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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혁 Aug 11. 2017

천년간 가장 위대한 인물, 칭기즈칸을 복원하다.

지금도 칭기즈칸에게 배울 것이 있는가?

  

   


지난 1999년 말 밀레니엄을 마감하는 것을 기념으로 시사 주간지 '타임’이 지난 1천 년 동안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100명을 발표했는데 1등이 바로 칭기즈칸이었다.

     

칭기즈칸은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지배한 인물이다.

     

알렉산더, 나폴레옹 히틀러가 정복한 모든 땅을 합친 것보다 더 광활한 면적이다.

그 당시 100만의 인구와 고작 15만 명의 군인으로 몽골 초원에서 실크로드를 관통한 중앙아시아 전역을 접수했다는 것은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할 것이고 끝임없이 이동하는 자는 살아남는다"

  

칭기즈칸이 위대한 인물로 뽑히게 된 이유로는


첫째, 채찍과 당근의 활용이다.

 

칭기즈칸이 정복하려는 지역의 지배자들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칭기즈칸을 환영하고 복종하면 자치권을 보장하겠지만 만일 거부하면 싸워서 처절한 응징을 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칭기즈칸은 사람은 물론 동물까지 죽이고 그 지역 전체에 풀 한포기 남기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을 파괴했다.

칭기즈칸을 적으로 삼는 다는 것은 당시 엄청난 공포감으로 서양에서는 그를 악마로 비유됐다.

심지어는 울던 아이도 칭기즈칸이 온다고 하면 울름을 뚝 그쳤다고 한다.


오늘날의 리더도 분명한 목표와 실행에 집중한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면 한 번을 믿지만 그 이후에는 리더를 신뢰하지 않는다.

     

둘째 빠른 속도와 네트워크이다.

     

칭기즈칸에게 전쟁의 승패는 속도전이었다.

상대국에게 전쟁하러 간다고 통지하면 그 때부터 우왕좌왕하면서 준비하게 된다.

이 때 몽골군은 예상 시간보다 더 빨리 도착하니 당황할 수 밖에 없다.

기병들은 말 위에서 모든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식량과 무기를 가볍게 하는 등 능숙했다.

한 명이 말을 보통 3마리 이상 데리고 다니면서 밤새도록 달렸다.  

타던 말이 지치면 순식간에 옮겨 타면서 말이다.


또 역참제라 해서 말로 달려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 마다 숙박 시설과 말을 제공하는 네트워크를 갖췄다.

오늘날 정보의 소통이 가능한 지리적 인프라 구축을 한 것이다.


성공한 리더는 시간을 아낀다. 

나폴레옹이 저녁식사를 12분 이상 끌지 않았으며, 점심은 8분을 넘기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다.

할 일이 많은 사람에게는 식사 시간조차 아까운 것이었다.

     

셋째, 고난 극복이다.


  " 자연은 신이 만들었지만 운명은 과거의 의제에 딸라 달라진다"(칭기스칸 어록)


승패는 병가지상사다. 준비 많이 하고 병력이 우세하다고 꼭 이기는 것은 아니다.

어려움을 극복하면 자산이 된다.

그 어려움이 있었기에 이겨낼 힘이 생기고 그래서 생긴 성공은 다음의 도전을 위한 발판이 된다.

작은 성공이 쌓이다 보면 큰 성공을 이룬다는 이치다.

     

                 사진: 칭기즈칸의 가장 아끼는 장군 수부타이


넷째, 사람들의 마음을 산다.


인간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존재이다.

자신의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조차도 맛없으면 가지 않는다.

성공한 CEO 들은 물건을 팔기 전에 마음을 산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프리젠테이션 할 때 제품의 기능과 우수성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오직 감성을 흔든다. 비즈니스에서 이타심과 이기심의 경계는 애매하다.

중요한 것은 거래로 상호 이익이 되도록 믿게하는 것이다.


칭기즈칸은 스스로 먼저 움직이는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후대 학자들이 ‘빌리크’라는 이름으로 정리해 놓은 그의 격언집에 “군대를 통솔하려면 병사들과 똑같이 갈증을 느끼고, 똑같이 허기를 느끼며, 똑같이 피곤해야 한다.”라고 했다고 한다.


칭기즈칸은 자기 이름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일자 무식쟁이지만 무엇으로 세상을 움직이는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남의 몸을 움직이려면 솔선수범해야 한다.

 “돌격 앞으로”보다는 “나를 따르라”는 말이 인간관계의 핵심이다.

리더가 몸소 앞장서서 고난과 고통, 시련을 해쳐나갈 때만이 조직은 강해진다. 


  



다섯째,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자신을 극복한다.

 

    

푸른 늑대와 하얀 암사슴으로부터 시작되는 건국신화를 가진 나라, 몽골. 1162년 테무진이란 아이가 태어났다. 그의 탄생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오른손에 주사위뼈만한 핏덩이를 쥐고 태어났다. 눈에는 불이 있고 얼굴에는 빛이 있다.”

     

테무진의 아버지 에수게이가 테무진을 약혼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타타르 족(몽골부족중 하나)에게 독살당한다 그 후 가족들은 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겨우 목숨만을 유지하는 힘든 생활을 한다.

어릴 적 약혼녀를 찾아오지만 납치되어 이미 다른 남자의 아들을 낳았다.

분노와 복수심이 불탔지만  꿈을 부모로 삼고, 그림자를 친구삼아,  말 꼬리를 채찍삼아 고난을 극복한다.


테무진은 16살 경 몽골의 유력한 세력 중 한 명인 옹칸에게 의지한 후 그 밑에서 여러 부족들을 통합하며 자신을 따르는 세력을 키워갔다.

27살이 된 테무진은 몽골부족 대표회의에서 칭기즈칸이라는 칭호를 얻고 칸(부족장)이 됐다. 칭기즈칸의 세력이 더욱 커지자 위협을 느낀 옹칸은 계략을 써서 칭기즈칸을 죽이려 한다.

뒤늦게 계략을 알아채고 도망갔으나 살아남은 자는 겨우 19명에 불과했다.


부족과 종교가 다른 19명의 부하와 목숨을 연명하던 칭기즈칸은 “만일 내가 이 사람들을 잊어버린다면 흙탕물처럼 되게 하소서”라고 맹세하며 흙탕물을 마시자 연이어 한명씩 그 물을 마셨다.

이후 이들은 칭기즈칸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몽골 통일을 이룬다.


그의 어릴 적 의형제였던 자무카도 칭기즈칸은 싸워 이긴다.


1206년 드디어 칭기즈칸은 전 몽골을 통일하고 1대 칸에 추대됐다. 이후 불과 21년 만에 칭기즈칸은 서하를 정복하고,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를 정벌하였으며, 중앙아시아의 대국인 호레즘 왕국을 멸망시키며 광활한 지역을 정복했다.  

   

  


여섯째, 종교와 문화에 관용하다.


국교로는 라마교를 받아들였지만 모든 종교의 활동이 가능했다.

전쟁의 시기, 중요한 일,  길흉 등 나라안의 일에 무당과 다른 종교를 허용했다. 특히 아랍의 상업을 중시하여  아랍상인들이 세금만 내고 제국 어디든 상업을 할 수도 있게했다.

아랍상인들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칭기즈칸에 대한 소문을 뿌리기도 하고 다른 지역의 정보를 물어다 주기도 하였다.

     

일곱 번째, 인재등용은 가문보다는 능력위주로 하였다.

     

비참한 노예도 재상이 될 수 있었다. 실제로 금나라의 신하였다가 칭기즈칸의 무장의 노예가 된 아율초재라는 인물은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제2대 칸 오고타이칸대에 재상이 되었다. 배신자를 제외한 적을 포함한 모두를 받아들여 인재로 사용하였다.

 


여덟번 째, 공정한 분배


징기즈칸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이전까지 귀족들이 독점하던 전리품을 말단 병사들에게까지 골고루 나눠줬다. 이를 통해 병사들이 처자식을 위해 목숨걸고 싸울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줬다.     

오늘날로 말하면 인센티브를 공정하게 배분한 것이다.

목표 실적을 초과해 달성한 임직원에게 상당한 돈을 줌으로써 일하는 재미와 열정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아홉번째, 기술 중시


칭기즈칸은 한 국가를 정복할 경우 칼을 잘 만드는 장인, 폭탄제조 기술자, 공성장비 개발자 등 그 나라의 기술자들을 우대하고, 제국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칭기즈칸의 통치방식 가운데 '기술 중시'가 가장 으뜸이었다 . 하지만 후계자들이 이런 정신을 이어가지 못했고 헝그리 정신이 없어 쉽게 무너졌다.

기술 덕에 건설할 수 있었던 칭기즈칸의 대제국이 결국 기술 탓에 몰락했다는 말이다.


몽골제국이 과학기술 발전이 주춤한 동안 서구에서는 조총이라는 신무기를 개발했다. 러시아 등 조총으로 무장한 국가들에 패하면서 제국은 쇄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최근 젊은 인재들이 엔지니어가 되기보다는 공무원 등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할 때  우리나라 앞날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800년 전에 존재했던 칭기즈칸의 정복 전략이나 현재 글로벌 기업 전략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열번째, 꿈꾸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 한 사람의 꿈은 꿈으로 남지만 만인의 꿈은 현실이 된다. " _칭기즈칸


사람은 지식이나 지혜가 부족해서 일에 실패하는 경우는 적다.

꿈이 부족하기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금방 포기한다. 만일 우리가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것은  새로운 일을 전혀 시도하고 있지 않다는 어리석음이다.



정주하는 자, 변화의 길에 비낀 역사의 보복에 잡힌다.


몽고제국이 망하게 원인은 무엇인가?


" 내 자손이 비단 옷을 입고 벽돌집에서 사는 날 내 제국은 망할 것이다." 라는 우언이 그대로 적용된다.


칭기즈칸은 무덤은 없다. 단 그의 위대함은 존재한다.


후손들은 프로크루스테스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과 같은 존재였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아테네 교외의 케피소스 강가에 살면서 지나가는 나그네를 집에 초대한다고 데려와 쇠 침대에 눕히고는 침대 길이보다 짧으면 다리를 잡아 늘이고 길면 잘라 버리는 만행을 했다.


첫째, 지배층의 분열과 대립 등의 내분으로 망했다.


몽고제국의 지배층은 황금씨족으로 징기즈칸의 후손들이다.

징기즈칸은 자신이 죽고난 후 권력을 다툴까 큰 영토를 5개로 나누어 4개를 자식에게 1개를 대칸에게 물려주었다. 하지만  제국의 단합은 없어지고 4개의 한국에서 대칸이 되기위해 전쟁을 일삼았고, 이로 인해 제국이 완전 분열되어 버고 원제국이 망하면서 북몽고로 쫒겨갔다. 

오늘날 러시아와 중국에 편입되는 몽골제국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둘째,  한족을 너무 무시 하였다.


비록 인재는 능력위주로 사용하였으나 그 외의 백성들 특히 한족(남송)들에게는 무시했다.

농경민들을 전투력이 없다는 생각으로 대우를 하지 않았고 그 결과 백성들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다.


셋째,  제국이 너무커 명령체제가 전달이 잘되지 않았다. 


지배했던 나라의 문화를 흡수하지 못한 채 무력으로만 지배하려고 했다. 

특히 전쟁때마다 많은 사람이 죽어 나라를 다스릴 인재나 몽골 백성의 수가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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