 센스만큼의 꼼꼼함을 가져야 하고, 눈에 번뜩이는 스파크 대신 숫자가 이야기하는 행간을 읽을 줄 아는 깊이가 있어야 한다는 걸. 제일 듣기 싫고 피하고 싶은 고객의 컴플레인이, 사실은 우리 서비스에서 가장 고쳐야 하는 점이라는 걸. 돈 버는 회사에서 유일하게 돈 쓰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늘 잊지 말아야 한다는 걸.
마케터를 부러워했던 MD였을 때는 뿌옇게 보였던 것들이 하나씩 하나씩 명확해지기 시작한다. 고상해 보이던 마케터는 모두 허상이었다는 것을. 그게 비록 마케팅 솔로가 된 다음이라는 게 조금 웃기지만.
이번 추석 연휴의 목표는 GA 강의 다 듣기. 강의 듣기 딱 좋은 10일짜리 연휴! 휴. 추석 연휴에 뭐 공부할지 생각하는 나는 내가 마케팅 솔로라서 정말 좋다.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