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노예

입과 혀는 재안과 근심의 문이고 몸을 망치는 도끼이다.

by 김진혁

말의 노예

입과 혀는 재앙과 근심의 문이고 몸을 망치는 도끼이다(명심보감)


“당신이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세네카


말씨는 그 사람의 인품을 드러내고 또한 그 말씨에 의해 인생이 결정된다.


사람들은 침묵을 해도 비난을 받고 말을 많이 하면 더욱 비난을 받는다.

고로 이 세상에서 비난받지 않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심리학자 웨인 다이어는 그의 저서 ‘행복한 이기주의자’에서 “자기 자신에게 꼬리표 붙이는 일을 경계하라.”고 말했다.

부정적인 말로 스스로의 능력을 제한하는 꼬리표를 달지 말라. ‘나는 노래 못해’ 라고 말한다면 앞으로 노래 잘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잘라 버리는 것이다.

비록 못할지라도 ‘나는 점점 좋아질 수 있다’는 되뇌는 말일 때 개선의 정이 보인다.


인도 철학자 자두 크리슈나무르타는 저서 ‘희망탐색’에서 “ 자신이 말의 노예가 된다.” 고 한다. 먼저 나는 무엇이다 ‘ 라고 결정해 놓고 다시 미래를 통제하는 것이다.


인생은 자신이 말한 그림자일 뿐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의 시인 철학가.

카잔차키스가 태어난 당사 크레타는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아 터키에 저항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신문사 편집부에서 일을 하다 파리에서 앙리 베르그송과 니체의 철학을 공부하고 영향을 받았다. ‘신은 죽었다’고 주장한 니체의 표현대로 이제는 신이 아니라 인간의 힘과 정신으로 질서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불교에 심취하여 부처를 통해서도 자신의 구원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카잔차키스는 한곳에 머물지 않고 유럽과 북아프리카 전역을 다니며 여행을 하면서 방황과 구원을 도모했다. 그의 삶을 대변하듯이 묘비명에 이런 글을 남겼다 “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집착과 열망대신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참 자유롭게 인생을 산 것이다.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결심 대신에 곧바로 행동해야 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좋은 결심이 덮여있다. ” 는 속담이 있다.

인도 사상가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말했다 “ 결심이라는 것은 안 하기로 결심한 그것을 강화시키기 때문에 좋지 않습니다. 결심은 억제 폭력 갈등을 불러옵니다.”

오히려 결심을 함으로써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변명을 찾게 된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다.

결심이란 놈은 언제나 나약한 인간들 앞에 덫을 놓는다. 결심으로 내면의 마음에 들어와 행동하는 것을 오히려 막게 되는 것이다. 행동하는 힘이 추진력이지 결심하는 힘이 추진력이 될 수 없다.


결심이란 상식의 도전을 허(許)하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 땅에 사는 젊은이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