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스스로가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경탄할 일이다.
“사람들은 외국에 가면 높은 산과 거대한 파도,
기나긴 강, 드넓은 바다. 별들의 운행을 보며 경탄한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조금도 경탄하지 않는다.”(아우구스티누스)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神殿) 현관 기둥에 새겨졌다는 유명한 말.
‘너 자신을 알라 (gnōthi seauton)’은 인간으로서 이해하기 힘든 과제이다.
소크라테스조차 인간의 지혜가 신에 비하면 하찮다. 자기의 무지(無知)를 철학적 사고의 출발점으로 삼고 겸손한 자세를 갖추라고 강조한다.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어느 조사에서 미국 고등학생의 98퍼센트는 자신이 평균 이상의 사회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한다.
대학 교수의 경우 95퍼센트는 자신이 평균 이상의 연구를 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평균은 딱 가운데를 의미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을 평균 이상이라면 생각하는 것은 성립될 수 없는데 말이다.
이처럼 인간은 스스로 실제 모습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것이 ‘남에게 충고하는 것이다’는 말처럼 다른 사람의 단점은 잘 보이지만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
베트남 전쟁 때 베트남의 포로가 된 미군 병사들이 성탄절, 추수감사절 등 축제일 이후 더 많이 죽는 현상이 있었다.
무슨 특별한 상황의 변화가 없었음에도 포로들이 이번 성탄절 이후 특사로 나갈 수 있다고 스스로 확신하고 과대한 희망을 갖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실현되지 않게 되면 희망이 오히려 절망으로 바뀌고 건강 악화가 되어 죽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왜 이런 속성을 갖게 되었는가?
각박한 현실을 견디고 살기 위해서는 비관보다는 어느 정도 자기 합리화가 필요하다.
인류 진화과정 및 성공하는 사람들에게도 긍정의 속성을 가진 자가 선택될 확률이 높다.
“용감한 사람이 미인을 얻는다.”의 속담과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세상을 움직이려거든 먼저 자신을 움직이라.” 으로 긍정의 심리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단 지나친 낙관과 근거 없고 준비하는 않은 과도한 긍정은 피했으면 한다.
심리학자 톰 길로비치의 말대로 “우리를 곤란에 빠뜨리는 것은 우리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 에 공감한다.
근거 있는 대책, 구체적 희망, 확고부동한 비전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놀랍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