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엉 Oct 17. 2021

불안의 서

케이팝 다시 보기 #4. 오버여도 좋으니 의미를 담아주길 바라며


케이팝.

농약 같은 머스마.

끊을 수가 없네.




 
조지 오웰의 1984를 티저에 쓰는 신인 아이돌이 있다? 구속복을 입고 몸에 폭탄을 두른 채 트레일러를 공개하는 신인 아이돌이 있다?


프듀 동현이가 있는 그룹으로 일단 어느 정도 코어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도 그런 아이돌 그룹이 청량을 안 한다는 건, 그만큼 각오를 굳게 했다는 것 아닐까... 나 약간 설레네.




사실 아이돌이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밝은 노래 하는 거 좋다고 했지만, 이런 세계관을 가진 아이돌이 좋은 것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는) 비현실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저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을 거란 걸 알기 때문에... 각자 살아가는 게 바쁘잖아... 하키복 입은 동현이가 너무 멋있고, 진짜 현역이 느끼는 부담감 같은 게 액정을 뚫고 느껴져서, 와 대단하다, 하고 생각했다.

세계관을 끌어갈 수 있는 힘은 사실... 자본이겠지. 에이티즈도 해적왕 짰던 사람이 퇴사하고부터 갑자기 사랑 노래와 비슷한 비주얼로 밀고 나가기 시작했다. 중간에 흐지부지 되지 말고 계속 멋있는 거 많이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




신인 티저에 이렇게까지 티저에도 조지 오웰의 1984 중 한 구절을 인용한 장면이 나오고, 빅비도 빅 브라더를 뜻하는 것 같았다. 살아 있어서 고통스럽고 불안하다는.


어떤 외부적 존재에 의해서 강요당하고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으로 인해 불안한 것에 굴복하거나 지지 말라는 메시지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하키 선수지만 경기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고, 혼자 분노를 삭이는 것 같은 동현이(물론 아기들이 하키를 할 줄 몰랐던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학교 책상이 가득한 교실 뒷 벽에 'Base of Revolution'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고, 눈이 그려져 있는 포스터.


신인 티저에 이렇게까지 무거운 걸 얹어내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오버하는 거 아냐?'하고 생각하기도 해 보았는데, 어찌 되었건 케이팝이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가지게 된 상황에서, 그리고 동시에 시대적으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메시지를 아티스트답게 풀어나가고자 하는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참 좋다고 생각했다.



저 형형하게 빛나는 눈동자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도전 의식이 생겼다고나 할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공하겠다는 야망을 가진 아이돌을 사랑하지 않는 법을 나는 아직까지도 모른다.


모두 다른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산다는 건 어쩌면 고통 그 자체고, 고통을 느낀다는 건 살아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거, 좌시하지 않겠다는 거, 나는 이 아기들의 패기가 너무 좋아져버리고 만 것이다. 요즘 세상에서 이렇게 용기 있게 뭔가 한다는 건 정말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는 걸 아는 어른.

소년일 때만 느낄 수 있는 그런 불안감과 희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그런 순간들, 이게 분노인지 기쁨 인지도 잘 모를 혈기왕성한 때... 뭐 이런 게 잘 느껴지도록 찍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방신기-몬스타엑스-에이티즈 빠순이의 길을 걷는 내게... 한 줄기 빛과 희망과도 같았던 이펙스... Eight apex(8개의 정점)라고 8개의 초능력 안 쓰는 게 어디냐...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8개의 초능력도 좋아했을 거다. 다시 말하지만 스토리는 자본에서 온다.


불안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에 '불안의 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흔들리는 눈빛을 적나라하게 들고 온 아이돌... 사랑하지 않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티저 하나에 이런 생각까지 해 보게 하는, 나를 깨닫게 하는 아이돌. 역시. 최고다.

작가의 이전글 눈이 반짝이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