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회사에 입사한 사람이 있다.지난 금요일에 비 오는 카페에서 같이 이야기를 하는데 별안간 이런 말을 했다. "여기는 너무 바쁜 것 같아요. 일 하나가 끝나면 쉬어야 되는데, 여긴 안 그런 것 같아요."
나는 말했다. "그런 회사가 있어요? 그런 회사 있으면 저 좀 꼭 알려 주세요. 거기 가서 일하게."
큰 회사건 작은 회사건, 여유롭게? 일해본던 적이 없었던 나는 저 말을 듣고 약간 의아해졌다. 스타트업에서 저런 걸 바란 게 이상했다. 리더급으로 온 사람이 할 말인가 싶기도 했다. 일과 여유가 같이 갈 수있는 단어였나.
근데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보니 화낼 필요가 없었다. 그래. 어차피 받는 만큼 일하는 건데. 야근 수당 있는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래, 주는 만큼만 일하자.'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면서도. 내 노동력의 가치를 재화로 인정해주는 회사. 이렇게 적고 보니 전설 속의 존재인 유니콘(그 유니콘 아님) 같네.
"언니. 봤어?" 곧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컴백을 한다. 컨셉 포토, 티저가 미리 공개되는데, 단체에서 한 명이 눈을 감고 있거나얼굴뿐만 아니라 다리 보정이 제대로 안 되어 있는 사진들이 올라왔다. 로고 색깔이 다른 날도 있고 같은 문구를 두 번 적은 것도 있었다.
아니. 회사에서 아무도 이걸 안 보고 올리는 건가. 물론 예쁘게 올려주건 아니건 크게 상관없이 앨범은 팔릴 거다.
어차피 대표는 직원들이 일을 대충 하던, 열심히 하던, 이게 굴러(는) 가니까 계속 그 정도의 인력으로 그런 식(엉망진창)으로 할 거다.
열심히 해도 대표는 내가 이 정도까지 열심히하는지, 대충해도 대표는 내가 이정도까지 대충 하는지 모른다면? 그러면 내가 이 정도 월급 받으면서는 대충해도되는 거 아닌가, 그게 합리적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거다.
"언니 내가 하루 종일 그런 생각을 하다가 퇴근하는데, 끝나고 나와서 이런 사진 보면서 이 생각을 하니까 빡이 치더라고." 열심히 하지 않는 직원으로 산다는 게 꼭 나쁜 걸까? 그렇게 만든 대표가 나쁜 걸까? 직장인으로 덕질하다 보니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다.
백수 시절에는 3일을 놀건 4일을 놀건, 공휴일이 크게 의미가 없었다. 맨날 놀았으니까. 이번 작은 연휴에는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는데 쉬는 게 이렇게 좋다니. 일부러 약속도 안 잡고 집에만 있었다.행복했다.(물론 어제는 영상 만들고, 오늘은 인터뷰 정리를 했다. 완벽히 쉰 건 아니지만 쉬긴 쉬었으니.) 그리고 오늘 또 논다!!
노는 게 이렇게 좋으려면, 놀지 않는 날이 있어야 한다. 잠시나마 '내가 평소에 열심히 일해왔구나'를 느낄 수 있는 거다. 쉬는 날의 의미는일하는 사람일 때 비로소 느낀다.
일을 처음 시작했던 시절보다는 그래도 많이 타협하긴 했는데, '열심히 하는 나'는 그렇게 많이 포기하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는 목적이 월급 이상이라면 그 정도의 시간과 마음을 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나는 적당히 일하고 싶지 않고, 적당히 벌고 싶지도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회사와 함께 성장하고 싶고, 내 능력을 인정해주는 회사로, 좋은 자리로 계속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쉬는 날이 더 좋아지게끔 쉬지 않는 날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
지난 화요일에 나는 이렇게 적어 두었었다.
일하는 내게 가장 필요한 태도
1. 일하는 나와 일 밖의 나를 잘 구분해 두기.
2. 일을 사랑하지만 나보다 사랑하지는 말기.
3. 최선을 다해 일하고, 후회 없이 일하고, 정직하게 일하기.
그 사람은 이번 주에 관둔다. 그래. 핏이 잘 안 맞았겠지. 나는 열심히 하는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과 열정 있는 모습으로 오래오래 일하고 싶다. 앞서 말한 그런 회사에 가서도 일을 많이 할 나라는 걸 안다. 성격이고 팔자라서. 삼월이인 나. 일 복이 많은 나. 바쁜 나에 도취되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