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당신을 괴롭히는 생각은 어김없이 과거나 미래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과거는 당신 힘으로 바꿀 수 없고, 미래는 당신의 기대와 완전히 다른 식으로 전개될 수 있다.
과거나 미래를 잊고, 지금 행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편이 더 낫다. 현재만이 당신이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_모 가댓, 공학자
우리나라는 2018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인구수가 738만 1천명으로 전체 인구의 14.3%가 되는 고령사회다. 2026년이 되면 20%를 넘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이다.
유엔경제사회국은 2060년에 경제활동인구가 부양해야 할 노인 인구수는 세계 1위가 된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15~64세 활동인구보다 65세 이상 인구가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100: 103.4) 인구구조가 삼각형에서 직사각형 역삼각형으로 바꿨다. 노인의 복지지출은 oecd 기준 하위에 머문다.
고령화 현상은 초저출산과 맞물려 노동력 감소로 이어져 우리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한 나라로서의 존립자체가 위협 받을 것이다.
2017년 기준 1인 가구가 562만 가구로 전체 인구의 10.9%를 차지하고 1인 가구 중 독거노인이 절반을 넘는다. 사회적 관계망에 취약한 1인 가구의 범죄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사회적 집단 우울증과 분노의 사회로 바뀌고 있다.
'군중 속의 고독'으로 대변되는 내면의 고립감과 사회적 외톨이로 외부적으로 보이는
자유롭고 편한 삶과는 달리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 받는 것이다.
특히 노인들은 삼중고에 시달린다.
영국의 복지제도를 고발한 영화이자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은
노인의 삐뚤어진 희망과 비참한 현실을 고발한다.
정책의 사각지대와 경쟁이 강요된 사회에서 노인들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야”고 말하지만 자조적인 외침에 불과하다.
오히려 노인들의 절차와 관습을 왜곡시켜 노령연금, 실업급여, 후원금 등의 수령을 방해한다. “놀면서 돈 받겠다는 거냐?”며 비아냥거림을 극복해야 한다.
노인이란 늙고 병으로 도태된 쓸모없는 사람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노인학의 선구자 중 하나인 헨리 나우엔은 <오십, 마침내 내 삶을 찾다>에서
우리 사회가 노인을 격리시키고 젊음의 영속성을 지나치게 강조한다고 한다.
나이 듦은 경제효용에서는 젊은 사람에 비해 떨어지지만, 자기 삶을 깊이 이해하고 성숙의 여정으로 사는 귀감이 되어야 한다.
중년기의 일과 직장, 가정보다 자기 자신을 1순위로 올려놓는 새로운 변화의 기간이다.
따라서 늙어감이란 앞으로 새로 나아가야 하는 것으로 젊은이 못지않은 노인에게도 내일이 있어야 한다. 물려받은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물려주는 품위 있는 노인의 미래가 더 값지다.
나이 든다고 나쁜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건강은 나빠지지만 지혜가 쌓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사는 인생이라면 유쾌하게 살 수 없을까?
사는 것에 정답은 없겠지만 나름대로의 명답을 찾아 고령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제시해 본다.
노인의 문제는 환경이 아닌 사는 방식에 따라 행과 불행이 갈라진다.
과거의 집착에서 벗어나라. 오지 않는 미래에 불안을 느끼지 말라!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처럼 귀하게 여긴다.
패배의식과 부정적 생각을 갖고서는 미래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삶 자체가 굽은 곡선으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유쾌하고 즐거운 삶을 위해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말을 경청해 본다.
“선(善)을 행하고 덕(德)을 쌓는 것이야말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다. 특히 소유(所有)로는 결핍(缺乏)을 메울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들에게 그는 매우 훌륭한 의사(醫師)다.”
오늘날 한일 갈등, 미중 무역 분쟁, 남북문제, 이념의 갈등, 자영업자 폭락 등 한반도를 둘러싼 큰 변화의 소용돌이에 허덕이고 있다.
이처럼 위태로운 한국사회에서 행복 열풍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불행하다는 반증이다,
우리는 경제, 외교, 사회적으로 볼 때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불행하다고 느낄까?
몇 가지 주요 요인으로 첫째, 경쟁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체제하의 상대적 박탈감이다, 둘째, 남이 만든 기준에 불과한 부, 명예, 권력 등에 주체적인 성찰 없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셋째, 지나친 한국인의 평등사상으로 남과의 비교의식 때문이다. 넷째, 쌍둥이도 형 동생 구분하는 서열문화가 팽배하다. 마지막 다섯째 돈에 노예가 되었다. 일종의 천민자본주의 의식으로 돈이 최고이고 돈이면 다된다.
과거에는 행복에 대한 성찰은 철학자나 종교인의 몫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고, 경제학자의 경우 행복의 조건을 계량화하고 표준화하여 행복의 조건을 밝히려고 하고 있다.
경제학자 스털링은 각 나라의 GDP와 각국의 소득수준을 비교분석해 행복의 조건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반드시 부자인 나라가 행복한 것은 아니며 개인의 경우 부가 일정수준에 오르면 행복에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구글 X 공학자 모 가댓이 쓴 <행복을 풀다>에서 행복의 조건을 방정식으로 풀었다.
모 가댓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학자이자 ‘구글X’의 사업개발총책임자(CBO)이다.
그는 구글에서 성공하고, 롤스로이스를 두 대나 소유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급기야 사랑하던 아들을 의료사고로 잃고 나서야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연구했다.
그는 인문학적 방식보다 공학적 방식에서 행복을 분석했다. 어느 인터뷰 기사 중에서 말한다.
“저는 20대 후반까지 승승장구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승진을 거듭했고, 투자하는 건마다 성공해 부를 거머쥐었어요. 하지만 행복하진 않았습니다. 엔지니어여서 그랬을까요. 불행이 어디에서 오는지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9년간 행복을 느끼는 모든 순간과 불행을 느끼는 모든 순간을 기록해 추세선을 그렸죠. 그리고 12년에 걸쳐 행복 방정식을 만들어낸 겁니다.”
그는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삶에서 일어난 일이 기대와 맞아떨어졌을 때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반대로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우리의 관점과 기대라는 것이다. 부정적인 사고와 과거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려라.
또한 자신이 모든 일의 주인공이 되라.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포기해야한다.
70년대 시카고 대학의 실험에 의하면 사람들의 걱정, 불안 중 95%는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이미 벌어진 일이어서 어찌할 수 없는 경우다.
한 마디로 우리의 걱정, 불안 중 대부분은 쓸데없는 것이다. 삶은 지금 여기(here and now)에 있음에도 대부분이 그때 그곳(there and then)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행복의 지연’에 너무 익숙해 있다. 지금 당장의 행복을 미루고 다가올 더 큰 행복을 위해 고통을 참는 것이 삶의 원칙이자 예의라고 보았다. 그러나 지금 행복할 수 없다면 앞으로도 행복할 수 없다.
행복의 패러독스는
행복하기 위해 애쓸수록 불행해지는 모순이다.
요즘 젊은 세대에서 유행하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라는 말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행복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고 행복해 지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의‘상대성원리’에 관한 책을 읽었다고 아인슈타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은 좁은 국토 과밀인구 급속 성장에 따른 과열경쟁 때문에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낀다.
행복은 조건이나 체험이 아닌 선택이다. 행복해 지기로 결심하면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