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될 수 없다면 시가 되라.
모든 것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스스로 찾으려는 세계만 발견한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노동의 종말과 대량실업 시대가 도래 했다. 기업은 점점 인력을 많이 쓰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 교육을 받은 인재를 찾지만 조건에 해당되는 사람이 없다.
한쪽에서는 인력이 남아돌고 다른 쪽에서는 구인난으로 허덕이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 같은 규모의 공장에 비해 30퍼센트의 직원만으로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기업은 당신보다 인건비가 싼 해외의 노동자로 대체하거나 위젯 소프트웨어 로봇으로 바꿔나갈 궁리를 한다. 악의가 있어 그런 게 아니라, 효율성을 높이는 경영자에게 보상이 돌아가는 시장 구조 때문이다.
한 번 자리를 잡은 변화의 물결은 되돌아가지 않는다.
오바마 시절 ‘2016년 백악관보고서’에 의하면 시급 20달러 미만의 일자리 중 83퍼센트는 자동화되거나
기계로 대체되고, 자율주행차가 등장하면 미국에서만 220~300만개의 승용차, 버스, 화물차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한다.
10~15년 후면 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200~300만 명의 미국인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계산원, 고객서비스 상담원, 비서, 자산관리인, 변호사, 고소득 화이트칼라도 예외는 아니다.
2000년 이후 미국에서 자동화로 없어진 제조업 일자리만 벌써 400만 개에 이른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 상당수가 재교육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신기술과 자동화로 이어지는 근본적인 경제의 탈바꿈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 일자리의
유동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점차 사회낙오자가 되어 정치적 적개심과 분노, 약물 남용, 가정폭력, 아동학대, 우울증 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가 늘어나고 있다.
에릭 브리뇰프슨 MIT 교수는 “기술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우리 기량과 조직 구조는 그것을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은 뒤로 처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 보통사람들의 70퍼센트가 중산층이라 생각한다.
이미 정보의 운동장이 평평해졌다. 또한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의 40퍼센트가 결혼한 부부 사이가
아닌 관계에서 태어난다.
그 결과 결혼률이 떨어지고 분노로 인한 잇따른 총기 참사로 불안감이 증폭되고,
정부의 안정사회적 역할이 의심받을 뿐만 아니라 의미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
과연 누가 디스토피아의 언저리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말 할 수 있겠는가?
비스마르크는 이런 말을 했다.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면 혁명을 당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혁명을 주도하는 사람이 되자.” 결국 능동적인 사람, 거인의 등에 올라탄 상상력, 공감과 창의적 인재만이 살아남게 된다.
한 편의 시가 되다.
'시인이 될 수 없다면 시가 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글로 시를 쓰기 어렵다면 삶으로 시를 나타내라는 것이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만의 신화를 삶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삶이 말을 걸어올 때 나만의 생각으로 당당하게 정답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삶이 나에게 베푼 것에 대하여 감탄하고, 즐겁게 몰입하는 삶. 일상이 내가 가진 전부임을 인식하는 삶, 평범한 하루도 비범한 매일이 되도록 자신의 것으로 노래를 부른다.
나의 인생은 필사본이 아닌 반짝이는 떳떳한 삶으로 채운다.
삶의 본질인 ‘사람답게 살아가는 일’로 나아간다.
지금 행복하며 한 곳에 머무는 것을 경계하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감사와 사랑, 평화와 희망이 괴로운 인생 언덕길에서 기다리고 있다.
감성의 연금술사, 감탄의 정신적 부자로 비상한다.
세계 최고의 의과대학을 세운 윌리엄 오슬러는 평범한 의사였다. 무의미하게 지내는 것을 후회하다가 어느 날 “우리들의 중요한 임무는 희미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분명한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라는 토마스 칼라일의 글귀를 보고 감명을 받고 존스 홉킨스 대학을 설립한다. 한 사람의 힘으로도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선구적이고 생생한 증거로 보여주었다.
어떤 운명에도 굴복하지 않기
영국 택시 기사들은 연봉 1억 원을 받는 등 서비스 수준이 높아 기사되기가 힘들다.
복잡한 도로와 주요지형물을 모두 알아야 한다.
말 그대로 눈감고 런던의 모든 곳을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지리감각이 뛰어나다는 정평이 있다. 2000년 런던 대학의 엘리노어 맥과이어 연구원이 런던 기사의 뇌를 촬영했는데 운전 경력이 긴 기사일수록 해마가 컸다. 보통사람보다 공간 탐지 능력을 담당하는 해마가 7% 더 크다.
어떤 운명의 화살이 쏟아져도 영혼의 근육을 든든히 하고 방패로 삼으면
불우한 운명도 빗겨간다.
의지가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옛날 서백(주나라 문왕)은 유리에 갇혔기 때문에 주역을 풀이했고,
공자는 채나라에서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춘추>를 지었고, 굴원은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 <아소>를 지었다. 좌구명은 눈이 멀어 <국어>를 남겼다. 손자는 다리가 잘림으로 <병법>을 논했고 궁형이 없었다면 사마천이 <사기>를 쓰지 않았다.
괴로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참고 견디면 영혼의 음식과 달콤한 열매가 다가온다.
욕심이란 태클을 걸지 마라
원숭이를 사냥하기 좋은 방법이 있다.
원숭이가 제일 좋아하는 바나나를 원숭이 팔이 겨우 닿을 만큼 길고 입구가
좁은 바구니에 넣어둔다.
이 바구니를 원숭이들이 자주 지나가는 길목에 놓아둔다. 그리고 사냥꾼은 살짝 숨는다.
처음에는 원숭이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놈들도 엄청 의심이 많고 조심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결국 한 마리가 살금살금 바구니에 접근한다.
그러고는 손을 쑥 집어넣어 바나나를 꽉 움켜쥔다.
이때 사냥꾼이 나타나 잡으러 가면 절대로 바나나를 손에서 놓지 않고 도망가려고 바구니를 팔과 함께 휘둘러 댄다.
이때 여유롭게 원숭이를 잡는다.
욕심 때문에 일이 다 망가지는 것을 알지 못한다. 포기해야 할 때 포기해 더 큰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적절한 기지와 지혜가 없기에 패망으로 가는 것이다.
한 사람이 임금을 찾아와서 이렇게 제안한다.
“폐하, 저는 남들이 가지지 않은 신기한 재주가 하나 있습니다. 저는 이쑤시개 끝에 원숭이를 조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술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저 하나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호오~ 짐도 그런 첨단기술은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소. 그래, 그 이쑤시개 원숭이를 한번 만들어보시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제작하는 데 한 달이 걸립니다. 일단 착수금으로 금 500냥을 주시옵소서. 그리고 나머지 500냥은 완성된 후 잔금으로 치르시면 됩니다.”
자, 여러분이 임금이라면 착수금으로 금 500냥을 지급하겠는가?
참고로 시제품은 없는 상태다. 그리고 자기의 제안을 거절하면 경쟁 국가인 이웃 나라 임금에게 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임금은 신하에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자문했더니 이런 답이 나왔다.
“폐하, 그 이쑤시개 원숭이를 만들 때 사용할 도구를 보여 달라고 하십시오.”
‘한비자’에 나오는 예화다.
<이방인>을 쓴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세상이라는 감방(교도소)에 세 사람이 갇혀 있었다.
첫째 사람은 자기가 감옥에 갇힌 것이 억울하고 분해서 견디지 못하여 주먹으로 방을 치고 머리로 벽을 받아 피투성이가 되어 기진맥진하여 쓰러져 누워 있는 사람이고,
둘째 사람은 자기의 팔자를 타령해서 감방에 들어온 것은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진 것이요 팔자소관이라는 숙명론에 사로잡혀 자포자기로 드러누워 있었다.
그리고 셋째 사람은 자기가 감방에 들어 온 것은 억울하지만 언젠가는 이 감방에서 나가게 될 것이니 낙심은 되지만 참고 견디면서 가만히 누워 비전(vision)을 갖고 계획을 세우며 누워 있었다.
밖에 있는 사람이 이 감방 옆을 지나가다 본다면 세 명이 누워 있는 모습은 같으나
내면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다. 이 세상이라는 감방에 살고 있는 인간은
어떤 희망과 비전을 갖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
시간과 돈, 먹는 것에 억매여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음의 여유를 갖고,
냉정하게 현실을 보며 참고 견디어 성공을 쟁취하는 사람들로 구분된다.
감리교 창설자인 요한 웨슬레 선생에게 어떤 청년이 찾아가 질문을 했다고 한다.
“내일 밤 12시에 만일 죽게 된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하는 질문이었다. 그때 웨슬레 선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을 했다고 한다.
“나는 계획대로 일을 한다. 내일 아침과 오후에 전도하고, 저녁 식사 초대에 참석하고 친구들과 같이 지내다가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어가 12시에 죽는다면 모래 아침에 천국에서 눈을 뜨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말했다. “나는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오늘 나무를 심겠다.”
내 삶을 스스로 길들여 만들어 가자.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더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포기하라.
안목을 키워라. 남을 위해 성실히 일했는가?
몸에 익히지 못한 것을 남에게 가르쳤는지 반성도 한다.
인생을 돌아보면 제대로 살았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던 순간뿐이다.
익숙한 것과 결별하자. 내가 옳다고 느끼는 길을 만들어 가자. 노력 없이 단순히 원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무언가에 뛰 쫓기는 마음의 불안을 버리자.
지금, 나의 하루에 최선을 다하자.
타인보다 우월하겠다는 좁은 마음을 버리고 설렘으로 세상 밖으로 나아가자.
내가 먼저 웃을 때 내 마음속에 꽃이 피고, 내가 먼저 웃을 때 행복해 집니다.
“일은 세 가지 커다란 악, 즉 권태, 부도덕, 궁핍을 막아준다.”_볼테르
“오늘이라는 날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세상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완벽하지 않기에 인생의 묘미가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관심(interest)을 갖는 것이며, 존중(respect)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책임감(responsibility)을 느끼는 것이며 이해하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주는 것(give)이다.” - 미국 신프로이트학파 에리히 프롬(Erich Pinchas Fro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