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달리기

의족으로 태평양과 대서양을 달리다

by 김진혁

희망의 달리기


몸이 정상이 아님에도 뛰는 것을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저는 2400만 달러 모금이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2400만 캐나다인 모두가 1달러씩 내면 이룰 수 있는 돈입니다._ 테리 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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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희망 없이 살 수 없다.

“희망이라고 하는 것은 길과 같은 것이다. 길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다니면서 결국 생겨난 것이다.” 노신의 「고향」이라는 소설 말미에 나오는 말이다.


폭스의 부모는 가정을 꾸리는 일에 헌신적이었다. 특히 폭스는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아 자기가 헌신한 일에 대하여 전념할 수 있었다. 지기 싫어하며 어떤 일에도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는 성격으로 만능스포츠맨이었다. 육상대표와 농구팀 선수였다.


그런 그에게 가혹한 운명은 18세 때 찾아왔다.

골육종이란 암으로 암이 퍼지기 전에 다리 전체를 잘라야만 했다. 그 자리에 의족을 달았다.


폭스는 암치료 과정에서 많은 환자들이 고통 받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인간은 노력하면 암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암연구하는 기금을 모으기 위해 캐나다 횡단 마라톤을 생각해냈다.

자신처럼 암으로 다리를 잃은 사람이 마라톤을 벌인다면 국민들의 관심을 얻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21세의 폭스는 계획에 옮겼다. 목표액은 2,400만 달러(약 200억 원)이었다. 1980년 4월 12일 런닝 팬츠와 운동화를 신고 하루 평균 42킬로미터를 달렸다. 폭스는 대서양에서 자신의 의족을 바닷물로 적셨다. 나중에 태평양에 도착하면 또 다시 한 번 바다를 찾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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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 연구 기금


폭스는 캐나다의 국민 스타가 되었고, 여러 사람들이 동참하여 모금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폭스의 암이 폐까지 전이되어, 마라톤을 중단하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전국에서 편지가 쇄도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전문을 보내왔다.

9개월 뒤 22세 꽃 같은 나이의 폭스가 세상을 떠나 '희망의 마라톤'도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었다.


하지만 폭스가 143일 동안 움직인 거리인 5,373km로 암 연구의 중요성을 세계에 알렸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1981년부터 매년 60개국 이상이 테리 폭스 달리기(Terry Fox Run)를 개최하며, 수만 명이 참석한다.

현재 테리 폭스 달리기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암 연구를 위한 1일 자선 운동이며, 그의 이름으로 5억 캐나다 달러 이상을 모금하였다.


테리 폭스는 캐나다 훈장 최고등급(컴패니언)을 받은 가장 어린 캐나다인이다.

캐나다 최고의 운동선수 중 한명으로 인정받았고, 1980년~1981년 2년 동안 '올해 캐나다의 뉴스메이커'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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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에도 테리 폭스는 국가적 영웅으로 인식되어서,

그의 뜻을 추모하기 위한 건물, 도로, 공원 등이 캐나다 전국에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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