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사상의 근본적인 질문,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
문명과 사상의 근본적인 질문,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다!
진정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행동의 자유를 획득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기계적인 행동에 좌우되지 않고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자신을 지배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경우에 따라서,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은 확신에 따라 때로는 돈을 아끼지 않고 때로는 절약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실감각을 잃지 않고 이상주의자가 되고, 자신의 이상을 도외시하지 않으면서 현실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작은 무질서에도 짜증을 내는 광기를 부리지 않으면서 정리정돈에 충실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_스위스 정신의학자 폴 투르니에 “인간이란 무엇인가”중에서
그리스 테베의 교외에 위치한 피키온 산 정상에 등에는 날개를 사자의 몸과 인간의 머리를 한 신화적인 동물. 스핑크스가 산 아래를 지나가는 나그네를 세워 멈추고 질문을 던졌다.
“아침에는 네 다리로 낮에는 두 다리로 그리고 저녁에는 세 다리로 걷는 동물은 무엇이냐?”
사람들이 대답을 못하자 닥치는 대로 물어죽였다. 그 때 용사 오이디푸스가 대답했다.
“ 그것은 인간이다. 유아기에는 네발로 기고 자라서는 두발로 걷고 노년기에는 지팡이에 의지하는 사람이다”그러자 스핑크스는 그 자리에서 자결했다.
주어진 세상에서 자신이 만들어 내거나 다른 사람들이 강요한 역할을 잘 수행하려고 몸부림치는 배우에 불과하다. 하지만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존재이기도 하다. 겉에 드러난 나와 실제의 나는 다르다. 인간에 관한 성찰과 통찰력은 동전의 양면처럼 수시로 뒤바뀐다.
그에 관한 궁금증과 관심은‘인간이 무엇인가?’로 점철된다.
솔직한 고백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참된 나를 발견하도록 노력한다. 하지만 인간을 알기 위한 철학적 노력과 심리적 분석으로도 실효성이 없고 또 하나의 인위적인 가설을 덧씌우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인간이해라는 문명과 사상의 근원적인 질문의 해결책은 정신적 고찰에만 그쳐서는 곤란하다.
몸과 정신 마음의 균형, 사람간의 관계를 아름답게 실천하는 데 있다.
신작 장편소설 '죽음' 출간 기념해 내한한 베르나르 베르베르 인사이트 19시간 전 보내기
세계적인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저서 '죽음' 출간기념회에서 실제적인 답을 말한다.
“현대 문명의 폐해중 하나가 우리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단지 세금을 내기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육신이라는 수단을 빌어 우리 영혼을 발전시키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사회적 동물’
소코라테스의 ‘이성을 가진 동물’ 파스칼의 ‘생각하는 갈대’
데카르트의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 에른스트 카시러의 ‘상징을 사용하는 동물’
아인슈타인은 ‘인간의 가치는 그가 무엇을 받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주느냐로 판단된다.’
하위징아의 ‘놀이하는 인간’ 등을 들 수 있다.
의학의 선조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의 본질을 간파하여 말한다.
“사람은 뇌에 의해서만 기쁨과 즐거움과 웃음과 농담, 그리고 탄식과 고통과 슬픔과 눈물이 나온다는 것을 안다.
뇌가 있기에 사고하고 보고 듣고 아름다움과 추함을 알고 선과 악을 판단하고 쾌, 불쾌를 느낀다.”
살아가는 이유, 인생의 목표, 소명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힘들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다.
모든 것이 배움의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