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여자의 가장 후회스러은 일? 먼저간 남편에게 잘 해줄 걸
앞에서 은퇴 남편 길들이기 좋은 방법을 제시했다. 이번 글에는 은퇴 남편 기 살릭에 대하여 써 본다.
어느 날 변기 청소하던 부인이 “여보, 오줌 눌 때 잘 보고 놓으세요,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이런 이아기를 술좌석에서 나눴는데 한 친구는 화를 내면서 “앉아서 소변 놈이 무슨 남자새끼냐”라고 비아냥거린다. 이 때 한 친구의 말에 장내가 웃음 바닥이 됐다.
“너희들은 아직도 서서 보냐? 내가 화장실 청소를 하기 때문에 귀찮아서 앉아서 소변본다.”
친척 형님 형수의 문상에 다녀왔었다. 형수가 아파서 20년 넘게 신장 투석하느라고 1주일에
두 번 씩 병원에 다녔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병원 데리고 가는 것은 응당 남편의 몫, 가까운 일본 해외여행조차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오랫동안 아픈 환자가 있으면 집안 분위기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형수가 막상 돌아가시고 나니 가족들의 슬픔과 상실감이 매우 컸다. ‘좀 더 잘해줘야 했는데
’그런 와중에도 형님은 담대하게 문상객을 맞아주셨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사람은 살아야한다.
스트레스의 충격 강도를 측정할 때 가장 센 것은 자식의 사망, 배우자 죽음, 가족 건강 이상, 친구의 죽음, 사업 실패 순이다.
동양에서는 저승보다 이승을 중시했다. 삶은 기가 모이는 것이고 기가 흩어지면 죽는다. 죽으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에 흡수된다. 따라서 제사 지낼 때 술은 땅의 백을 부르고, 향기는 혼을 부른다고 한다.
기독교에선 이생의 삶보다 영생을 중요시한다. 죽으면 육체는 땅에 묻히고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천국에 올라간다.
‘파이돈'이라는 책에 소크라테스가 죽는 장면이 나온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독배를 마시면서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죽음은 육체로부터 영혼의 해방이다. 세상에 있는 것치고 파리 한 마리도, 병균 한 덩어리도 좋지 않은 게 없다”
한 친구가 말을 많이 하면, 독약을 여러 번 마셔도 잘 죽지 않아 힘들 거라고 걱정하니까, 소크라테스는 자신이야 죽어도 좋은 데 갈 테니 걱정 말라고 합니다. 살아야만 좋고, 죽으면 나쁘다고 생각하는 너희가 걱정이라고 했다.
부처는 늙은 나이에, 죽음을 예견했다. 그는 상한 음식을 먹고 쇠약해졌다.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말을 전했다. “게으르지 말고 중단 없이 정진하라!”
공자는 죽음이 다가오자 노래를 불렀다. “태산이 무너지는구나. 대들보가 쓰러지는구나. 철인(哲人)이 시드는구나.” 그는 수제자 자공이 돌아온 후, 7일 간 침묵에 들어갔다.
“나는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왕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었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죽음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두려움에 떨었다. 어릴 적 가깝게 지냈던 도인(道人) 친구가 찾아왔다. 커다란 홀에 둘이 마주 앉았다. 왕이 침묵을 깨고 물었다. “도대체 죽은 다음에 무엇이 있는가?” 소리가 넓은 방을 울려 퍼졌다. 아무 대답이 없었다. 왕이 다시 물었다. “도대체 죽음 후에 무엇이 일어나는가?” 그 때 친구가 한 손으로 바닥을 쾅쾅 치면서 입을 열었다. “내가 안 죽어봤는데, 어찌 알겠는가?”
무신론자였던 C. S. 루이스는 회심하기 얼마 전부터 하나님이 자신을 쫓아오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습니다. 그는 옥스퍼드 재학 시절 그리스도께 실제로 굴복한 순간을 다음과 같이 인상적인 말로 묘사했습니다.
“방에 혼자 있을 때 일만 잠시 놓으면 그토록 피하고 싶어 했던 그분이 꾸준히,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다가오시는 것을 밤마다 느껴야 했던 내 처지를 상상해 보기 바란다. 내가 너무나도 두려워했던 그 일이 마침내 일어나고야 말았다. 1929년 여름 학기에 나는 드디어 항복했고,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했으며,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하나님은 얼마나 겸손하신지! 그의 준엄함은 인간의 온화함보다 따뜻하다. 그의 강요는 우리를 해방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