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지역에서 다양한 민족의 문화적 공동체가 어우러진 한민족
우리 조상들의 뿌리
만주지역에서 다양한 민족의 문화적 공동체가 어우러졌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3월 24일 자에서 중국에 50억 달러를 투자한 신동빈 롯데 회장이 최근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보복 움직임과 관련, 중국을 '자신의 조상들이 살던 땅'으로 묘사했고 오해가 있었다는 것을 보도했다. 신회장의 성 신씨(辛氏) 뿌리가 중국에 있으며 "나는 그 나라(중국)를 사랑합니다. 우리(롯데)는 절대적으로 중국에서 계속 사업을 하기를 바랍니다.” 뜻으로 해석된다.
우리민족의 뿌리는?
우리민족은 백의민족, 남을 침략하지 않는 평화와 문화적 민족이라고 자부한다.
반면 일본은 간사하고 야만족 민족이며 중국을 사대국가로 받드는 성리학적 사고에 젖어있다.
예로부터 왕권의 정통성을 항상 부여와 고구려에서 찾았고 그러한 전통은 뒤에 금나라 (곧 청나라)
에서도 계승되어왔다.
삼국사기에서 고려는 북방에 위치한 거란족 국가인 요를 ‘북조’라 칭했다.
우리 조상들은 고구려. 부여. 예. 읍루 등 여러 종족의 융합이라고 보여 진다.
여진족과 여러 말갈 부족들을 우리민족 형성사에 자리 매김 시켜야 할 것이다.
따라서 만주와 단절된 고구려 부여의 단일민족이라는 주장은 단편적인 시각이라 본다.
오랑캐라 불린 만주지역
중국이 만리장성을 세울 때 기준으로 보면 한반도에 익숙한 만주지역은 관외(關外) 지역으로 관동(關東)으로도 불렸다.
중국은 고구려 발해 등을 자기들의 변방국가 중 하나로 평가하였다.
북방을 오랑캐라 칭하며 만리장성을 쌓고 외면한 것이다. 반면 러시아는 신기술로 철도를 개설하고 동방진출을 꿈꾼다. 만주의 일부인 브라디보스톡은 1860년까지 청나라 영토였지만 베이징 조약에 의해 러시아로 넘어간다. 블라디보스톡 이라는 이름의 뜻은 ‘동방을 지배하라’
이다.
즉 이 지역은 중국인들에게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는 낯선 동북지역인 것이다.
동북 3성, 요령성(遼寧省)·길림성(吉林省)·흑룡강성(黑龍江省) 및 내몽고자치구(內蒙古自治區)의 동부지역이 그 범주에 포함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도 이곳의 주인은 중원에 권력을 튼 중국 왕조의 힘에 따라 이곳을 중국에 포함하기도 하다가 또는 빠지기도 했다.
흔히 우리 민족을 기마민족이라 고도 하지만 만주 벌판을 휘젓던 고구려 선조들의 이야기로 몽고와 같은 대초원이 존재하지 않은 한반도에서는 농경민족이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할지 모르겠다.
역사 초기 우리 민족의 조상들은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다양한 종족들의 각축장인 만주지역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또한 이곳은 북방 이민족들의 발상지다.
우리의 선조가 세운 고조선을 비롯해 고구려·발해(지배계층은 고구려인 다수는 말갈족)가 웅거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와 발해를 몰아낸 말갈족(靺鞨族)· 송나라 시조인 선비족(鮮卑族)· 청(淸)나라를 세운 누르하치의 조상 만주족 (여진(女眞), 송나라를 물리친 거란족(契丹族), 원나라를 세운 몽고족(蒙古族)·
등이 삶의 터전을 이루면서 성장하고 소멸해 갔다.
한마디로 만주지역은 다양한 민족의 문화적 공동체가 어우러져 있었다.
제국주의 일본은 이곳에 괴뢰정부인 만주국(滿洲國)을 세우기도 한 곳이다.
만주라는 의미는 다양한 학설이 있지만 원래 건주여진족(建州女眞族)의 가장 존귀한 칭호였던 ‘만주(滿住)’를 누르하치가 계승해서 사용했고 청태종(淸太宗)이 그 존칭을 ‘만주(滿洲)’로 바꾸어 부족 이름으로 사용한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기아를 피해 넘어온 슬픈 조선
조선의 북부지방에서 기아와 도탄에 허덕이던 한인 농민들이 생존을 위해 봉금령(封禁令)을 어기고 만주 지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청조는 1870년 복금령을 취소하고 이민 정책을 펴서 러시아를 저지하려고 했다.
또한 이를 통해 변경방어를 위한 인적 자원으로 활용하면서 동시에 그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들여 재정난을 타개하려고 하였다.
오늘날 연변(延邊)이라고 일컬어지는 북간도(北間島) 지역에는 주로 지리적으로 인접한 함경남·북도 사람들이, 서간도(西間島, 후에 東邊道) 지역에는 평안남·북도 사람들이 이주해 갔다. 그 뒤 만주로 이주해 간 경상도·충청도·강원도 등지의 사람들은 이미 점거된 서·북간도 지역을 피해 새로운 개척지인 오늘날의 흑룡강성·길림성 지역으로 이주해 갔다.
1910년 조선이 일본에게 강점(强占)될 때에는 이전까지의 경제적 요인 외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만주로 이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