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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진 Dec 15. 2024

겨울의 밤

겨울의 밤은 길다. 날이 추워질수록, 해는 바쁜 일이라도 있는 듯이 발걸음을 재촉해 지평선 너머로 빠르게 사라진다. 하늘은 오후 5시만 돼도 어둑어둑해지며 수채화 물감이 퍼지듯 은은한 남색과 보라색으로 물든다. 난 보통 밤 12시쯤 잠자리에 드니 나의 밤은 체감상 7시간 정도다.


이 정도만 돼도 밤이 굉장히 길게 느껴지는데, 지구 어딘가에선 겨울 내내 해가 뜨지 않아 밤이 지속되는 ‘극야’ 현상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춥고도 긴 밤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실제로 극야 현상이 일어나는 지역에선 우울증 치료를 위해 인공 햇빛을 쐬는 치료법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그쪽 사람들 입장에선 한국에 사는 내가 밤이 길어 우울하다고 말하면 콧방귀를 뀔 것이다.


신기하고 공평하게도, 극야 현상이 일어나는 곳의 반대편에선 여름 내내 해가 지지 않는 ‘백야’ 현상이 일어난다. 긴 밤을 싫어하는 나이니 그런 곳에 가서 산다면 행복할지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확실히 밤의 시간이 주는 기쁨과 설렘이 있기에 겨울의 밤을 버릴 순 없다.


오늘 하루 하고자 한 모든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둘러보면 까만 하늘과 함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거리의 창문들.

찬 입김이 참지 못하고 새어 나오는 어두운 거리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이곳저곳을 누비던 젊음.

그리고 밤이 존재해야만 매일 아침 침대에서 커튼 사이로 비치는 눈부신 햇살과 옅은 물색 하늘을 보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그렇기에 춥고도 긴 겨울의 밤이지만 나는 밤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지구라는 행성 안에 극야와 백야가 공존하듯, 재촉하지 않아도 여름이 오면 이곳의 밤도 짧아질 것이다. 시뻘건 태양이 모든 사람의 비밀을 발가벗기는 듯한 한낮의 여름이 되면, 어두운 밤이 다시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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