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오렌지 군단

지구상 아이들이 가장 행복한 나라 오렌지 색으로 물들다

by 김진혁

네덜란드(Netherlands) 오렌지 군단


풍차와 튤립의 나라, 더치페이의 원조로 알려져 있는 네덜란드!!

최고의 명절인 퀸즈데이(Queen's Day)에는 오렌지색으로 전국이 물 든다.

축구 대표팀을 ‘오렌지 군단’이라고 한다.


오렌지 명칭이 생긴 것은 네덜란드의 스페인에서 독립전쟁(1568년 –1648년) 이끈 오렌지공 윌리엄에 기인한다.

1568년 스페인령 네덜란드 북부 흐로닝언 주 헤일리헤를레이. 스페인 총독 알바 공작의 철권통치에 반대해온 네덜란드 독립 세력이 스페인 군대를 기습하여 전투의 서막을 열었다.

독립운동의 지도자는 스페인의 압제를 피해 독일 지역으로 망명했던 오라녜공 빌헬름(오렌지공 윌리엄)이다.


스페인 제국은 합스부르크가문으로 전 세계가 무대였던 거대 제국이었다.

오스트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남부와 네덜란드와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서남부를 지배한 강국이었다.

그에 비하면 네덜란드는 한 줌밖에 안 된 존재였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열세를 뒤엎고 80년을 싸운 끝에 독립을 따냈다.


프랑스 대혁명과 영국 명예혁명, 미국 독립전쟁과 더불어 서유럽 4대 시민혁명의 하나로 손꼽힌다.


네덜란드인들은 왜 세계 최강인 스페인에 반기를 들었을까?


처음부터 독립을 원하기 보다는 세금을 낮춰달라는 요구였다.

스페인은 세금을 경감하고 보다 많은 자치권을 달라는 네덜란드 지역 유력자들의 청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을 ‘거지 때’라며 무시했다.


약소국인 네덜란드가 독립을 얻고 성공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자유에 대한 열망과 지도자들의 노블레스오블리주


전투가 일어날 때 지도자들 가족이 기병대의 앞에 서서 전투를 치르다 죽었다.

가장 부유하던 오라녜공작 4형제가 독립전쟁에서 모두 싸우다 젊은 나이에 죽었다.

전국토의 27%가 바다보다 수면이 낮다.

전쟁이 불리해 졌을 때 둑을 허물어 스페인 군대를 몰살시키는 전략도 구사했다. 비록 많은 영토가 물속으로 잠기게 되었지만 자유와 독립을 더욱 갈구한 것이다.


둘째, 스페인의 종교탄압이다.

정략결혼 끝에 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을 차지하게 된 합스부르크 가문은 무역상들이 대부분이던 신교도를 억눌렀다. 유대인들을 탄압하여 상당수가 네덜란드로 옮기게 되었고 주변 국가들의 반감을 사게 된 것이다.


셋째, 중과세였다.

당초 세율 100분의 1로 시작한 세금을 20분의 1, 10분의 1로 높아지자 가톨릭 지역까지 저항세력에 합류했다. 저지대의 17개주가 모두 독립운동에 들어갔다.


넷째, 스페인은 오스만 튀르크와 프랑스와 전쟁을 하던 기간으로 막대한 군사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스페인 병사들은 봉급이 끊기게 되자 앤트워프시 약탈에 나섰다.


다섯째, 종교에 관계없이 능력만 있으면 성공하는 관용과 탈이데올로기에 기인한다.


1648년에는 베스트팔렌 조약에 따라 국제적으로도 독립 국가로 인정받았다.


그 후 네덜란드는 대외무역의 황금기를 구가하며 세계 최고 부자나라로 자리 잡았다. 현재 네덜란드의 경제력은 대단하다.

국가가치 브랜드 평가가 세계 8위, 서비스의 비중이 제일 높으며 특히 금융, 가공무역과 중계무역이 발달하였다

과학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학원·과외 등 사교육 기관이 아예 없다.

사교육비 때문에 걱정하는 학부모도 없는 아이들이 제일 행복한 나라가 된 것이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인 르네 데카르트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세계의 다른 어느 곳에서 이토록 손쉽게 편리하고 진귀한 물품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세계의 다른 어느 나라에서 이토록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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