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도시로 살아 있는 영화 에페소스
인생은 또 다른 여행이다.
자신을 비우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여행은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자 힐링의 의사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해방, 자유, 행복 그리고 구원”을 받았다고 토로한다.
모차르트도 36세 요절한 짧은 생애를 보냈지만 성악·기악의 모든 영역에 걸쳐 수많은 곡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6살부터 시작한 해외여행 덕분이라고 한다.
이처럼 여행은 자연과 낯선 문화를 만나게 하는 영감과 상상력의 보고인 셈이다.
이스탄불은 서울에서 8,000킬로 떨어져있다.
0시 20분에 출발하는 터키 항공을 타기 위해 부지런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시차는 우리보다 6시간 늦다. 좁은 공간에서 장시간 여행으로 인해 몸은 피로했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으로 참을 만 했다. 영화만 두 편 이상을 본 후에야 동서양의 허브공항인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곳은 항상 분비고 모든 인종들이 거쳐 가는 장소인 것을 단번에 목격했다.
아타튀르크는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의 성으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의회가 부여한 국부이다.
사진: 케말 장군 탄생 축하
터키 주민의 대부분은 터키인(전체 인구의 약 80%)이며, 소수민족으로서 쿠르드인(터키 인구의 약 17%) 그리스인,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등이 있다.
공용어는 터키어이며, 그밖에 쿠르드어·아랍어·그리스어 등도 사용된다. 한국외대에는 터키∙아제르바이잔어과가 있다. 1928년 라틴 문자가 채용되기 전까지 터키어는 아랍 문자를 사용하였다. 터키어는 알타이어계(語系)에 속한다.
터키는 남한의 8.5배에 달하는 방대한 영토와 85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잠재력이 큰 국가다.
그러나 EU는 이 잠재력 큰 미래 대국 터키의 EU 가입을 한사코 거부해서 2004년 준 국가로 있다. 터키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문물이 많다. 대표적인 것으로 18세기 종이가 일반화될 때까지 양피지를 들 수 있다. 그밖에 초승달 모양의 빵 크루아상, 터키의 원산지인 튤립, 맵지 않은 고추 파프리카, 커피 요구르트, 생과일 아이스크림 셔벗 그밖에 카펫 타일 소파 등이다.
모차르트가 작곡한 터키 행진곡, 피자도 터키 전통음식 피데가 그 기원이다.
터키는 헌법상 국교를 명시하고 있지 않으나 전체 국민의 98% 이상의 절대다수가 수니파 이슬람교도이기 때문에 이슬람 국가이다. 따라서 이슬람의 전통과 관행이 매우 중요시한다.
사진: 이슬람은 정복 시 종탑 같은 모양의 미나레를 세운다.
도시 한복판에도 아잔도 쉽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직접 기도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아잔은 매일 5차례 일정한 시각이 되면 담당 무슬림이 종탑 위에 올라가 성도(聖都) 메카를 향하여 기립하여 소리높이 외친다.
그 리듬은 이슬람 특유의 음악적 효과를 가지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의 7절로 되어 있다.
“알라는 지극히 크시도다. 우리는 알라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맹세하노라. 예배하러 오너라. 구제하러 오너라. 알라는 지극히 크도다.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느니라”.
터키인의 대부분은 스포츠 애호가이며 특히 축구나 농구 등의 프로 스포츠가 인기가 높으며, 레슬링은 전통적인 터키의 스포츠로서 올림픽에서 많은 메달을 따고 있는 종목이기도 하다. 배구 여제 김연경 선수가 터키리그의 페네르바체 유니버셜 팀에서 있었다.
터키의 작가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다. 파묵은 이스탄불 공과대학에서 3년간 건축학을 공부했으나, 건축가나 화가가 되려는 생각을 접고 자퇴했다.
파묵은 23세에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 외의 모든 것은 포기한 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문명 간의 충돌, 이슬람과 세속화된 민족주의 간의 관계 등을 주제로 작품을 써 온 파묵은 2006년 ‘문화들 간의 충돌과 얽힘을 나타내는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했다.’라는 평가를 받으며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우리가 잘 아는 케밥은‘꼬챙이에 끼워 불에 구운 고기’란 의미를 가진 음식으로 주재료는 쇠고기와 양고기다. 이는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와 아라비아 사막을 누비던 유목민들이 이동하면서 쉽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든 것에서 시작됐다. 속에 넣는 고기와 생선의 종류에 따라 케밥 종류가 200~300가지가 된다. 대표적으로 숯불 회전구이인 되네르(doner) 케밥, 카파도키아에서 유명한 진흙 통구이인 쿠유 케밥, 꼬치구이인 쉬시(shisi) 케밥 등이 있다. 여행 중 케밥을 여러 번 먹었지만 좀처럼 입맛이 들지 못했다.
이스탄불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3시간 정도 대기하다가 자동차로 1시간 30분 걸려 해의 진주라고 불리는 이즈미르[Izmir]에 도착했다. 이즈미르는 인구 2만 7천명의 고대도시로 이스탄불의 남서쪽 336km, 에게해(海)에 면한 터키 제3의 대도시로 예전에는 스미르나라고 불렀다.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였으며 BC 627년 리디아의 공격으로 멸망하였다. BC 3세기에 재건되어 로마시대까지 번영하였다. 중세 비잔틴·십자군·아랍·투르크 간에 쟁탈이 거듭된 그리스 문화의 한 중심으로 무역이 성행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이 지방에 침입한 그리스군(軍)에 의해서 파괴되고 그리스령이 되었으나 1923년 터키에게 반환되었다.
주변일대에 곡물·목화·올리브 등이 있으며 염색공업이 활발한 상공업 중심지이다. 또한 제1의 수출무역항으로 활기를 띠고 있다. 호메로스의 출생지로도 알려져 있다. 페르가마에서 고대의 아고라에서 대리석의 열주(列柱), 포세이돈과 데메테르의 상(像) 등이 발굴되었고, 파구스의 언덕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무장(武將)이 축조한 성새가 있다.
사진: 버가모 교회
이즈밀에서 떨어진 베르가마(Bergama, 그리스어로는 Pergamon, 견고한 요새)교회는 성경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소아시아 7대 교회 중의 하나인 버가모라고 불렸다. 당시 우상숭배가 많아 요한계시록에서 ‘사탄의 권좌’(계 2:13)라고 불렀다. 한편, 초대교회 버가모 교회 안에서는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 등 여러 이단들이 성행하여 교회를 혼란케 하였는데(계 2:14-15), 버가모의 성도들은 이런 와중에도 ‘안디바’와 같이 순교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계 2:12-17).
사진: 아시아 7교회
또한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안디옥 교회에 대하여 알아본다. 고대에는 안티오크·안티오키아로 알려졌다. BC 64년 로마 시대에는 속주(屬州) 시리아의 수도가 되었고 헬레니즘·로마 시대에 번영을 이루었다. 47~55년 사도 바울로의 전도 근거지였으며, 그리스도교의 이방인 전도(傳道) 기지로서 알려져 있다.
또한 그리스도교도를 처음으로‘크리스천’이라고 부른 곳이기도 하다.
안디옥은 시리아와의 국경 부근에 있는 지중해 도시이다. 자연히 대상로(隊商路)가 있어 통상·무역의 요지로서 예로부터 ‘동방의 여왕’이라고 하였다.
이즈미르에서 차로 1시간 30분 결려 북서쪽 약 120km 지점인 에페소스에 도착했다.
사진: 에페소 거리
터키 현지어로는 에페소(현재 이름은 셀축)라 불리는 이곳은 신약에서는 에베소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하나였다.
요한이 이곳에서 계시록을 썼고, 에베소서를 쓴 바울은 두란노서원에서 전도하면서 교회를 세우며 고린도 전서를 완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기독교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지 않고 고대 그리스, 헬레니즘, 로마 시대의 문화와 생활상을 담고 있다.
2만5000명을 수용했다는 원형극장은 애초 연극무대로 사용되었고 로마시대는 검투사들의 무대가 된 극장이다.
서기 97년 재력가였던 폴리오가 세운 물을 공급받기 위한 폴리오 샘이 있다.
1세기 아우구스투스 황재 시절에 멤미우스가 건립한 멤미우스 기념비가 그의 할아버지였던 로마 최초의 종신 독재관 술라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있다.
멤미우스 기념비 바로 건너편에 승리의 여신 니케의 부조 왼손에 든 월계관과 여신의 날개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니케아라는 이름에서 나이키가 나왔다고 한다.
사지니 도미티아누스 신전
81~96년 사이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대에 만든 신전 도미티아누스 신전도 있다. 도미티우스는 철권을 휘두르며 ‘제2의 네로’라고 불렸으며 사도요한을 박해해 요한을 밧모 섬으로 귀양 보낸 인물이다.
하드리아누스 신전은 쿠레테스 거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불린다.
고대 에페소스의 건립자인 안드로클로스의 전설이 조각된 벽도 있다. 안드로클로스는 ‘멧돼지와 물고기가 가르키는 도시를 건설하라’는 신탁을 받았다. 이후 이곳에 도착한 안드로클루스가 어부들과 함께 생선을 굽고 있을 때 물고기 한 마리가 화로에서 튀겨나가는 바람에 옆의 덤불에 불이 붙었고 덤불에 숨어있던 멧돼지가 놀라서 뛰어나왔다 바로 그 장소에 아테미스 신전이 세워지면서 에페소스 도시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사진: 셀수스 도서관
에페소스 유적 중 가장 아르답고 인상적인 건물은 학문을 사랑했던 로마의 아시아 총독 셀수스를 기념하기 위한 셀수스 도서관[Celsus Library] 이다.
고트족의 침입과 지진으로 불탔다는 이 도서관이 유명한 것은 남아 있는 2층짜리 앞 벽면(파사드)의 웅장함과 아름다움 때문이다.
도서관은 본래 로마의 원로원 의원이자 아시아 주의 총독이었으며 대단한 애서가였던 켈수스 폴레마이아누스의 웅장한 무덤과 도서관이 통합된 형태로, 그의 아들 율리우스 아퀼리아에 의해 지어졌다.
납골당은 1층 아래에 있으며, 대리석으로 된 무덤 안에 납으로 된 유골함이 담겨 있다. 이 건물이 곧 도서관으로서 용도를 찾게 되자, 고대 세계 전역에서 걸출한 학자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어 1만 5천 권에 달하는 두루마리들을 연구했다. 서적이 손상되지 않도록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구조로 만들었다. 코린트 양식과 이오니아 양식이 혼합된 기둥으로 세운 정면 구조물은 웅장했다. 지혜와 지식, 지성과 용기를 상징하는 네 여인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다만 유적에 있는 것은 모두 모조품으로 진품은 오스트리아 비엔나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지금도 고대 로마의 도시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