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수많은 문명과 제국의 발생지
나에게 여행이란 살아있다는 증거이면서 배움의 학교 역할을 한다. 새로움의 인연을 통해 낯선 곳에서의 관찰과 경험 및 인식을 넓히는 기회이다.
특히 역사를 통해 살고 있는 사람들을 투영하여 삶의 지혜를 두텁게 쌓아갈 수 있으며 상상력과 감수성을 발휘하는 자기발전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독서의 중요성을 알지 못할 때의 여행은 한낱 휴식에 가정일 뿐이었다.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탈과 다름을 통해 묻혀있던 자신을 위로하는 즐거움에 불과했었다.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대화와 공감을 펼칠 수 있는 설렘의 가교인 것은 확실하다.
사진: 여행지 정보
역사를 알고 여행하는 자는 인생을 두 배로 산다는 말이 있다.
여행은 온몸으로 떠나는 독서인 셈이다. 여행과 독서는 우리의 정신을 일깨워주는 스승이자 인생의 두 기둥인 셈이다.
영국 낭만주의 작가 해즐릿은 “여행의 진수는 자유에 있다. 마음대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에 있다. 우리가 여행하는 주된 이유는 모든 장애와 불편에서 풀려나기 위해서다. 자신을 뒤에 남겨두고 딴 사람을 떼어 버리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현실에 대한 왜곡된 자신을 치유한다는 명백한 의견에 갈채를 보내면서 여행을 현실도피나 휴식 그리고 자기만족에 그쳐서는 반쪽의 여행이라 본다.
사진: 술탄 이흠[드 모스크(오스만 터키시대에 만들어진 블루 모스크)
여행은 현재 숨 쉬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와 철학과 역사를 통찰하는 인문학적 시야와 대면해야 할 것이다.
2018년 2월 19일부터 2월 27일까지 아내와 함께 한 ‘안단테 느림과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터키여행기를 쓴다.
터키는‘동서양의 십자로’‘인류역사의 거대한 노천 박물관’‘유럽과 아시아의 징검다리’‘실크로드의 종착역’등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동서 문화, 다양한 민족을 어우르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
이 곳은 신석기시대인 기원전 6500년 차탈효육 부족이 형성한 이후 수많은 세력들이 이 땅을 뺏고 빼앗기는 아나톨리아의 문명이 만들어졌다.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의 아키메데스 왕조가 이 땅을 차지했다가 알렉산드로스의 비잔틴시대를 거쳐 기원전 1세기경에는 로마가 이지역을 차지한다. 6세기 중반 둘궐족은 당나라에 밀려 중앙아시아 지역에 자리를 잡는다. 11세기 투르크 유목민의 한 집단인 오구즈 족이 침임해와 이슬람화가 되었도 최초의 무슬림 왕조인 셀주크 제국이 등장한다 이 민족이 아나틀리아 투르크의 시조가 되었다. 13세기 몽골의 침임으로 셀주크제국은 무너지고 몇몇 토호국으로 분할된다. 그 중 하나인 오스만 투르크가 제국을 만들어 비잔틴 제국과 동유럽의 기독교 세계를 정복하고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제국까지 통합하게 된다. 오스만 제국의 최전성기였던 술탄 쉴레이만 1세는 헝가리와 크리미아도 합병한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오스트리아 헝가리 편에 섰던 탓에 오스만 제국의 땅을 연합군에 점령된다. 하지만 1923년 케말 라타튀르크를 대통령으로 하는 터키 공화국이 탄생하여 오늘날의 터기를 만들게 된다. 영광과 쇄락의 문명이 피고 지는 터키의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세계문명의 흐름과 미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특히 터키는 일찍이 기독교의 사도 바울이 전도했던 ‘성서의 땅’이자 이슬람 신비주의 교단의 발상지로서의 문화의 꽃을 피우는 곳이기도 하다. 여행기는 터키의 역사, 인종, 사회 전반에 관한 소개와 함께 자연과 관광지를 설명한다.
동양과 서양이 교차하는 오랜 역사를 지닌 공존의 땅으로서 인종과 문명이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서양아시아 대륙 서쪽 끝에 있는 나라.
이스라엘을 제외하고는 기독교 성지 순례할 곳이 많은 나라이다. 우리나라와는 ‘형제의 나라’라고 불려진다. 영토의 97%가 아시아 아나톨리아 반도에 있다.
아나톨리아반도는 기원 전 9천년 구석기 시대부터 거주하여 빙하기가 끝나는 기원전 6,500년경 신석기 시대에 수렵과 채집생활을 끝내고 정착하여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다. 이는 대문명 메소포타미아 못지않다.
기원전 3,000년부터는 청동기 시대에 아나돌루의 서부지역에 트로이를 비롯하여 그리스인이 세운 도시국가들이 생겼고 화려한 청동기문화가 꽃피웠다. 기원 전 17세기 철을 사용하한 히타이트 족이 강대한 군사력과 망을 끄는 두 바퀴 전차를 앞세워 주변의 도시국가들을 차례로 정복했다.
기원전 13세기에 고대 이집트 제국과 시리아의 지배권을 놓고 카데쉬에서 격돌했다. 기원전 12세기 무렵 바다의 민족에 히타이트 제국이 멸망 한 후 기원전 8세기까지 아나돌루는 작은 왕국들이 지배 분할했다. 이 중 <황금의 손>으로 유명한 미다스 왕의 프리기아, 최초의 금속화폐를 주조한 리디아 등이 있었다. 아나둘라는 기원전 6세기에 페르시아 제국, 기원전 4세기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지배를 받았다. 이 시기에 그리스 문명과 페르시아 문명이 만나 동서를 융합한 헬레니즘 문명이 탄생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뒤 아나둘루에 페르가몬 등 여러 왕국이 생겼으나 기원 전 1세기에 고대 로마제국에 흡수됐다.
사진: 에게해 연안에 위치한 고대도시 도시 전체가 유물로 케르스스 도서관, 바울 3차 여행 시 2년 거주
4세기 초 로마제국을 재통일한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는 스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옮기고 그 이름은 콘스탄티노라 했다. 4세기 말 고대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열됐다. 동로마 제국은 15세기까지 존속했다. 비잔틴 제국의 최전성기는 6세기의 유스티나아누스 대제였다. 이집트에서 스페인까지 고대 로마 제국의 영토를 거의 회복했다. 그러나 7세기 아랍민족의 침입 11세기 룸 셀주크의 침공 13세기 십자군의 공격, 14세기 오스만 제국의 영토 확장으로 비잔틴 제국은 영토의 대부분을 일고 마지막에는 콘스탄티노플만 남았다.
총면적은 779,452㎢로 한반도 면적의 3,5배이며 지형적으로 8개국과 국경을 같이하며 3면이 바다인 ‘반도국가’이다. 이런 지정학적 환경으로 인해 터키는 국가 안보를 목표로 “조국의 평화, 세계의 평화”를 중시한다.
생활 그 자체가 무슬렘으로 인구의 98%가 무슬림이다 이슬람교리는 온건파 수니파(무함마드 후계를 공동체의 합의로 선출 주장)로 세속화를 지향하는 나라다.
터키 국민은 ‘달과 별’이라는 뜻의 ‘아이 일디즈(ay yildiz)’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BC 4세기 마케도니아의 군세(軍勢)가 비잔티움(이스탐불)의 성벽 밑을 뚫고 침입하려 했을 때 초승달 빛으로 이를 발견하여 나라를 구하였다는 전설을 그리고 있다. 그밖에 1398년의 코소보전투가 끝난 후 피바다 속에 나타난 신비로운 달과 별을 가리킨다는 등 여러 설이 있다.
기의 기본 형태는 술탄인 셀림 3세가 지배하던 1793년경에 나타났고, 1844년 별이 추가된 이래 국기로 사용하여왔으며 1936년 6월 5일 추인(追認)하였다. 가로세로 비율은 3:2이다.
인구의 80%는 투르크인(터키인)이며 소수민족으로는 쿠르드족이 약 17%로 가장 많고 그리스인, 유대인, 아르메니아인들이 살고 있다.
터키인은 중앙아시아에서 내려온 ‘펄펄 나는 족속’이라는 별명을 가진 몽골족의 후손인 훈족(돌궐족)이다. 1923년 10월 케말은 국민적 영웅으로 초대대통령이 되어 공화국 수립했다.
1924년 칼리프제(制) 폐지와 함께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1984년부터는 터키 동쪽지역에 거주하는 쿠르드족(族)이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터키 정부를 상대로 유혈투쟁을 벌여왔고 최근에도 그들의 독립요구는 계속되고 있다. 행정구역은 81개주(il), 정식명칭은 터키공화국 (Republic of Turkey)이다.
정치는 공화제, 수도는 앙카라, 통화는 터키리라(TL) 인구(명)는 79,749,461(2012년), 1인당 명목
GDP($) 10,456(2012년)이다.
관광자원이 풍부한 세계 7위의 관광대국이다 2011년 외국관광객 3천 145만 명으로 관광수입이 230
억불이었다.
터키는는 죽기 전에 꼭 한번은 방문하고 싶은 1순위다. 터키의 매력은 지구상에서 불 수 없는 풍과과 문화가 서려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