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란 돌고 돌아서 돈이라고 하며 돈에는 구멍이 없어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부(富)의 신>(Plutos)은 세상을 지배할지 모른다는
우려로 인해 제우스의 벌을 받아 장님이 되었다.
그러자 앞을 보지 못해 부를 아무렇게나 배분하는 불평등한 사회가 되었다. 열심히 일하고 정직한 사람이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 것이다.
부의 신 플루토스
15세기 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쓴 ‘플루토스’ 에서 세상 사람들은 사회가 점점 더러워지는 이유를 플루토스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본래 플루토스는 정직, 성실, 근면의 수호자였지만.
친구 크레뮐로스는 플루토스가 다시 눈을 뜰 수 있도록 돕기로 작정한다.
“(크레뮐로스) 당신이 제우스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것을 내가 당신에게 보여주겠소. (플루토스) 내가 말인가? (크레뮐로스) 하늘에 맹세코 그렇소. 먼저, 제우스는 무엇으로 신들을 지배하는가?
(카리온, 크레뮐로스의 노예) 돈이죠. 그분이 대부분의 돈을 갖고 있으니까요. (크레뮐로스) 제우스에게 돈은 누가 대주지? (카리온, 플루토스를 가리키며) 이 양반이.
(크레뮐로스) 사람들은 누구 때문에 제우스에게 제물을 바치지? 이분 때문이 아닌가? (카리온) 물론이죠. 그리고 사람들은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죠. (크레뮐로스) 이분이 모든 것의 원인이니까.” (<부의 신> 128~135행)
친구들은 플루토스가 다시 눈을 다시 뜰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의사를 찾아다녔다.
이 때 누더기를 걸쳐 입은 페니아(궁핍의 여신)는 사람들이 플루토스의 시력을 되찾아준다는 사실에 분개한다. 여신은 말한다.
“궁핍이 있기에 인간이 노동을 하고 신에게 경의를 표하지 모두가 부유하게 되면 사회는 엉망이 될 것이다”고 예견한다.
단테의 신곡에서 탐욕의 죄
크레뮐로스는 제우스에게 플루토스가 시력을 되찾게 되어야 하는 이유를 정의(justice)를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자신들도 절제된 삶을 살겠다고 설득한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clepios)의 치료를 받고 플루토스는 시력을 회복한다. 그가 눈을 뜨자마자 맨 처음 한 일은 이렇다.
“내 친구들인 다른 농부들을 불러줘. 그들은 아마 들판에 나가 일하고 있을 거야. 이리 와서 플루토스가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선물들 가운데 각자 자기 몫을 받아가라고 말이야.” (<부의 신> 223~226행)
시력을 되찾은 플루토스에게 수많은 가난뱅이가 ‘부의 신’의 귀환을 경배하고 제우스를 외면한다.
부자가 된 시민들은 그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며 다른 사람을 노예로 부리고 되는 등 세상은 다시 혼란과 가난으로 돌아오게 된다.
만민이 똑같은 풍요를 누린다면 누가 일하고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미안하지만 부의 신인 플루토스가 다시 장님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신학자 칼뱅은 노동은 기도가 되었고, 직업은 소명이 되었으며 부의 획득은 죄가 아니고 소박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키케로는 말한다. “운명의 여신 자체는 눈이 멀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여신이 포옹하는 자들을 항상 눈이 멀게 만든다.”
고대 희랍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당신이 원한 것 모두를 갖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질병으로 인하여 건강은 달콤하게 느껴진다. 배고픔으로 인하여 포만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피곤함이 휴식의 즐거움을 낳는다. (To get everything you want is not a good thing. Disease makes health seem sweet. Hunger leads to the appreciation of being full-fed. Tiredness creates the enjoyment of resting)” 고 부의 한계성을 이야기했다.
돈으로 목욕한다고 행복할 수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부를 두 가지로 구별한다.
오이코노미아란 정당한 부로서 누구나 쾌적한 삶을 살아야 한다.
크레마니스타케는 한계를 두지 않는 재화의 축적이다. 전자는 물질을 합리적으로 관리할 때 이루어지는 반면 후자는 언제나 더 많은 이윤과 탐욕을 추구할 때 발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