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학! 더 잘 살기위한 이유

죽음을 성장의 기회로, 품위 있는 죽음이 잘 사는 것이다.

by 김진혁

죽음학, 죽음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


“생은 과오일 뿐 죽음이 지식이다.” -실러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보면서도 정작 본인은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 봤을 것이라고 변명도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자식에게 더 많은 것을 남겨줄 수 있을까? 등의 잘 사는 욕망에 포커스가 맞춰있지 죽음에 대해서는 낭만적 사고뿐인 것이 사실이다. 잘 살고자 하는 욕망은 모든 인간의 공통적이고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스스로 안위한다.


죽음을 회피하거나 또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는 속담으로 죽음이란 단어를 음지로 내몰아낸 것이다.

현실은 극단적으로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가 한국이다.


죽음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죽음 자체의 고찰보다는 현재 더 잘 사기 위함이다.

바로 죽음의 공부는 삶의 이해이고, 죽음과의 소통은 삶이 보람 있게 만든다.

죽음은 인생의 피할 수 없는 과정이자 아름다운 성장의 한 단계이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하나이다.

잘 산다는 것은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때 나온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죽음을 눈앞에 두었을 때 허망과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

‘인생 소풍’을 잘 마감하고 졸업식장을 나오는 모범생과 같아야 한다.


사람들이 죽음과 관련해서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다.

죽음은 어떤 시점에 찰나적으로 일어난다고 본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그러나 죽음은 질병과 고독, 경제적 파탄 등의 복잡한 과정으로 임종 당사자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 간의 사회적 사건이다.


특히 자살의 고통은 생각을 넘어선다. 최준식 교수의 <죽음학 개론>에서 임사체험자의 증언에 따라 “자살을 한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만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빛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 대신 그냥 어둠 속에서 혼자 외롭게 있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살을 해서 혼이 몸에서 빠져 나가는 순간 ‘내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구나.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면서 큰 후회를 한다”고 한다.


죽음은 마지막 성장의 기회로 삼자.

한 사람의 죽음에는 반드시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

죽음은 달콤하지 않다. 그렇다고 비참하지도 않다.


“인간을 현재의 모습으로 판단한다면 그는 더 나빠질 것이다. 하지만 그를 미래의 가능한 모습으로 바라보라. 그러면 그는 정말로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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