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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혁 Oct 16. 2018

한 번은 알아야할 사상가 버트런드 러셀 이야기

분석철학가

한번은 알아야 할 위대한 사상가

뜨거운 열정을 실천한 버트런드 러셀 [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사랑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인생을 두려워하고,

인생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미 거의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다. “

_ 러셀 노벨수상작『결혼과 도덕』

     

영국의 러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논리학자·철학자·수학자·사회사상가로 19세기 전반에 비롯된 기호논리학의 전사(前史)를 집대성하여 

분석철학을 발전시켰고, 다양한 주제로 대중적 철학서를 집필할 뿐만 아니라 정치철학에 깊숙이 개입했다.

    

 

귀족 출신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

     

영국의 웨일스에서 출생한 그는 초대 러셀 백작이자 영국 수상을 두 차례 역임한 존 러셀 경의 손자이다. 

 두 살 때 어머니와 누이를 잃고 4살 때 아버지가 사망했다. 

고아가 된 러셀은 할머니와 이모에게 양육되었다.

 집에서 프랑스어와 독일어 문학과 함께 고전을 배웠다. 어린 시절 그는 고독한 소년이었다.

 “어린 시절을 통틀어 내게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은 정원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었으며

 따라서 내 존재의 가장 강렬한 부분은 항상 고독했다.” 


러셀은 유럽에서 명성을 얻은 프랑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와 기하학의 토대와 공간의 본성에 대한 

논쟁을 통해 명성을 얻었다.


   

     

     

     

버트런드 러셀이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서 

세상 만물이 인간이 살아가기에 꼭 맞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목적론’에 대한 반박을 펼친다. 

토끼가 흰색인 것은 포수들이 총 쏘기에 좋도록 하기 위해서고, 사람의 코가 이렇게 생긴 것은 

안경 쓰기에 좋도록 만들어놨기 때문이라는 것은 너무나 인간중심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비판한다.


1927년에 한 강연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이 목적론을 살펴보노라면, 온갖 결함들을 지닌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 세계를 전지전능한 하느님이 수백만 년에 걸쳐 만들어놓은 최선의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 생각해 보라. 만일 여러분에게 전지전능과 수백만 년의 세월을 주면서 세상을 완성해보라고 했다면 고작 공포의 ‘큐 클럭스 클랜’(KKK)단이나 파시스트 같은 것밖에 만들 수 없었을까?”

     

또한 교회에서는 인간은 선악과를 먹은 아담의 후손이기에 날 때부터 죄인이었고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고 예수의 부활을 믿어야 죽어서 지옥에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독교를 두려움의 회피 대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종교의 기반은 두려움이다. 종교의 일차적이고도 주요한 기반은 두려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여러분이 온갖 곤경이나 반목에 처했을 때 여러분 편이 되어줄 큰 형님이 있다고 느끼고 싶은 갈망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그 모든 것의 기초다.

  _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서

     

   


  

사회 참여 지식인

     

“재능 있는 사람이 가끔 무능하게 행동하는 것은, 그 성격이 우유부단한 데에 있다. 망설이는 것보다 실패가 낫다. ”-러셀

     

아흔네 살에도 핵무장 반대 운동으로 청년과 같은 뜨거운 가슴을 가졌다.

88세에 감옥에 갈 만큼 어두운 시대에 맞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은 폭풍과 같은 인생을 살았다. 

위대성 지성과 식지 않는 열정으로 사회현실에 대한 끊임없이 노력하고 경주했다.


그가 쓴 자서전 첫 문장은 이렇다

 “단순하지만 누를 수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지만 사랑에 대한 갈말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다.”


러셀은 청소년기에 성적인 호기심에 눈을 떠 자위를 하던 때의 심경, 

아내와 여인들과의 사랑, 애증, 3번의 이혼과 4번의 결혼 등 뜨거웠던 자신의 삶을 책으로 썼다. 


성적 방종과 무신론으로 살았지만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진실과 더불어 행동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를 이렇게 회고한다.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러셀은 1937년 ‘스스로 쓴 부고’에서 자신을 ‘얕은 정신적 깊이가 부족했지만 

소문난 통찰력과 정신적 깊이를 소유한 인물’ 로 평가하는 재치로 스스로의 삶과 공적을 적었다.

     

편협하고 분석철학적인 러셀의 사고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은 혁명이나  조롱 또는 급진적 사고로 인하여 발전하지 않는다. 

편향된 분석철학으로 세상을 재단할 수도 없다. 


갈수록 기독교를 믿는 사람의 숫자가 늘고 있고 이를 통해 안식과 평화를 누리고 있다. 

우리 자신의 힘과 의지로 인류가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러셀이 존경받는 것은 극단의 세계에서 대중적인 사고로 아는 것을 실천한 공로가 크다. 

삶을 증오해 끊임없이 자살의 유혹에 시달렸던 아이가 삶을 즐기는 철학자로 변하고 오랫동안 장수하고 즐겁게 산 경험을 얻기 때문이다.

   

  

러셀의 `행복의 정복`에서 삶의 정곡을 찌른다. 


행복은 신에게서 운 좋게 받는 선물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하여 쟁취하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우주 속에 소중한 존재로서 자신을 인식하고 폭넓은 관심을 갖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행복을`선택`한 사람이라고 한다.

     

 또한 행복에 관한 진솔한 기회를 언급한다.


"비주류라고 두려워 말라. 오늘날 인정받는 주류들도 모두 비주류에서 시작했다. 당신을 두렵고 슬프게 하는 것들은 무시하라. 그것은 당신을 깎아내려 병들게 하고 죽음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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