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 돈을 이기게 허락하라

당신은 돈의 노예인가 ? 주인인가?

by 김진혁

인문학이 돈을 이기게 허(許)하다.

당신은 돈의 주인인가? 노예인가?


돈은 힘의 상징이다.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돈은 인간관계의 기본 고리이다.

돈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이자 사람과 세상을 묶어주는 사회시스템이다. 돈은 삶의 관계를 성찰하는 언어이자 마음의 거울이다. 돈은 부자와 빈자의 벽이며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돈은 타인을 지배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한다. 세상과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으로 행과 불행을 가져다주는 철학자인 동시에 인문학과 깊은 연관이 있다.


돈을 가지면 덕스럽고 존경하지만 돈이 없으면 비천하게 보인다. 세상 온갖 것이 돈으로 평가되고 측정된다. 사회, 문화, 예술 모두 돈의 척도가 된다.


종잇조각에 불과한 돈이지만 사람의 감정과 기분을 좌지우지한다.

따라서 돈의 인문학적 소양과 지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무기력하게 돈의 위력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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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돈만 있으면 되는 삶'이 아닌 '돈도 있는 균형 잡힌 삶'을 추구해야 한다.


흔히 사회생활에서 요구되는 품위 있는 삶이 있다. 지나친 궁핍이 아닌 인간적인 삶과 자존심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물질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돈에 대해 해탈한 사람은 예외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돈에 민감하다.

그래서 모두 돈을 많이 벌고 갖고 싶어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돈의 욕망은 한계치가 없다. 만약 10억이 있다면, 100억을 벌기위해 애쓴다. 돈에 대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배부른 돼지가 되느니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는 말이 있다.


부자가 존경받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지금 이 세상에는 그 어느 쪽도 아닌 '배고픈 돼지'들만 늘어난다. 미국은 자선을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미국 부자들은 성경 마태복음에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는 구절이 실천하고 있다.

유한한 인생에 있어 돈보다도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실천하고 있다. 그들은 사업을 할 때에도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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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 록펠러, 하워드 휴즈 같은 부자들은 거대한 재단을 만들어 사회공헌을 한다. 일반인들도 공교육과 문화예술 단체에 아낌없는 기부를 한다. 미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이끈 기본 동인이 다방면의 자선활동이 아닌가 생각된다.


반면 한국인은 미국인에 비해 기부활동이나 자원봉사가 5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이것은 한국의 보통사람들이 미국의 보통사람들보다 훨씬 이기적이고, 타인의 삶에 대해 관심이 적다는 것을 드러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인간의 윤리도덕에 입각하여 주자가 쓴 『사자소학』에

‘화인악적(禍因惡積), 복연선경(福緣善慶)’문장이 있다.

선행을 쌓는 집안은 반드시 뒤에 경사가 있을 것이며 선하지 못한 집안은 반드시 뒤에 재앙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사자성어로는 ‘콩 심은데 콩 난다’는 뜻의 ‘종두득두(種豆得豆)’, 혹은 ‘인과응보(因果應報)’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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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어떻게 벌어도 상관없지만 사용하는 데 있어 항상 선행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어리석은 부자들은 돈을 벌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한 계획에 대해선 무관심하고 그저 돈 액수를 늘리는 데 치중한다.


돈의 인문학 핵심은 버는 것 이상으로 어떻게 쓰는지에 관심이 높다. 적게 소유해도 상관이 없다. 주도적으로 소비하며 자선과 우아하고 품위 있게 사는 삶을 만드는 데 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돈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도통한 군자라고 볼 수 있다.

수행의 정도를 돈으로 점검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좋아하고, 돈 걱정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돈은 먹고 사는 문제의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마음속 깊이 감춰두는 프라이버시로 누구도 돈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인류가 만들어낸 희한하고 오래된 발명품, 돈에 관한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조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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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반부패인식지수’에 따르면 “10년 감옥 사는 한이 있어도 10억 원을 번다면 부패 저지를 수 있다”고 응답한 중고생이 17.7퍼센트였고, “아버지에게 원하는 것은 재력뿐”이라고 대답한 대학생이 무려 44퍼센트였다는 설문조사도 있다.


사마천은 2100여 년 전에 ' 사기 ' 라는 책을 썼다.

그는 그 책에서 돈에 대해 “자기보다 10배 부자이면 헐뜯고, 100배 부자이면 두려워하고, 1000배 부자이면 고용당하고, 10000배 부자이면 노예가 된다 ' 고 했다. 인간의 속성은 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경각심을 가르쳐준다.



돈의 본질은 무엇인가? 독일의 사회학자 짐멜(Georg Simmel)은 『돈의 철학(Philosophie der Geldes)』이라는 책에서

“추상적이고 보편타당한 매개형식”이라는 개념으로 그 핵심을 통찰했다.


인간은 절대로 혼자 살 수 없는 동물로서 어떤 식으로든 타인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익명적인 환경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빈번하게 교섭하면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충족시킨다. 전통사회에서라면 오랫동안 맺어온 교분과 신뢰가 그 바탕이 되겠지만, 현대의 도시에서는 인격적인 관계가 전혀 없이도 교환과 협업이 이뤄진다. 그 매개가 되는 것이 바로 돈이다. 점점 더 많은 상황과 사람들 사이에서, 돈의 중요성과 돈의 소양을 깨닫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인문학은 자아와 세상을 성찰하도록 지성과 감성을 연마하는 수행(修行)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에서 사색이 수행의 도구라면 돈 인문학에서는 돈 사용법이 수행이라 볼 수 있다. 삶의 선택과 폭을 넓혀주는 돈이 핵심 매체가 된다. 돈을 둘러싼 경험과 마음으로 자화상을 그려볼 수 있다. 많은 가치들이 돈으로 수렴되어 우리의 궁극적 관심에 대한 대답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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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er the Great, 기원전 356~323년)은 20세의 나이에 마케도니아의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리스 본토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페르시아 제국과 터키에서 파키스탄, 아프카니스탄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11년 동안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은 세계 역사상 육로를 통한 최초의 정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곳곳에 세운 알렉산드리아들을 이어준 도로망과 화폐들을 통해 문화, 교통, 상업 분야에서 놀라운 교류와 큰 발전을 이루었다.

그의 위용은 영웅의 혈통을 타고났지만 당대 지중해 세계 최고 석학으로 꼽히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가정교사로 두고 제왕으로 교육받은 것이 큰 힘이 되었다.


그 어린 나이에 세계를 정복했지만 과연 행복했을까?


그가 그리스 본토를 점령하였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지만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는 찾아오지 않았다. 디오게네스는 견유학파로 암흑 세상에서 훌륭한 사람을 찾고자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다니던 사람이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직접 그를 찾아 나섰다.


교외의 한적한 곳에 누워 있는 그를 발견하고 알렉산드로스는 다가섰다. "난 알렉산드로스요, 당신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줄 수 있소, 무엇을 원하시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능력을 철학자 앞에서 과시하고 싶었다. 하지만 디오게네스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햇볕이 가리지 않게 조금만 비켜 주시겠소?"


알렉산드로스는 충격을 받았다. 누구든지 머리를 조아리는 데 그런 식으로 대왕을 무시한다면, 단숨에 목숨이 사라질 수도 있지만 디오게네스는 두려움이 없었다. 당당하고 도도한 모습에 감탄한 알렉산드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일 알렉산드로스가 아니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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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갖고 싶은 가장 큰 욕망은 행복을 위함이다.

그런데 반드시 돈이 많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돈에 대한 야망의 크기는 그 크기만큼의 결핍을 낳는다. 결핍을 채워놓기 위하여 치러야 할 아픔도 존재한다. 아픔은 고달프고 고프다.

그 고픔을 채우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해야 하는 고단함을 숙명에서 빗겨나갈 수 없다. 알렉산드로스가 세상의 권력과 부를 대표한다면 디오게네스는 인문학을 상징한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투자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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