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람들이 개척한 땀과 눈물의 영토
항일독립 운동의 성지 간도[間島]
간도는 지금의 연변지방으로 현재 약 1백만 명에 가까운 조선족이 살고 있다.
이곳은 중국내 유일한 조선족자치주이기도 하다.
간도는 만주 길림성(吉林省) 동남부지역으로 중국 현지에서 연길도(延吉道)라고 부른다.
분지와 구릉지역으로 구성되어 각종 자원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땅이 기름지고 산림이 무성하다.
당초 이곳에 살던 여진족보다 조선 사람들이 농경지로 개척한 피와 땀이 묻어있는 곳이다.
지명은 병자호란 뒤에 청나라가 이 지역을 봉금지역(封禁地域: 이주 금지의 무인공간지대)
으로 정하고 청국인이나 조선인 모두의 입주를 불허하는 공간 지대로 삼은 뒤,
청나라와 조선 사이에 놓인 섬[島]과 같은 땅이라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우리 농민들이 이 지역을 새로 개간한 땅이라는 뜻에서 ‘간도(墾島)’ 또 조선의 정북(正北)과 정동(正東) 사이에 위치한 방향인 간방(艮方)에 있는 땅이라 하여 ‘간도(艮島)’라고도 불렀다.
간도지명은 서간도와 북간도로 구분된다.
서간도는 압록강과 송화강(松花江)의 상류 지방인 백두산 일대(白頭山一帶)를 가리키며, 북간도는 혼춘(琿春)·왕청(汪淸)·연길(延吉)·화룡(和龍)의 네 현(縣)으로 나누어져 있는 두만강 북부의 만주 땅을 말하며, 보통 간도라고 하면 북간도를 말한다.
고구려의 옛 영토, 간도의 역사
간도는 원래 읍루와 옥저의 땅이었다가 고구려가 이 지방으로 뻗어나면서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고,
고구려가 망한 뒤에는 발해의 영토가 되었다.
그 뒤 고려시대로부터 조선 전기에 걸쳐 여진족이 각지에 흩어져 살았다. 그들은 ‘번호(藩胡)’라는 이름으로 조선 왕국에 조공을 바쳐 왔고, 조선에서는 그들이 생활 물자를 교역할 수 있도록 북관개시(北關開市)의 기회를 열어 주었다.
간도에 우리나라 사람이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철종 말부터 세도정치의 학정과 수탈에 못 견딘 농민들이 두만강 너머로 이주하였고 1869년을 전후한 함경도 지방의 대흉년으로 기민(飢民)들이 압록강·
두만강을 넘어 간도 지방에 들어가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일제시대에는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200만 여명이 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