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와 돈은 동의어가 아니다. 돈은 여러 가지 부의 증거 혹은 상징적인 표현 중 하나에 불과하다. 때때로 부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살 수 있다. 따라서 누구든 부의 미래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려면 그 근원인 욕망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단순하게 욕망을 자극하거나 탐욕을 찬양하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꼭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욕망을 선동하고 부를 추구하는 문화가 필연적으로 부를 창출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가난의 미덕을 강조하는 문화에서는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대로 머물 수밖에 없다. -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에서-
미래 학자 토플러는 갈망을 만족시키는 것을 부라고 지칭합니다.
제3물결에서 제4물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부 창출 시스템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시간은 세상과 나의 속도 맞추기가 중요하며,
장소의 경우 힘의 중심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동하며,
정보의 경우 소비자가 상품 정보를 올리고, 그 상품을 선택하고 구매하는 시스템이 된다고 한다.
이미 세상은 부의 개념이 소유에서 공유로 바뀌었다.
그는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 상황은 속도의 충돌 때문으로 발전을 더디한다. 경제 발전의 속도를 사회 제도나 정책 등이 보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업은 시속 100마일의 속도로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고 있지만 정부와 관료조직, 정책과 법 제도는 30마일도 안되는 속도로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지식보다 지혜를, 양보단 질을 우선 시하는 시대다.
특히 빅 데이터와 플랫폼 시대의 돌입으로 로봇과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차별성과 창의성을 가져야 한다.
지동설 주장한 과학자 코페르니쿠스의 무덤 비석에는 그의 유언을 따라서 이런 비문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나는 바울의 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 나는 베드로의 능력을 구하지 않습니다. 오 하나님, 나는 회개하는 강도에게 주셨던 은혜를 구합니다."
로봇과 싸운다는 것은 패배를 담보하는 것이다. 달리기를 자동차와 경쟁하여 이기겟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인공지능과 협업을 통해 인공지능이 하기 어려운 일을 찾는 수밖에 없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점에 나는 과연 제대로 준비하고 대처하는 지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