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강을 건너면 이롭다
큰 강을 건너면 이롭다
하루해가 벌써 저물었으되 오히려 노을이 아름답고, 한 해가 장차 저 무려 해도
귤 향기가 더욱 꽃답다. 그러므로 일생의 말로인 만년은 군자가 마땅히 정신을
다시 백배할 때이다. -채근담-
사회적, 문명사적 맥락에서 초고령사회는 일종의 축복이자 염려해야 할 과제다.
고령사회는 지구 기온 상승이나 에너지 고갈, 양극화, 인구 폭증, 신종 전염병, 과학기술혁명과 인류가 경험치 못한 초유의 상황이다. 노인 개개인과 가족에게 닥친 문제가 아니라 미래 세대와 갈등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가을 날 붉게 물든 단풍과 같이 늙어가는 모습에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하고 닮고 싶은 생각이 든다.
반면에 현실감각을 잃고 부담이 되거나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지는 노인들의 행동을 볼 때마다 절대로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도 한다.
나이들 수록 외모는 초라해지고 육신은 나약해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무심한 세월 탓을 하거나 속절없이 늙어가는 것을 그 누가 막을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주름 잡힌 표정에서도 연륜이 쌓인 기품을 뿜어내는 분들도 많다.
인생의 면류관인 흰 머리와 화평의 미소로 젊은이에게 멘토로 사는 분도 많다.
늙고 병들었다고 인간의 존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파킨슨병을 앓았다.
하지만 교황은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병든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면서
당시 많은 환자와 노인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건강한 사람과 젊은이만 가치가 있는 게 아니다.
나이 들었건 병에 걸렸는지 상관없이 모두가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노인들의 만고풍상(萬古風霜)을 겪고 살아온 경험과 인격이 합쳐질 때
감동과 슬기로움이 배어난다. 정신의 가장 아름다운 특권은 늙어서 존경받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아름답게 늙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물론 단기간에 이룰 수 있거나 거저 얻는 쉬운 일은 아니다. 이이선생, 엘레나 루즈벨트, 소노 아야코의 삶을 통해 교훈을 얻고자 한다.
유학자인 율곡 이이(李珥, 1536~1584)는 조선시대 때 정치가, 교육가로 큰 업적을 남겼다.
그가 지은 『격몽요결 擊蒙要訣』에서 일찍 일어나 밤늦도록 자기까지 의관을 바르게 하고 얼굴빛을 엄숙하게 하며 걸음걸이를 편안하고 조용히 하며 언어를 신중히 하여 일동일정을 소홀히 하지 말라고 한다.
율곡은 몸과 마음의 자세를
‘소학’의 구용(九容, 아홉 가지 용모)와 구사( 九思, 아홉 가지 생각)로 설명했다.
첫째, 족용중, 두 발에는 무거움이 있어야 한다.(몸을 가볍게 놀리지 말라는 의미다. 하지만 어른의 부르심을 받들 때는 민첩하게 움직여야 한다).
둘째, 수용공. 두 손에는 공손함이 있어야 한다. (손을 아무렇게나 놀리지 말라는 의미다. 일이 없을 때는 두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손을 생각이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다).
셋째, 목용단, 두 눈에는 단정함이 있어야 한다.(눈을 단정하게 뜨고 있으라는 의미다. 사람이나 사물을 곁눈질하거나 흘겨보지 말고 바르고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라는 것이다).
넷째, 구용지. 입에는 고요함이 있어야 한다. (말을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가 아니면 입은 항상 다물고 있어야 한다)
다섯 째, 성용정, 목소리에는 맑음이 있어야 한다(말을 할 때 조용하고 차분하게 하라는 의미다. 기침, 재채기, 하품 등을 하면서 산만하게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섯째, 두용직, 머리에는 곧음이 있어야 한다(고개를 똑바로 들고 허리를 곧게 펴라는 의미다.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하거나 돌리지 말라는 것이다).
일곱째, 기용숙, 기운에는 엄숙함이 있어야 한다 (호흡을 조용하고 고르게 해서 몸 전체에 엄숙한 기운이 흐르게 하라는 의미다)
여덟 번째, 입용덕, 서 있는 자세에는 덕이 있어야 한다(삐딱한 자세로 서 있지 말라는 의미다. 바른 자세로 덕이 있게 서 있으라는 것이다)
아홉째, 색용장, 얼굴에는 밝음과 씩씩함이 있어야 한다.(낯빛을 온화하고 단정하게 하라는 의미다. 얼굴에 태만하거나 거만한 빛을 띠지 말라는 것이다)
첫째, 시사명, 볼 때는 밝음을 생각하라(사람이나 사물을 볼 때 밝고 선한 하늘의 이치를 생가하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속까지 깊이 볼 수 있다).
둘째, 청사총, 들을 때는 총명함을 생각하라 (타인의 말을 들을 때 지혜롭게 경청하면 말에 감춰진 기은 의미까지 모두 들을 수 있다)
셋째, 색사온, 낯빛은 온화함을 생각하라 (거울을 보거나, 마음속으로 자신의 얼굴을 떠올리거나, 다른 사람을 대할 떄 온순함과 어짊을 생각하면 얼굴을 붉히거나 화를 낼 일이 없어진다)
넷째, 모사공, 몸가짐은 공손함을 생각하라 (단정함과 씩씩함을 생각하면 몸가짐이 저절로 바로 잡힌다)
다섯째, 언사충, 말할 때는 충실함을 생각하라 (입을 열 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을 생각하면 단 한마디를 하더라도 진실한 말만 하게 된다.
여섯째, 사사경, 일을 생각할 때는 공경함을 생각하라 (일을 할 때는 마음을 분산시키지 않고 오직 그 일에 모든 마음을 쏟는 것을 생각하면 어떤 일이든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
일곱째, 의사문, 의문이 생기면 질문을 하라 (마음속에 의심이 일어날 때 질문을 통해 답을 구한다는 생각을 하면 먼저 깨달은 사람을 찾아가서 묻게 되고, 전에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된다.
여덟째, 분사난, 화가 날 때는 환난을 생각하라. 마음속에서 분노가 치밀어오를 떄 이를 참치 못해서 생기는 환난을 생각하면 성난 마음을 이치로 타일러서 다스릴 수 있다.
아홉째, 견득사의, 재물을 볼 때는 정의를 생각하라. 이익을 취하기에 앞서 의로움을 생각하면 불의한 재물을 취하지 않게 된다.
미국의 역대 퍼스트레이디로서 가장 존경받는 이는 엘레나 루스벨트다.
“아름다운 젊음은 우연한 자연 현상이지만, 아름다운 노년은 예술 작품”이라고 하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젊은 시절 갑작스럽게 소아마비에 걸려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자신의 방에만 갇혀 지냈다.
그의 아내인 엘레나는 한동안 이런 그를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개어 있을 때 루스벨트와 정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하늘은 더없이 맑았고 정원에는 꽃향기가 물씬했다.
그때 엘레나가 다정하게 말했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 뒤에는 꼭 이렇게 맑은 날이 오지요.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당신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다리가 불편해졌지만 그렇다고 당신 자신이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요. 지금의 이 시련은 더 겸손하게 맡은 일을 열심히 하라는 하나님의 뜻일 거예요. 여보, 우리 조금만 더 힘을 내요."
"하지만 나는 불구자인데 그래서 당신을 더 많이 힘들게 할 텐데 그래도 당신은 날 사랑한단 말이오?"
루스벨트가 우울한 목소리로 묻자 엘레나는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대답했다.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해요? 그럼 내가 그 동안 당신의 다리만 사랑했단 말인가요?"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루스벨트에게 새로운 용기를 주었고 예전보다 더 왕성한 활동으로 연속해서 네 번이나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일본 소설가 소노 아야코가 1972년에 발표했던 베스트셀러 <계로록(戒老錄),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은 행복하게 나이 드는 비결을 에세이 형식으로 소개하였다.
인생의 근본적인 고뇌와 공감을 이끌어내어 고독감과 자괴감에 빠져들지 않고도 멋진 노년을 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말한다.“늙어가는 과정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누가 이런 늙음의 모습을 만들었을까? 그것은 당신도 아니고 나도 아니다. 눈은 둘, 코는 하나로 만들어져 있듯이 이유도 없이 늙는다는 것도 어떤 하나의 모습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가 이런 모습을 선택했다고 한다면 수치스러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스레 주어진 늙음의 모습에 하등의 저항할 필요가 없다.”
아야코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불화로 이혼한 부모 밑에서 자란 외동딸이다. 행복한 가정이란 꿈조차 목 쑤었고, 선천적인 고도근시로 표현 자체가 어둡고 폐쇄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조리가 아름답게 늙기 위한 밑거름을 제공한 것이다.
소노 아야코의‘아름답게 늙는 지혜’를 발췌 요약해 본다.
01. 자신의 고통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생각하지 말라.
젊음을 시기하지 말고 젊은 사람을 대접하라. 젊은 세대는 나보다 바쁘다는 것을 명심하라. 손자들에게 무시당해도 너무 섭섭해 하지 말라.
02. 모두가 친절하게 대하면 내가 늙었다는 것을 자각하라.
입 냄새. 몸 냄새에 신경 쓰고 화장실을 사용할 때는 문을 꼭 닫고 잠가라.
03. 신변의 일상용품은 늘 새것으로 교체하라.
여행지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여행은 많이 할수록 좋다. 체력과 기력이 있다고 다른 노인들에게 뽐내지 마라.
04. 죽음에 대비하는 것이다.
사람은 포유류 중에서 가장 오래 사는 종이다. 그러니 나이 들면 선선히 마음을 비우며 죽음을 ‘대비’하는 것도 좋은 것이다.
05. 새로운 기계 사용법을 적극적으로 익혀라.
사용법이나 설명서를 읽어 보려고도 않고 미리 포기한다. 시도도 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은 노화의 전형이다. 기계를 익혀 덕화만발 카페처럼 건전한 카페에 가입해 열심히 활동하는 것이다.
06. 칭찬하는 말도 조심해야 한다.
여러 명이 있는데서 한 사람만을 꼬집어 칭찬을 한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07. 평균수명에 이르면 공직에 오르지 않는다.
평균적으로 70세 이상이면 솔직히 언제 죽을지 모른다. 나이 60이 넘으면 젊은 나이가 아니므로 항상 젊은이들에게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08. 노인이라는 사실을 실패의 변명거리로 삶지 말라.
잘못을 인정해야하고 일이 느리면 임금도 느린 만큼 반만 받아야한다.
09. 낡은 것은 새로운 것으로 바꿔야 한다.
신변소품은 가급적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것이 정체된 자신에 활기를 준다.
10. 거지 근성을 버려라.
노인들은 갖고 있는 돈을 쓰지도 않고 궁색하게 살다가 가는 경우가 많다.
사회가 주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고 보자는 거지근성은 버리는 게 자기를 위해서도 좋다.
11. 뭔가 실패라던가 유감이라는 말은 하지말자.
깨끗한 집에서 뽀송한 이불을 덮고 균형 있는 식사를 한다면, 그야말로 성공한 일생이다.
12. 배우자나 벗이 먼저 죽더라도 태연 하라.
‘나와 몇 십 년 동안 같이 지내주고 살아줘서 고마워!’ 라고 마음으로 감사하면 된다.
13. 지나간 이야기는 정도껏 한다.
왕년에 라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은 상대를 지치게 하거나 관심을 잃게 한다.
14. 살만큼 살았으므로 언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라.
어차피 죽음도 누구나 겪게 될 삶의 일부이다. 죽
음에 대한 마음의 보따리를 미리 미리 싸두는 것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15. 노년의 가장 멋진 일은 사람들 간의 화해이다.
늙어 화를 내면 추해진다. 화문(禍門)에서 복문(福門)으로 들어가는 길이 화문(和門)이다.
‘큰 내를 건너면 이롭다’는 말은 인생의 곤경을 넘는 것이 큰 강을 건너는 것만큼이나 힘들다는 뜻이다. 인생을 여행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지치고 흔들릴 때 산과 강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얻게 된다.
나이 듦의 공부를 젊었을 때보다 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내 삶부터 가다듬고 어제보다 조금 더 낳은 하루를 위해 기도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옛날에는 쉽게 하던 일도 이제는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욕심을 부리지 말고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시점이다.
속도 조절할 수 있는 여유를 갖추고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고민할 나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감정 기복의 폭이 줄어들고 그 대신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오해하지 말고 이해하면 삶이 행복하다. 오해는 자신만 불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괴롭히는 지름길이다.
늙어가는 사람만큼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인터넷상에 돌고 있는 어느 수피 수도승(修道僧)의 의미 있는 말씀을 묵상해 본다.
집은 살 수 있지만,................... 가정(家庭)을 살 순 없습니다.
침대(寢臺)는 살 수 있지만,........ 잠을 살 순 없습니다.
시계(時計)는 살 수 있지만,........ 시간(時間)을 살 순 없습니다.
책(冊)은 살 수 있지만,............. 지식(知識)을 살 순 없습니다.
지위(地位)는 살 수 있지만,........ 존경(尊敬)을 살 순 없습니다.
의사(醫師)는 살 수 있지만,........ 건강(健康)을 살 순 없습니다.
피(血)는 살 수 있지만,............. 목숨을 살 순 없습니다.
섹스는 살 수 있지만,................ 사랑을 살 순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