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부 데니즐리(Denizli) 주에 위치한 파묵칼레는 기이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유서 깊은 고대도시 유적이 어우러진 곳이다.
파묵칼레는 터키어로 ‘목화의 성’이라는 뜻으로 경사면을 흐르는 온천수가 빚어낸 장관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석회성분을 다량 함유한 이곳의 온천수가 수 세기 동안 바위 위를 흐르면서 표면을 탄산칼슘 결정체로 뒤덮어 마치 하얀 목화로 만든 성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사진: 터키 파묵칼레 온천
이 온천수는 섭씨 35도로 류머티즘, 피부병, 심장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치료와 휴식을 위해 그리스, 로마, 메소포타미아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로마 시대에는 여러 황제와 고관들이 이곳을 찾았는데 하얀 결정체가 대지의 경사면을 온통 뒤덮은 장관을 감상하면서 심신의 치료를 겸할 수 있는 최고의 휴양지였기 때문이다.
2. 히에라폴리스 [Hierapolis]
사진: 히에라폴리스
히에라폴리스는 파묵칼레의 언덕 위에 세워진 고대도시다. 기원전 2세기경 페르가몬 왕국에 의해 처음 세워져 로마 시대를 거치며 오랫동안 번성했다.
히에라폴리스(그리스어: Ἱεράπολις)는 눈처럼 하얀 석회층으로 덮인 유명 관광지다. 푸른 온천수가 흐르는 석회층 위에 지어진 고대 도시, 기원전 190년에 페르가몬의 왕인 에우메네스2세가 처음 건설한 도시. 헤라클레스의 아들이자 페르가모의 시조인 텔레포스의 아내 히에라‘의 이름을 딴 것이다. 로마인은 이 도시를 ‘성스러운 도시(히에라폴리스)’라고 불렀다. 그리스어 ‘히에로스’는 신성함을 뜻한다.
이곳에는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 신전, 공동묘지, 온천욕장 등 귀중한 문화유적이 남아 있다. 원형극장은 최대 1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으며 1200기의 무덤이 남아 있는 거대한 공동묘지도 있다.
서아시아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 유적 중에 하나인 이곳에는 지금도 수많은 석관들이 뚜껑이 열리거나 파손된 채 여기저기 널려 있다. 테르메라고 하는 온천욕장은 온욕실과 냉욕실은 물론 스팀으로 사우나를 할 수 있는 방, 대규모 운동시설, 호텔과 같은 귀빈실, 완벽한 배수로와 환기장치까지 갖추고 있었다.
히에라폴리스는 로마에 이어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번성하였으며, 11세기 후반 셀주크투르크족의 룸셀주크 왕조의 지배를 받으면서 ‘파묵칼레’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지배세력의 변천 속에서도 지속적인 번영을 누려왔던 히에라폴리스이지만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1354년 이 지방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도시 전체는 폐허가 되었다.
대지진 이후 역사 속에서 사라진 도시를 1887년 독일 고고학자 카를프만이 발견하였고 이후 발굴 및 복원작업이 진행되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유적을 동시에 갖춘 이곳은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복합)으로 지정되었다
로마극장은 서기 60년 폴라비우스 황제 시절 남동쪽 언덕에 세웠고 무대로 사용되었다. 언덕의 경사면을 이용한 45줄의 객석은 1만 5천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는데 무대와 객석 모구 잘 보관되어 있다. 위쪽 객석에서 보면 파묵칼레의 전경이 내려다보인다.
사진: 아폴론 신전
아폴로신전은 히에라폴리스의 주신인 아폴로를 모시던 신전이다.
신전 남쪽에는 유독가스가 나오는 플루토니움이 있다. 사제들은 플루토니움에서 나온 유독가스(일산화탄소)를 조금 마신 후 최면 상태에서 신탁을 받았다.
님파에움은 아폴론 시전 바로 앞에 2세기 경 지은 분수로 복잡하게 연결된 수로 시스템을 통해 도시 곳곳에 물을 공급하던 곳이다.
사진: 사도 빌립 순교 기념관
사도빌립 순교기념관은 기독교가 공인된 5세기 후 빌립이 묻힌 장소에 기념관을 세웠다.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딸과 함께 전도하던 사도 빌립을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한다.
원래는 정사각형 구조물 안에 십자가 2개를 겹친 모양의 팔각형 건물고조를 둘러싼 바깥 사각형 구조물에는 한 면마다 아홉 개의 작은 방들이 있었다.
이 밖에 터키식 증기 목욕탕이나 돌을 쌓아 만든 벽 등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으며 이곳에서 발굴된 출토품들은 히에라폴리스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파묵칼레에서 신발을 벗고 사진과 체험한 후 호텔로 돌아왔다. 마침 그 호텔은 파묵칼레의 온천물을 끌어다 쓰는 곳으로 행복한 온천욕을 즐겼다. 온천수는 그리 뜨겁지 않았다.
3. 한국과의 관계
사진: 참전 용사들
터키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좋아한다.
길거리에서 학생들이 여행하던 한국 대학생들과 기념촬영하자는 제의를 많이 받는다. 오랜 역사 상 만주 벌판의 돌궐(몽골지역)과 고구려는 인접해 있었으며 고구려가 수나라 당나라와 전쟁 당시 동맹하여 당나라를 처 부순 적이 있다. 그 이후 발해 대조영도 건국당시 돌궐과 연합하여 거란과 싸웠다.
터키는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터키 말로 칸가르데쉬란 말로 이 말은 피를 나눈 형제란 뜻이다. 한국전쟁 참전으로 칸가르데쉬 코리아라고 불려 지게 되었다. 터키는 한국에 2만 여명의 용사를 보냈고 721명이 한국에서 전사를 했고 200명이 다쳐서 장애자가 되었다.
터키가 한국전에 참전한 가장 큰 이유는 2차 대전이후 설립된 국제연합의 회원국으로서 의무를 다한다는 대의명분이 작용했다.
사진: 실제 아일라(나는 달입니다)
특히 양국이 공동 제작한 영화 '아일라'는 한국전쟁에 유엔군으로 참전한 터키 병사와 당시 다섯 살이던 고아 아일라(김은자씨)의 인연을 그렸다. "'아일라'가 터키에서 흥행이 된 양국 국민의 형제애와 유대감을 잘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터키는 1949년 8월14일 우리나라를 승인, 1950년 7월 한국전 참전 결정, 1957년 3월 한국과 수교하였다. 특히 2002년 월드컵 3,4위전을 계기로 두 나라 국민들 간의 유대감이 더욱 확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