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을 좋아한다. 불안의 서를 가지고 오던 친구들이 사... 랑...?이라서 의아했을 뿐, 그리고 사랑의 여러 종류에 대해 노래할 거란 걸 알게 된 이후로는 "제법이군"하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열린 새장에서 '사랑의 서'는 시작했다. 굉장히 시적인 티저라고 생각했다. 자유로운 사랑 노래를 할 거라는 뜻일까? 아니면 이별 노래일까? 앨범을 기대하게 만드는 게 티저라면 성공이었다.
그리고 컴패니언 버전의 멤버 사진이 공개되었다. 멤버들이 하나씩 동물을 데리고 있었다. 막내는 한동안 귀여운 공룡이 나오는 영화를 이야기하더니 스포였나? 이 날 나는 예전에 내가 키우던 햄스터인 푸딩이 생각이 나서 울었다.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누군가를 걱정하고, 더 많이 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좋아한다는 감정보다 더 책임감이 강해야 한다는 걸, 나보다 몇 백 배는 작은 그 햄스터를 보면서 깨달았었다. 아마도 그런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면서.
사랑에 빠진 애들 표정이잖아 딱
러버 버전의 탑 투를 골라왔다. 동현이와 뮤. 아직 멤버 8인 중 7인이 미성년자, 학생인 그룹이, 이런 착장으로 저런 미소를 띠는데, 어느 누가 사랑하지 않나요. 플라토닉 러브만 말하면 진짜 뜬구름 잡는 소리일 수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러버 버전을 들고 오니 고개를 끄덕여 보았다.
드림 버전은 애들이 유독 웃고 있어서, 자면서 꾸는 꿈인지 미래의 꿈인지 잘 모르겠다. 다들 꿈을 사랑해서 지금 가수가 된 걸까? 음. 아니다. 위시는 체대 입시를 준비했었고. 동현이도 바리스타가 되고 싶다고 했었던 것 같다.
백승이는 팬사인회에서 처음으로 팬들 앞에서 무대를 하고 "저 오늘 꿈을 이룬 날이에요"라고 했었는데. 케이팝 포화 시장에서 데뷔 이후 4개월 만에 초고속 컴백을 하는 팀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는 걸 이제 나는 안다. 컴백은 당연한 게 아니다.
에이티즈가 갑자기 해적선에서 내려서 인셉션 했을 때 충격과 공포였으나, 가사에 나오는 '너'를 꿈으로 대치해보며 위안을 삼았던 지난날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꿈을 사랑하는 소년들의 노래라고 생각하면 갑자기 멋있어지는 것이다. 드림 버전에 개인이 아닌 단체 사진밖에 없는 이유도 지금 이펙스라는 한 팀으로 열심히 꿈을 이뤄가고 있는 서사의 한 컷이라고 받아들여보기로 한다.
제목은 Do 4 Me. 뭘 해달라는 걸까? 사랑의 서니까 사랑을 달라는 건가? 뮤비 티저가 나왔는데 진짜 귀엽고 정신없다. 사랑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알만한 장면들. 걔 한 마디에 신났다가 슬펐다가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얼른 노래도 듣고 싶고 뮤비도 다 보고 싶다.
불안의 서를 올리고 사랑의 서를 올리는 이유가 있다. 스토리는 자본에서 온다고 좋아했는데, 갑자기 조지 오웰 하던 친구들이 사랑 노래한다고 해서 걱정되었다. 그래도 흔한 사랑 노래는 안 하려고 조금은 노력했구나 하는 포인트가 보여서 다행이었고, 반면에 스토리보다는 비주얼 떡칠에 가까운 것 같아서 이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건데, 하며 색깔이 사라지는 것이 아쉽기도 했다.
다녔던 회사에서도 그랬다. 재정 긴축이나 사업 정리가 필요한 시점에 제일 먼저 정리하는 건 캐릭터였다. 돈을 그렇게 들여놓고, 회사의 정체성의 집약체로 만들어놓고는, 버릴 때는 참 가차 없었다.
불안조차 이기게 하는 사랑에 대한 노래일까. 약간의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레드벨벳처럼 (레드벨벳도 처음에 1 앨범 레드-강렬한 곡, 1 앨범 벨벳-발라드 이런 식으로 번갈아가면서 앨범을 내려다가... 결국에는 흐지부지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도 데뷔 앨범에 첫 컴백이니까, 한 앨범은 락다운, 한 앨범은 두포미 스타일로 가는 건가. 그랬으면 좋겠다. 팬들이 청량을 엄청 기다리기도 했으니까.
'니들이 사랑을 알아?'라고 소제목에 쓰긴 했으나, 세상엔 정말 많은 사랑의 모양이 있고, 나도 그중에 몇 가지밖에 알지 못하니까. 그리고 이제는 21세기의 20%를 지나온 만큼, 좀 더 다양한 사랑 노래가 나오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