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가장 약한 존재, 갈대에 지나지 않지만 생각하는 갈대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가장 약한 존재, 한줄기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다.
(그림설명: 1920년 고아원 바닥에서 잠을 자는 아말라와 카말라)
1920년 12월 인도에서 고아원을 운영하던 자알 싱그 목사부부는 밤새 자신의 가축을 잡아먹은 호랑이를 찾아 사냥꾼과 함께 숲속을 탐색하던 중 맹수가 살고 있는 동굴을 찾아냈다.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동굴 속에서 기이한 동물의 울음소리를 하는 두 명의 괴물을 발견한다.
태국의 늑대소녀
싱그씨 일행은 자신들이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정체불명의 여자아이들이 일행에게
이빨을 내보이며 살기를 내뿜는 것을 보았고, 그들이 네발로 기어 다니던 어린 여자 아이들인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이는 확실치는 않지만 두 살짜리 아말라는 곧 죽었고, 여덟 살 정도였던 카말라는 9년간 고아원에서 생활하다가 17세 때 안타깝게 요독증으로 죽었다.
싱그 목사의 육아일지에 의하면 아이들의 얼굴 모양은 인간이지만 행동 하나하나는 모두 늑대였다.
그래서 ‘늑대소녀’로 알려졌다.
처음 데려왔을 때 어두운 방구석에서 잠을 자거나 꾸벅꾸벅 졸면서 얼굴을 벽으로 향한 채 거의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밤이 되면 주우를 서성이며 돌아다니고 늑대처럼 세 번 길게 울기가지 했다.
음식을 먹을 때에도 손을 쓰지 않고 할짝할짝 핥아서 먹었다.
늑대소녀는 3년쯤 지나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양발로 서서 걷게 됐다.
그러나 급할 때는 여전히 네발로 달렸고 이 습성은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았다.
싱그 부인이 말을 가르쳤지만 죽을 때까지 45개의 단어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지능은 세 살 반 아이 정도에 머물렀다.
화석인류학자들은 두 다리로 직립하고 손을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생활하는
모습을 인간이라 칭했다.
하지만 두 다리로 직립하여 행동하는 오레오피테쿠스나 1924년 남아프리카에서 발굴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구석기 시대 80~100만 년 전 생존), 50만 년 전에 생존했던 호모 에렉투스,
1927년 베이징 교이의 베이징 원인은 신장이 155센티 되고 손에 물건을 쥘 수 있고
불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언어를 사용하여 사회생활을 한 흔적도 있지만
오늘날 인류의 조상이라고 할 수 없다.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은 1868년에 남 프랑스에서 발견되었고
2-3만 년 전에 생존한 크로마뇽이라고 불리는 화석인류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의 진화과정은 뇌의 크기나 형태의 변화로만 부를 수 없게 된다.
프랑스 고생물학자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뎅이
인간이란 동물은 오묘한 존재이면서도 인간이 범하는 수많은 악행은 저지르는 우매한 동물이다.
사자는 먹고 살기 위해서 얼룩말을 죽이지만 자기 종족을 서로 죽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서로를 미워하고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사자는 사냥한 것을 배가 채워지면 다른 동물이 먹더라도 내버려 두지만
인간은 자신이 평생 먹지도 못할 것을 끊임없이 축적하고 남에게 주지 않는다.
인간다운 정신을 가질 때 비로소 인간이라 할 수 있다.
교육의 목적은 인간 형성에 있다.
네덜란드 교육학자 랑에펠트는 인간은 “교육받을 수 있는 동물‘이라고 한다.
미숙한 뇌를 가지고 태어났기에 늑대소녀처럼 키워지면 아기가 늑대처럼 되기에 인간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인간의 지능은 제1단계로 태어나면서부터 3세 무렵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속담으로 모방의 시기다.
제 2단계에는 학령기가 오는 4세부터 7세까지이다.
모방의 시기를 벗어나서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을 주장하고 자주적으로 행동하며 의욕을 갖게 된다.
이 시기에는 자아발견 긍정적인 사고로 뇌가 마르지 않고 창조의 정신을 심어주기에 좋은 시기다.
3단계는 10세 전후로 어린아이의 정신활동에 이질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10세 전후에 진짜 인간이 되는 것이다. 대략 20세까지 성장한다고 하지만
노력에 따라 나이는 지적성장의 한계라고 볼 수 없다.
늑대소녀의 예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혈통보다는 아이가 성장하는 환경’이 중요하다.
미국인들이 인종적 편견과 증오가 큰 것은 유전자 때문이 아니라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이다.
1967년 9월 파리의 유네스코에서 개최된‘인종 및 인종적 편견에 관한 전문가회의’에서
내놓은 성명의 일부를 소개한다.
“현재의 생물학적인 지식에 의하면 문화적인 업적은 유전적인 가능성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없다. 서로 다른 민족의 문명의 차이는 단지 그들의 문화사가 다른 데에서 기인한 것이다. 오늘날 세계의 모든 민족은 생물학적으로 문명의 일정수준에 달할 수 있는 비슷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민족우월의식은 생물학적 지식과 맞지 않다.”(출처: 도카자네 도시히코 지음, ‘인간을 만든 뇌’51 pp 에서)
물리학자 데라다 도라히코의 수필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는 지네의 다리를 보고 경탄하지만 실은 만년필을 잡고 이렇게 글을 쓰는
동작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낼 수 있는 것이야말로 정말로 놀랍고 경탄할 일이다.”
먹고 마시고 말하는 인간의 평범한 일거수일투족은 겉보기에 쉬워보인다.
하지만 사소하게 보이는 행동을 하지 못하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이를 가능하게 하는
메커니즘은 놀랄 만큼 정교하고 기적이라 할 수 있다.
파스칼의 ‘팡세’에서 남긴 유명한 말로 인간의 존엄성과 귀함을 인식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