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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혁 Jul 31. 2017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현인들이 추구하는 인생의 궁극적 가치도 각각 다르다.


예수는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길 기도했다. 천국의 소망을 갖도록 말씀하셨다.

석가모니는 미망을 깨우치고 열반에 도달할 수 있도록 중생을 안내했다.

영혼과 육체의 건강을 지키는 비결은 과거를 비통해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으며,

현재의 순간을 지혜롭고 진지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자는 인간의 소망은 병 없이 오래 사는 무병장수다.

공자가 추구하는 가치는 인(仁)으로 ‘어질다’는 뜻으로, 선(善)의 근원이 되고 행(行)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교훈한다.


이 인은 불교의 자비나 기독교의 박애와 비슷하다.

노자가 추구하는 것은 ‘무위자연’이다.


플라톤이 추구하는 가치는 ‘선의 이데아’이다.

<국가>에서 유명한 ‘동굴의 우화’가 나오면서 영혼불멸의 사상 이데아를 세 가지로 나눈다.

“신은 ‘이네다의 침대’를 만들었다. 목수는 이데아 침대를 모방하여 ‘현실의 침대’를 만들었다. 화가는  이 현실의 침대를 모사하여 ‘그림 속의 침대’를 그렸다. 철학하는 사람들이 진정 알아야 하는 것은 이데아의 침대인데 예술가들이 그린 ‘그림속의 침대’만을 인식하는 어리석음을 펼친다.”

     

플라톤의 20년 동안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는 ‘행복’이라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은 무엇인가?

보통 사람들은 행복을 부와 명예,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의 추구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이런 평범한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쾌락을 추구하는 삶은 노예나 짐승의 삶이지 인간의 목적이라 볼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의 조건으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행복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둘째, 행복은 홛동적이어야 한다. 특정한 심리상태가 아니라 원하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이어야 한다.

셋째, 행복은 인생 전반에 걸쳐 진행되는 지속적인 활동이어야 한다.


모든 행위의 목적은 행복의 추구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활동이란 인간 본연의 영혼 안에 있는 이성적 활동을 의미한다.

진실한 사람, 온화한 사람, 용감한 사람 등의 인간다운 활동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행복한 삶에 대하여 정의한다.

     

“행복한 삶은 탁월성에 따른 삶이다.

인간의 탁월성은 지성에 있다. 지성의 활동을 우리는 관조라고 하는데, 관조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순수하고 견실하며 자족적인 즐거움을 준다. 관조는 최선의 활동이고 영속적 활동이며 즐거움 활동이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단편소설을 압축해 보면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평소 친절하고, 가난한 구두장이인 시몬이 하느님 말씀을 거역한 죄로 인간세계로 내려온 천사 미하일과 보낸 이야기다.

     

하느님은 미하일에게 명령하기를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라는 세 가지 질문의 뜻을 알라고 한다.

     

어느 날 찾아온 귀족 신사가 오랫동안 신어도 끄떡없는 구두를 주문했지만 천사인 미하일은 그가 곧 죽을 것임을 알았기에 슬리퍼를 만들어 준다.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임을 알게 한 후 미하일은 하늘로 돌아간다.

 


천사 청년 미하일은 삶의 본질에 대하여 말한다.


「나는 모든 인간들이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의해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그들이 자기 자신을 걱정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이 있기에

살아가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떨어져 사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각자 자기에게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우쳐주지 않았으며, 서로 모여

살아가기를 원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과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신 것이다.

인간은 사랑의 힘에 의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 자는 하느님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고 하느님은 그 사람 속에 계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괴테는 공동체적 관계를 맺을수록 더 행복해진다고 한다.

릭 워렌 목사는 목적이 삶을 이끈다.

미국 격언에 “어제는 역사(Yesterday is history), 내일은 미지수(Tomorrow is mystery), 그러나 오늘은 선물(But today is a gift)”이란 말이 있다.

     

감사하며 베풀고 살 때에는 좁은 집이라도 천국이지만 욕심과 욕망으로 살 때에는 고통스러운 현실이 된다.

바쁘고 삶에 급급하여 주변을 돌보지 않고 사는 것은 자신을 중심에 놓고 사는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수동적이고 회의적인 것에 신경을 써서는 안 된다.

긍정적이고 수용적 자세로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사용했으면 한다.

     

우리 모두는 신으로부터 하루 공평하고 정확히 24시간을 받았다.

노력 없이 받은 소득은 저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삶의 현장에서 알뜰하고 효과적으로 써야 한다.

   

  


삶을 형성하는 4가지는 고독한 왕복표 없는 좁은 길이다.

일과 건강과 사랑 그리고 영적인 길이다.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다.

과거와 미래를 살피고 과거로부터 교훈을 깨닫고 미래를 바라면서 매 순간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후회나 욕망에 붙잡히지 않고 생명력 품은 행복한 순간으로 인식해야 한다.

 

오늘은 어제 죽은 자들이 그토록 바라던 오늘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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